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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백수'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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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백수'의 자존심

[이정전 칼럼] "자존심 세워주는 일자리를 만들자"

작년의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결국 수상자의 사진만 놓고 썰렁하게 진행되었다. 중국정부가 수상자인 류샤오보를 반체제 인사로 몰아 감옥에 가두어 놓았고 가족들의 출국도 차단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아가면서 국제관례에 어긋나는 일을 중국정부가 감행했다는 것은 그만큼 체제유지에 자신이 없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으로 꼽히는 청나라의 강희제가 만리장성을 돌아보고 나서는 감탄은커녕 오히려 비웃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앞으로 청나라는 대대로 그 따위 무모한 성벽이 절대 필요 없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고위 관료들에게 따끔하게 훈시했다고 한다.

정부가 진정 국민을 위해서 정치를 잘 한다면 만리장성 같은 것은 필요 없다는 뜻이다. 만리장성을 완성한 진시황의 진나라는 과연 어떻게 되었던가. 천하통일을 한지 30년도 못돼서 결국 망해버리지 않았던가. 외침이 아니라 내란으로 망했다. 만리장성이야말로 정치실패의 상징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청나라는 소수민족인 만주족이 세운 나라다. 그러나 압도적 다수를 점하는 한족을 200년 가까이 통치했다. 강희제는 반체제 거물 인사와 공개토론을 벌여서 승복시킨 적도 있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이 있었다. 요컨대 정치를 잘해서 국민을 단합시키는 것이야말로 외침과 내란을 막는 최선의 방어책이다. 최선의 국방은 총칼이 아니라 국민의 단합이다. 국민이 단합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에 그늘진 곳이 없어야 함은 물론이다. 실업과 빈곤은 사회의 큰 그늘이다.

▲ 만리장성. 외침을 막는 것은 견고한 성곽이 아니라 좋은 정치다. 소외된 이들이 적은 사회를 만드는 것만큼 좋은 안보 대책은 없다.

작년의 노벨상에 대해서는 중국정부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도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들이 시시껄렁하게 여겨온 실업문제를 연구한 공로로 세 명의 경제학자가 노벨경제학상을 탔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실업문제를 가장 심각한 경제문제로 생각하고 있지만. 아이러닉하게도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지난 250년의 긴 역사를 통해서 실업문제를 심각한 경제문제로 다룬 적이 거의 없었다. 아마도 케인스가 실업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경제학자일 것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실업이라는 현상을 잘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은 대부분의 실업이 자발적 실업이라고 본다. 본인이 원해서 일을 하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설령 비자발적 실업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장에 맡기면 임금과 금리를 비롯한 각종 가격이 적절히 변동함으로써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 해소된다고 본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균형상태에서는 비자발적 실업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청년백수'가 108만 명으로 늘어났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흔히 니트족(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라고도 불리는 청년백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대부분이 대학을 나온 고학력자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흔히 청년백수는 취업 의사 없이 부모에 기대어 사는 젊은이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들이야 말로 자발적 실업자라고 말할 것이다.

청년백수라는 말 자체가 백수건달을 연상시킨다. 보수 인사들의 눈에는 청년백수가 정신 차리지 못한 못난이, 혹은 따끔한 교훈이 필요한 게으름뱅이 정도로 비쳐진다. 보수 인사들의 이런 인식은 빈곤에 관해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거나 못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정부가 돈을 쓰는 것은 낭비라고 본다. 이들 스스로가 깨닫고 일자리를 찾아 나서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저임금의 막노동이나 3D 업종도 감수하고 열심히 뛴다면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생각이다.

설령 이들의 말이 옳다고 치자. 이력서를 100통, 1000통씩 보내도 면접 보러 오라는 곳이 한 곳도 없다는 청년백수들의 푸념을 그냥 해보는 넋두리라고 치자. 대학까지 졸업한 사람이 막노동이나 3D업종에 종사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의 문제도 접어두자. 그리고 좀 더 근원적으로 생각해보자. 왜 고학력 청년백수들이 저임금 막노동이나 3D업종을 기피할까? 아마도 자존심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대학까지 나와서 저임금 막노동이나 3D업종에 종사한다는 것은 이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 특히 대졸학력을 가진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참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왜 손가락질을 할까? 자신들의 자존심도 상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일에 자존심 상한다고? 예를 들어보자. 집안에서 예쁜 행주치마를 두르고 가사노동 하는 남자를 놓고 같은 남자들이 손가락질 하는 이유는 그가 남자망신을 시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사학위 소지자가 택시 운전수를 하고 있다면 다른 박사학위 소지자들도 언짢게 생각할 것이다. 박사학위의 권위를 크게 떨어뜨렸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아마도 보통 시민들도 박사학위가 그것밖에 되지 않느냐며 혀를 끌끌 찰 것이다. 정규 해병대 대원으로 여성의 입대를 허락한다고 하면 아마도 해병대 출신 남성들이 몹시 언짢게 생각할 것이다. 귀신 잡는 해병의 이미지를 손상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관을 지낸 사람이 정부 산하단체에서 과장 대우의 직책을 맡는다고 하면 아마도 언론에 보도되기 전에 같은 장관을 지낸 사람들이 적극 말릴 것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과거 필리핀의 경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져서 실업자가 양산되었을 때 마닐라대학의 여자 졸업생들이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지의 부잣집에서 가정부로 많이 일했다고 한다. 마닐라대학이라고 하면 필리핀 최고의 명문대학이다. 만일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학교의 여자 졸업생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 대거 외국 부잣집의 가정부로 팔려나간다고 하면 우리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대부분이 창피하게 생각하면서 어쩌다 나라가 이 꼴이 되었느냐며 개탄해 할 것이다. 이럴 경우, 서울대학교 교육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한 우리 사회를 탓해야 할까?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경제학자는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지만 이상하게도 경제학에는 자존심이나 자아의식(identity)이라는 용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대학졸업생이 외국 부잣집에서 가정부로 일한다고 하면, 어떻든 외화를 벌어들이는 일이니 환영할 일이라고 이들은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산업현장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게 대학교육의 내용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부잣집 가정부를 양성하는 학과를 대학에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것이다. 왜 우리 정부는 자존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하느냐고 물으면,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고 이들은 대꾸할 것이다.

하지만, 심리학자나 사회학자는 경제적 동기 못지않게 자아의식도 매우 강력한 행위의 동기라고 본다. 예컨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아의식, 여성으로서의 자아의식, 남성으로서의 자아의식, 대학 졸업생으로서의 자아의식, 등이 현실에서는 각 개인의 행위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월드컵 경기 때 서울거리를 온통 붉게 물들인 우리 국민의 뜨거운 응원 열기에 외국 언론들도 깜짝 놀랐고, 아마도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도 놀랐을 것이다. 밥과 돈 때문에 그렇게 미친 듯이 응원했을까?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아의식의 발로다. 이와 같이 자아의식이 때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그런 자아의식은 우리 국민을 하나로 묶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자존심을 먹고 사는 존재다. 자아의식이나 자존심이 없다면 그건 인간도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는 청년백수들에게 자존심을 버리고 아무 일이나 하라고 닦달할까? 왜 우리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알량하다고 생각할까? 개평으로 떡 한쪽 떼어주는 식의 "맞춤형 복지"가 과연 이들의 자존심을 배려한 복지일까?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여권 인사들은 자신들의 자존심은 하늘같이 생각하면서 왜 저소득계층의 자존심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을까?

무조건 일자리만 만들어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모두가 자존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무조건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수혜자의 자존심도 충분히 배려함으로써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게 하는 복지제도가 우선이다.

마치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의 교육제도를 칭찬했듯이 강희제도 한국인(조선인)을 아주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켰고 청나라와 일전을 불사한, 자존심이 강하고 기백이 있는 국민이라고. 이제 우리 자신부터가 돈이나 효율만 생각하지 말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 모두의 자존심도 소중하게 생각하자. 그리고 우리 대학 졸업생의 자존심도 생각해주고, 저소득 계층의 자존심도 세워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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