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에 금융기관 등에 대한 단독 검사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한은법 개정안'을 두고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과 한국은행 이성태 총재가 충돌했다. 17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이 총재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윤 장관은 "내년에 다시 논의하자"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한은법 개정안'은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 감독 기능 강화 필요성에 의해 마련됐다.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한국은행의 거시 통화 정책 수립, 위기 대응 능력 향상을 위해 정보 수집 기능을 강화하자는 차원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금융감독원이 금융위원회 산하에 들어가며 금융 시스템에 대한 감시 기능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개정안 추진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윤 장관이나 진동수 금융위원장으로써는 한은법 개정에 찬성할 경우 금융위기 당시 금융 감독 기능이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상당 부분 시인하는 셈이 된다.
이성태 "구두 위로 발을 긁는 것과 직접 긁는 것은 상당한 차이"
이 총재는 "정보 수요는 자꾸 변한다. 그런데 (금융 정책 관련 기관간의)MOU는, 이미 만들어져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정보를 얻는데는 도움이 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정보를 얻는데 충분하지 않다"며 "말하자면 구두위로 발을 긁는 것과 직접 긁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한은의 검사 기능 약화 문제는) 은행감독위원회가 분리되는 순간부터 나타난 문제다. 그 이후로 안나타났다가 이번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노출됐다"고 주장했다. 한은 산하의 은행감독위원회는 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인 지난 98년 분리, 금융감독위원회로 통합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금감위는 금융감독원으로 위상이 격하됐다.
반면 윤 장관은 "한국은행이 가진 현재의 권한으로 '왜 금융기관에 필요한 정보를 받을 수 없느냐'는 의구심도 있다"며 "MOU 체결을 통해 공동 검사를 원활하게 하고 금통위 의결 등으로 충분히 필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 그것도 부족하다면 나중에 법 개정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완강히 맞섰다.
지난 4월 한은법 개정안을 경제재정소위에서 통과시켰던 기획재정위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이번 정기국회에 개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기획재정부의 최종 의견은 매우 안타깝다. 얘기가 안되는 논리로 내년 쯤 가서 (개정안을 논의)해보자는 것은 기재위가 지속적으로 제기한 문제 의식을 다 사장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김효석 의원도 "무조건 미루는 것은 옳지 않다. 가능한 정기국회에서 처리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고 자유선진당 임영호 의원도 "(지난 4월) 기재위 소위에서 결론난 대로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박종근 의원은 윤 장관의 태도와 관련해 "경제 상황과 정보를 금감원과 한은만 공유할 게 아니라 행정부, 국회, 학계, 업계가 다 공유해야 한다. '행정부 하는대로만 따라오면 다 잘 된다'는 그런 오만 방자한 발언이 어디있느냐"며 "(윤 장관의) 자세가 돼먹지 않았다"고 격렬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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