김 총리는 "정부로서도 오로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만큼 국민 여러분께서 보다 넓은 마음으로 이번 결정을 받아들여 주셨으면 한다"며 "국익을 도모하고 또한 두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서로 자제하고, 더 나아가 모두의 마음을 모아 주시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등 야당이 "국론 분열과 사회적 비용 낭비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 대통령은 원론적인 언급 외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2월 신년 좌담회를 통해 "(충청 입지) 공약을 했었느냐"고 되묻는 등 공약 파기 논란을 일으켰던 장본인이었다. 이 때문에 총리를 내세워 '아바타 정치'를 한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MB 고향 포항까지 들고 일어서…"경악, 허탈 넘어 분노"
총리의 담화문 발표에도 이 대통령을 향한 비난은 거세지고 있다. 민주당 전현희 원내대변인은 "이명박 정부는 동남권신공항과 LH공사 이전에 이어 과학비지니스벨트까지 국책사업마다 기존의 공약을 뒤집으며, 국론 분열과 지역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며 "국책사업을 정치 사안으로 변질시키고, 재집권을 겨냥한 표계산에 치중하다 국론분열과 지역갈등으로 국력을 낭비한 이명박 정부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충청권의 맹주를 자임하는 자유선진당조차 이번 결정에 대해 "이렇게 결국 충청 입지를 결정할 것이었으면서 지난 1년 동안 국론 분열과 지역 갈등을 왜 부추겼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 한마디로 이번 입지 선정은 정치적 결정을 고려하다 실패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국제과학비지니스벨트 경북 포항권 유치위원회는 16일 오후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과학벨트의 대전 대덕지구로의 선정과 관련 "선정과정과 기준, 평가결과가 투명하지도 공정하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뉴시스 |
유치전에 뛰어들었던 김관용 경북 도지사는 나흘째 단식 중이고, 광주광역시의회 윤봉근 의장도 이날 결정에 반발해 단식에 들어갔다. 영남권의 반발은 특히 거세다. "방폐장 등 꺼려하는 사업 다 받아줬는데, 동남권 신공항부터 과학벨트까지 모두 대구를 외면했다"는 역차별론이 나오는 상황이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 포항에서도 들고 일어났다. 과학벨트 포항권 유치위원회는 이날 오후 포항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항은 6·25동란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마지막 보루로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선도했고 다른 지역이 기피한 원자력발전소와 방폐장을 유치해 먹거리도 책임지고 있는 자랑스런 지역"이라며 "경악과 허탈감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은 경북도와 함께 "정부가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는 조치를 취하지 못할 경우 정보공개 요구, 행정소송, 헌법소원 등의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해 투쟁할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잘못된 결정을 응징하기 위해 시·도민의 민의를 모아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남은 부글부글 끓는데 "TK피 흐른다"던 MB는 태연?
영남 민심에 누구보다 민감한 한나라당 내부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이 대통령의 동남권신공항 공약 백지화에 이어 또다른 '폭탄'을 맞은 모양새다. "이 대통령에게는 TK의 피가 흐른다"던 이상득 의원의 말이 무색한 상황이다.
경북도당위원장인 이인기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이틀째 농성 중이다. 이 의원을 포함한 T·K 지역 의원들은 '대구경북의원 일동' 명의의 성명을 내고 "우리는 깊은 실망과 좌절, 분노를 느끼며 550만 지역민들에게 고개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은 책임자 문책, 결정 과정의 평가표, 회의록 전면 공개 등을 촉구했다.
대구시당위원장인 유승민 의원은 기자회견 직후 일부 기자들과 만나 "차라리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 부결 직후 '과학벨트는 세종시로 간다'거나 '충청으로 간다'고 했으면 이 지경이 안 됐을 텐데 마치 원점에서 검토하는 것같이 하는 바람에 시끄러워진 것"이라며 "지역을 분열시키고 표를 깨는데 청와대는 천부적"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부산시당위원장인 김정훈 의원은 이날 과학벨트 입지 선정 결과가 발표나기 전 기자회견을 통해 "이렇게 갈등이 크고 중요한 문제를 정부가 일방적 결정했다가는 나라가 절단난다"고 말했었다. 지금은 김 의원의 예상한대로 분위기가 흘러가고 있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지역에서 발로 뛰며 민원 수백가지 해결해주면 뭐하나, 청와대, 정부가 한번에 털어먹어버리는데..."라고 푸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줄 것처럼 하다가 안 주고, 안 줄 것처럼 하다 주고, 참 모양새가 이상해졌다.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아무래도 내년 총선 전망은 어렵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친박계 의원들은 박근혜 전 대표의 대권 가도에 영향이 생길지 모른다는데 우려하고는 있지만, 애초 과학벨트 공약이 '이명박 캠프' 공약이었던만큼, 박 전 대표의 입장과 이 사안을 연관시키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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