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도시생태계에 불리한 구조다
우리나라 1970년대 급격한 경제 산업화는 사회의 물질과 정신 구조를 변화시켰다. 도시 인구집중 탓에 1990년대 전국 인구 82퍼센트가 도시에 거주하게 됐다. 많은 인구가 도시에 모이면서 좁은 땅에 많은 주택을 확보하기 위해 '아파트'라는 주택형태가 나타났다. 아파트(Apartment)는 미국 남북전쟁 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성장을 거치면서 도시에 밀집한 사람들을 위한 '고밀도 주거형식'이다. 우리나라 공동주택은 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기숙사로 나누는데 아파트는 연면적 660제곱미터를 웃도는 5층 넘는 주택을 이른다.
도시가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려면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물이 지하로 자연 침투해 지상에 생물서식의 기반을 이뤄야 한다. 또한 지상에 다양한 생물이 안정된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도시에서 인간이 안전한 환경에서 살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하지만 아파트는 이 전제 조건을 따르기 어렵다. 우선 에너지 순환 측면에서는 전기에너지를 많이 쓰는 구조다. 높은 곳까지 인간과 인간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옮기기 위해 승강기를 써야 하고, 물도 마찬가지다. 또한 아파트는 여러 층을 높이는 만큼, 이를 지탱하도록 땅 밑을 개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물 순환 체계가 단절된다. 생물이 서식하는데 많은 제약요소가 된다. 또한 녹지공간도 인공지반에 조성되고 면적도 협소하다. 자연생태 공간과 비교해 생물 서식은 최소한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아파트에서 생태적인 기능을 그나마 할 수 있는 공간이 녹지이다. 아파트 녹지는 숲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다. 우리나라 아파트에서 녹지는 건축법 가운데 '대지안의 조경과 도시공원과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서 '거주자 1인당 공원 조성 면적'이라는 제도를 바탕으로 조성된다. 대지면적 15퍼센트 정도를 조경면적으로 둬야 하고, 거주민 1인마다 3제곱미터 공원을 확보해야 한다. 아파트를 만드는 건설 주체에 따라 일부 녹지를 보강하여 숲을 만들기도 한다. 아파트 녹지는 건축물 전면 녹지, 후면 녹지, 측면 녹지와 대지 경계에 있는 완충 녹지로 구성된다.
1970년대 아파트 녹지율은 단지 전체면적 40∼45퍼센트 정도이며 지하가 개발되지 않은 자연지반 녹지로 조성됐다. 자연지반은 수목이 성장해 숲을 이루는데 자연구조와 유사한 형태가 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1980년대에는 아파트가 부동산 가치로 변화되면서 사유재산의 경제적 가치를 최대화하고자 녹지면적을 축소해 녹지율이 약 30퍼센트 정도가 됐고, 1990년대에는 약 24퍼센트 까지 감소되어 숲을 조성할 수 있는 면적은 최소화됐다. 아파트 녹지는 숲이라기보다는 보여주기 정도 수목 식재만 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2000년대 뒤로는 아파트 내 수목과 숲이 거주민의 삶의 지표로 인식되면서 녹지면적이 다시 약 40퍼센트까지 늘었다. 하지만 건물은 더 높아졌고 그만큼 지하 공간도 더 개발했다. 녹지는 지하주차장 위에 인공지반으로 조성했다. 인공지반은 토양 깊이가 약 2미터 이내로 수목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 환경조건이다. 수목이 정상으로 자라 숲을 이루기에는 크게 불리하다.
아파트 숲 개념이 바뀌다
아파트 녹지에 조성된 숲은 다양한 조경수목이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는 스트로브잣나무, 메타세쿼이아, 가이즈카향나무, 양버즘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수수꽃다리, 목련 같이 주로 외래종을 심었으나 2000년대 뒤로는 왕벚나무, 소나무 같은 자생종 조경수목이 늘었다. 특히 상록교목이 지속해서 늘었다. 1990년대부터 경관수목인 소나무를 선호한 탓에 녹지율이 높은 인공지반 아파트에서 대폭 늘어났다. 관목은 큰 변화 없이 비슷한 비율로 심었다.
숲을 만드는 식재개념도 시기에 따라 달라졌다. 녹지율이 높았던 1970∼1980년대 아파트는 녹지유형별 식재개념이 정립되지 않아 화목수종(꽃나무)과 상징수종(대표나무), 녹음수종(낙엽활엽수)을 전면에 심었고, 후면에는 상징수종과 화목수종, 단풍수종(단풍나무)을 주로 심었다. 측면녹지는 화목수종과 녹음수종을, 완충녹지에는 차폐수종(가림막 나무)인 속성수 위주로 심었다. 완충녹지를 빼고는 녹지 유형과 기능과 관계없이 다양한 나무를 심었다. 대부분 숲은 교목이나 관목만 심은 단층구조였다. 1990년대 뒤부터 녹지율이 높은 인공지반 아파트에서 녹지유형별 식재개념을 정립했다. 녹지유형과 기능별로 전면녹지는 아름다운 경관수종을, 후면녹지는 녹음수종을, 측면녹지는 차폐용 수종을 심었다. 식재구조는 단층구조에서 복층구조 또는 다층구조로 변화했으나, 식재형식은 아파트 공간 특성상 줄을 맞추거나 규칙 있게 어긋나는 기하학 모양인 '정형식재'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상징성 있는 경관수종은 점차 늘어 차폐수종을 빼면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유실수종은 1980년대까지 많이 심었으나, 2000년대 들어 줄어들었다. 녹음수종이나, 화목수종, 단풍수종은 큰 변화 없이 지속해서 심었다.
2000년대 뒤로는 녹지유형별 기능에 따른 수종을 심기 시작했다. 교목, 아교목, 관목이 어우러지는 다층구조 또는 교목과 관목이 어울리는 복층구조를 만들었다. 수관 폭이 넓은 느티나무, 양버즘나무, 은행나무 같은 녹음수와 왕벚나무, 목련 같은 화목수종, 단풍이 아름다운 수종을 주로 심었다. 최근 조성되는 아파트는 대형 장송을 많이 심는 흐름이 있다. 하지만 토심이 낮은 인공지반에서 살기 어려워 많은 장송들이 죽어가고 있다.
아파트 숲은 도시 속 작은 국립공원이다
아파트에 심은 나무는 조성초기에는 작은 수목이었지만 20년 넘게 시간이 흐르면서 수목이 성장하여 숲을 이룬다. 또한 녹지가 부족한 도심에서 녹지율이 40퍼센트를 넘으면 중요한 녹지공간으로 기능하게 된다. 시민들에게 휴식과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는 공원이면서, 대기오염원을 걸러주고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 공간이 된다. 오래된 아파트일수록 숲의 기능이 크다.
1980년 조성되어 현재 남아있는 서울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와 송파구 방이동의 올림픽선수촌아파트는 아파트 숲이 도시생태계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사례다. 이들 아파트는 1980년대 초반과 중반에 건설된 아파트로 녹지율이 40퍼센트를 넘고, 자연지반이다. 또한 아파트를 개발할 때 있던 자연 상태 산림을 보존했다. 30년이 지난 현재 수목 높이가 20미터를 넘어섰고, 가슴 높이 기준 직경 50센티미터가 넘는 메타세퀘이아, 느티나무가 살고 있다. 이 나무의 크기는 자연성이 우수한 국립공원 숲과 유사한 크기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숲의 바다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이러한 숲에는 박새, 쇠박새, 딱새 같은 산림성 소형 조류를 포함해 쇠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같은 포식성 야생조류가 살고 있으며, 아파트 외곽에는 생태계 먹이 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인 황조롱이도 서식하고 있다.
일반 도심에는 까치, 직박구리, 참새 같이 도시화된 야생조류만 살지만 오래된 아파트 숲에는 자연 산림에 사는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올림픽선수촌아파트와 같이 단지 안에 하천이 통과하는 경우에는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 쇠백로와 중대백로, 해오라기, 물총새 같은 물새도 살고 있다. 아파트에 만들어진 오래된 숲은 도시민의 휴식, 아름다운 경관, 야생조류의 서식공간, 도시를 시원하게 하는 찬 공기 생성과 바람길 같이 도시기후를 조절하며, 도시를 생태적으로 안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재건축으로 작은 국립공원 1개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건설된 지 20년이 넘으면 재건축을 한다. 너무 짧은 기간이 사회문제가 되어 최근에는 30년으로 연장했고 안전진단을 거쳐 재건축하고 있다. 아파트가 건설된 지 20∼30년은 아파트에 식재된 수목의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한 입장이다. 나무는 심은 뒤 약 5년 정도까지는 토양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성장을 거의 멈춘다. 5년 뒤에야 본격 성장하기 시작해 20∼30년이면 성숙한 나무로 자라 그 기능을 하면서 잘 살아가기 시작했는데 재건축으로 잘려나가고 있다. 이식하는 방법도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탓에 대부분 베어내고 다른 나무를 심는다. 이런 식의 재건축 방법은 도시 내 중요한 생태 숲이 사라지게 한다. 도시 환경으로는 매우 나쁜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도시 숲이 형성된 대부분 아파트가 재건축을 앞두고 있어 30년 넘는 숲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전국 재건축 아파트 도시 숲을 합하면 작은 국립공원 1개 넓이 거대한 숲이 사라지는 셈이다.
재건축을 하게 되면 우선 아파트 숲은 가능한 남기는 건축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피할 수 없을 때는 생태적 가치, 수목의 형태, 생육상태, 이식 가능성을 검토해 이식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아파트 숲이 형성된 아파트 가운데 최근 재건축이 확정된 된 둔촌동 주공아파트를 대상으로 평가한 결과 75퍼센트 정도 나무가 이식해야 할 대상이었다. 경제성을 고려하더라도 최소 약 50퍼센트 넘는 수목은 이식하는 것이 타당하다.
새롭게 개발되는 아파트 녹지가 기존 아파트 생태 숲 기능을 하려면 일부라도 자연지반 녹지로 조성하고 다층구조 숲을 만들어야 한다. 다양한 생물 서식을 위한 수생 공간을 조성하고, 외곽완충녹지 약 15미터 정도를 자연지반에 조성해야 한다. 아파트는 다른 생명체와 함께 안전하게 살아가야 하는 생태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 이 글은 <재건축 아파트단지 조경수목 가치평가를 위한 이식수목 선정기법 개발연구>(이인용, 2016, 서울시립대 석사논문), <서울시 아파트단지의 녹지배치와 식재구조 변화연구>(이동욱, 2009, 서울시립대 석사논문), <용적율 변화에 따른 아파트단지 내 녹지구조 변화에 관한 연구>(김정호, 2002, 서울시립대 석사논문), <단지계획기준>(대한주택공사, 2000), <한국공동주택계획의 역사>(공동주택연구회, 2001)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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