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비즈니스벨트 이슈가 '방사능 논쟁'으로 번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청와대가 "분산 배치는 없다"고 긴급 진화에 나섰지만, 갈등의 불씨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전날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과학벨트 가는 곳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방폐장)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뒤집으면 "방폐장을 유치해야 과학벨트를 줄 수 있다"는 말로도 들려 정치권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유선진당 임영호 대변인은 8일 논평을 내고 "김 원내대표의 엉뚱한 발상이 코미디 수준"이라며 "과학벨트와 방폐장이 들어설 수 있는 입지조건은 전혀 다르다. 원자력발전소를 광화문 네거리에 건설하자는 주장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고 비난했다.
임 대변인은 "이것은 금권 만능주의 사고방식"이라며 "김 원내대표부터 '수익자 부담'이라는 금권적 사고에 젖어있으니 한나라당 의원들이 과학벨트 규모를 세배인 10조 원으로 키워 나눠 갖자고 의원들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임 대변인은 "김 원내대표의 첫 번째 착각은 과학벨트가 엄청난 특혜라고 보는 시각인데, 과학벨트는 대한민국 전 국민을 먹여 살릴 기초과학의 거점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이지 유치지역 주민만을 위한 수익시설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북도 반발 "과학벨트 안 오면 방폐장도 다 가져가야 할 것"
현재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폐연료봉 등) 처리장은 마땅한 입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처럼 원전 지하에 쌓아 놓다가는 2016년에 저장 용량이 포화 상태에 이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사용후 작업복 등 방사능 노출이 적은 폐기물) 처리장은 경상북도에 몰려 있다. 이 때문에 김 원내대표의 발언으로 과학벨트 유치를 염원하고 있는 경북에 비상에 걸렸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이날 "우리 도는 그동안 원전과 방폐장 등 타 지역이 입지를 꺼리는 국가전체의 짐을 져온 국책사업의 대표적 희생지역"이라며 "만약 과학벨트 지역 유치가 무산될 경우에 동해안에 집적된 원전과 방폐장도 모두 (과학벨트가 가는 곳으로) 가져가야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 지사는 "포항시에서도 '대통령의 고향'이라고 언제까지 참아야 하느냐고 반문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 일각에서 제기한 과학벨트 쪼개기가 사실상 무산되면서, 결국 '충청-영남 갈등'이 상대적으로 부각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과학벨트의 핵심(중이온 가속기+기초과학연구소)이 한 지역으로 쏠리게 되면 방폐장 입지를 두고 지역 갈등이 또 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안 해도 될 말(방폐장-과학벨트 연계)을 굳이 해서 쓸데없이 논란을 확대시키고 있는데, 여기에 모종의 '꼼수'가 숨어 있는 것 아니냐"는 말들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직접 설명…그래도 여전히 못 믿는 이유는?
청와대가 "과학벨트 분산 배치는 있을 수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입지 선정에 목을 매고 있는 정치권은 여전히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지난 2월 이명박 대통령이 과학벨트 충청 유치 공약을 한 적이 없다고 한 발언이 거짓으로 들통나 불신감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날 분산 배치 반대를 시사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기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과학벨트 분산과 내가 말한 '삼각 테크노벨트'는 다른 개념"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대선 공약이었던 '삼각 테크노벨트' 구축과 과학벨트를 세 곳으로 쪼개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다. 정치권은 사실상 "쪼개는 것은 안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핵심은 입지 문제다. 이와 관련해 박 전 대표는 여전히 말을 아끼고 있다. 그는 "과학벨트 분산 배치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지난 번에 이야기한 것이 있기 때문에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달 "대통령이 약속하신 것인데 (과학벨트 입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하면 그에 대한 책임도 대통령이 지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었다.
자신의 지역구(대구 달성) 역시 과학벨트 유치전에 뛰어든 상황이기도 해 쉽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충청-영남 지역의 반발을 제외하면 당은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입지를 선정하는 과학벨트위원회가 입지 선정 결과를 발표할 경우 다시 내분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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