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은 임금 체불이라도 쉽게 받는 돈이 있는가 하면 어렵게 받는 돈도 있다.
우리 센터가 그 어려운 돈을 받아주면 감사 표시를 하고 싶어하는 외국인이 생긴다. 이럴 경우 그들이 음료수나 과일 등 먹을 것을 사오면 나는 감사하게 받았다. 그러나 봉투를 줄 경우에는 받지 않았었다. 돈을 주고받으면 노동자를 돕는 단체와 노동자 간의 순수한 관계가 왜곡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득이하게 받는 경우가 생겼다. 내가 돈을 안 받는다는 것을 눈치 챈 인도네시아 노동자 하나가 3만원을 우리 센터의 계좌로 입금한 것이다. 더구나 그 노동자는 화성을 떠나 천안으로 가버렸으니 돌려줄 방법도 없었다. 그것으로 기부금에 대한 빗장이 풀렸다.
돈을 받으니 좋긴 좋았다. 워낙 궁한 살림에 돈이 들어오니까 고맙지!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다. 이렇게 내가 돈을 좋아하니 틀림없이 기부하는 노동자를 이뻐할 텐데 그러면 큰 일 아닌가! 노동자를 차별하면 안 되는데! 그래서 결국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1. 기부금 받는다는 사실을 노동자들에게 알리지 말 것. 자발적으로 주면 받되, 일부러 알려서 부담을 주지는 말아야 하니까.
2. 기부금은 노동자가 받은 체불 금액의 1프로를 넘지 말 것. 그래야 노동자도 부담이 적고 우리도 즐겁게 받을 수 있으니까.
과연 이게 지켜질까?
지금까진 지켜지고 있다.
실례를 들겠다.
필리핀 노동자 컬리는 기숙사비 명목으로 부당하게 공제 당했던 임금 597만 원을 받았다. 그는 의당 자기가 받을 돈을 받은 것이지만, 우리 센터에 굉장히 고마워해서 기부를 하고 싶어했다. 나는 "무슨 기부는? 그럴 것 없어요"하고 사양했다.
하지만 그는 끈질겼다. 내가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녔으니까.
결국 그의 기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아! 그럼 기부해요."
그러나 그가 내민 봉투를 보니 너무 두툼하다.
"엉? 이게 얼마에요?"
"20만 원이요."
"말도 안돼. 피 같은 돈에서 20만 원이나 기부하면 뭐가 남아? 안돼."
그가 물었다.
"그럼 얼마 기부해요?"
액수를 10분지 1로 줄였다.
"2만 원"
"좋아요."
그는 2만 원을 다시 봉투에 넣어 주었다.
"고마워요. 잘 쓸 게요."
하지만 그는 바로 나가더니 햄버거 4개와 초코바 1박스 그리고 귤, 사과, 멜론 등을 섞어 비닐봉지로 큰 봉지 하나를 사왔다. 대략 계산해보니 그 물건값이 3만5000원은 될 것 같았다. 나는 그 금액이 3만9000원이 넘지 않기를 바랬다. 왜냐하면 그래야 우리 센터에 기부한 총액이 *5만9000원 이하가 될 테니까.
부디 1프로 이하라는 원칙을 지키고 싶다.
*따라다녀 : 컬리는 내가 수원노동부에 간 걸 어떻게 알았는지 거기까지 찾아왔었다.
*5만 9천원 : 컬리가 받은 돈 597만원의 1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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