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온탕을 오가면서도 2018년 예산안을 들여다보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정부는 법과 예산으로 일을 한다. 예산 편성은 정부 조직이 앞으로 1년을 어떻게 보낼 건지를 보여주는 척도다. 몇 가지 눈여겨볼 지점들이 보인다.
환경부, 4대강 복원 준비 시작
환경연합은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시작하자마자 추가경정예산 편성 당시부터 4대강 복원 관련 예산을 반영할 것을 제안해왔다. 우려된 것은 통상 다음 연도 예산안을 5월 즈음 각 부처에서 마련하는데, 문재인 정부 임기가 시작될 당시 이미 이전 정부의 지향을 담은 예산안이 준비되어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 임기 5년 중 2년 치 예산에 국정 철학을 담는 일이 요원해지는 것이다.
4대강 복원을 위한 첫 단계 예산은 4대강재자연화민관위원회 운영 예산이다. 정부는 2018년 말까지 4대강 복원 방식 및 수위를 민관위원회를 통해서 결정하겠다고 밝혀왔다. 따라서 이 위원회를 서둘러 구성해야 몇 개의 보를 언제까지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방향이 결정된다. 이 예산은 '수질 및 수생태계 측정조사' 사업에 '4대강 자연성 회복'이라는 항목으로 조사평가 등을 포함해서 약 73억 원 신규 편성되었다. 4대강 복원을 위한 최소한의 총알인 셈이다.
다음으로는 4대강사업을 집행하면서 변경된 취수시설을 재조정 하는데 필요한 예산이다. 정권 출범 초기 정부 측에서 파악한 시설 조정예산은 약 250억 원 수준이었는데, 지난 8월 김은경 환경부 장관의 발언에 따르면, 총 5000억 원가량 소요될 것으로 검토된 듯하다. 안타깝게도 이 예산은 2018년 예산에 일절 반영되지 않았다. 위원회 논의 후 결정한다는 것이 주요 취지인 듯한데, 재자연화를 전제로 운영되는 위원회라면 최소한의 예산이라도 반영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18년 말까지 재자연화 방안을 도출한다면 2019년 예산에도 반영되기가 어려울 텐데, 이는 집권 3년 차까지 재자연화를 위한 실질적인 집행 예산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환경부는 4대강 복원을 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산을 확보했고, 더디 가는 듯 느껴지는 답답함은 4대강 복원을 염원하고 바라는 많은 이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토부, 댐 예산 대폭 축소
4대강사업의 선봉에 섰던 국토부 수자원국 예산은 전년도 대비 1345억 원 줄어든 1조6762억 원이 정부안으로 제출되었다. 10년 만에 참여정부 수준의 예산으로 규모가 축소된 것이다. 양적으로는 참여정부 수준과 비슷해졌지만, 질적으로는 이마저도 차이가 난다.
우선 댐 예산이 대폭 축소되었다. 참여정부 당시 2000억~3000억 원 수준이었던 댐 예산이 918억 원 규모로 추락했다. 이마저도 충주댐 치수능력증대사업 236억 원, 2018년 마지막으로 예산이 집행되는 평화의 댐 치수능력증대사업 131억 원을 제외하면 기존 댐 유지관리 예산 479억 원만 남게 된다. 댐 예산이 축소된 것은 정부가 의지를 갖추고 줄인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댐을 지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예산을 분석해보면 이미 박근혜 정부인 2017년 예산부터 댐 예산이 대폭 축소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천관리 예산의 경우 참여정부보다 2000억~3000억 원 증가한 1조4708억 원이 정부안으로 상정되었고, 이중 수자원공사 부채 원금 및 이자 지원예산이 3150억 원, 4대강 16개 보 관리 예산이 1412억 원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서 환경부 생태하천정비사업과 중복사업으로 지적받은 지방하천정비사업 5555억 원을 제외하면, 국가하천정비 3567억 원 등 기본적인 관리예산만 남게 된다. 수자원국의 존재 근거 자체가 흔들리는 수준이다.
여전히 제2, 제3의 4대강사업 예산이 남아있다
남강댐 치수능력증대사업의 경우 총 3806억 원 규모의 사업으로 상류에 예정된 지리산댐이 추진될 경우 효용성이 없는 사업인 데다가 홍수 시 방류시킬 방수로 배분 문제조차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첫발부터 내딛겠다며 무리하게 상정되었다. 댐희망지공모제의 경우 국자차원에서 더 이상 댐을 지을 곳이 없어지자 지자체로부터 공모 접수를 받아서 심사가 진행 중이다. 총 22개 댐 중에 서류심사를 통과한 6개 댐에 대한 심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읍면 단위의 대상지에 유지용수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서 상당 부분 타당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 댐 또한 하나당 300억~800억 원 규모의 예산이 책정되어있다.
2018년도 예산안을 보면서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정권이 바뀌어도 예산은 변화가 없다는 씁쓸한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정권교체라는 것은 관료사회와 기존의 경제 구조 99퍼센트 속에 선출된 정치세력 1퍼센트가 비집고 들어가는 일이다. 정부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조정되는 비율이 약 1퍼센트라고 하는데, 정권이 교체된 상황에서 10퍼센트를 바꿀 수 있으면 세상을 많이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번 예산에서 또 눈여겨볼 중요한 부분은 SOC예산이 22조 원에서 17.7조 원으로 감소한 것이다. SOC예산 감소 자체를 환경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겠으나, 상당수 SOC사업이 환경파괴로 이어지는 데다가 복지 및 일자리예산에 대한 투자 증대로 이어진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사회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이번 SOC예산 감소는 해마다 과다 편성되어 다음 해로 이월하는 이월률이 30퍼센트에 이르는 상황에서 재정의 합리적 편성 기조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더디지만 시작된 변화
여전히 녹조가 창궐하고, 물고기의 숨이 헐떡거리는 강을 보면서 마음으로는 저 보를 금세 부수고 낙동강과 금강, 영산강과 한강이 굽이굽이 흘러 바다로 가는 상상을 한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다시금 돌아보니 이제 겨우 새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이 되었을 뿐이다. 적폐청산을 내걸고 국민의 힘으로 힘차게 시작한 이 정부가 하루빨리 성과를 내주기를 고대하고 있지만, 10년 동안 거꾸로 온 정책이 하루아침에 제자리를 찾기 어려운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당장 성과를 내기 어렵더라도 역할을 다한 조직을 정리하고, 4대강 복원의 가능성을 열어줄 예산을 차분하고 끈질기게 요구해나가야만 한다. 운동이 멈추는 순간 가능성도 멈춘다고 믿으며, 4대강이 복원되는 순간까지 환경연합의 역할을 상기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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