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의 한 측근이 전날인 24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기자실에 나타났다. 그는 "하도 어이없고 황당해서 왔다"며 "(총리실 불법 사찰에 연루된) 원충연 사무관의 수첩에 오 시장이 '대선 준비를 한다'는 식으로 적어놓았는데, 2008년이면 그게 어디 대선 준비겠나. 재선 준비지. 팩트 자체가 틀린 황당한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까봐 일부러 나와 봤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찰을 당했는지, 안 당했는지, 당시에 우리가 어떻게 감지할 수 있었겠나. 사찰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런 수첩에 오 시장 이름이 나온 것 자체는 어이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현직 자치단체장 측근이 국회 기자실에 와서 일일이 해명하러 다니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태 때문에 정국 최대 이슈로 떠올랐던 총리실 불법 사찰 문제가 뒤로 밀렸다. 하지만 포격이 있기 직전 공개된 원충연 전 총리실 산하 공직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장(사무관)의 수첩의 파문은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사찰의 대상이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 등 여권 핵심부까지 망라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범위였기 때문이다. 또 지난 6월 처음 제기됐던 의혹은 시간이 갈수록 해소되는 게 아니라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는 25일 <프레시안>과 만나 "사찰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그 동안 정두언, 남경필 의원 뿐만 아니라, 당내 인사들도 많은 문제를 제기해 왔었다"며 "이런 일이 불거질수록 정권에는 부담만 된다. 확실히 털기 위해서는 이번 건에 대한 재수사가 불가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오 시장과 함께 원 전 사무관의 수첩에 이름이 등장한 친박계 이혜훈 의원도 이날 CBS 라디오 <변상욱의 뉴스쇼>에 출연해 "정확하게 안 것은 보도를 보고 알았지만 그 전부터 저랑 가까운 지인들이 전화할 때 마다 '당신이랑 이제 전화 못하겠다'는 말을 하더라. '왜 그러시냐?'고 하면 '전화를 하면 갑자기 통화음이 뚝 떨어지면서 아득하게 소리가 나오다가 한 1~2초 지난 다음에 다시 정상으로 된다'고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도 자신에 대한 도·감청 의혹을 느껴왔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이 정부가 시작될 때 4대 사회보험이 통합업무를 누구에게 맡기느냐를 가지고 이번 정부와 생각이 달랐는데, (정부) 입맛에 맞지 않은 법안을 냈다고 해 사찰 대상이 된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의원은 "기분 좋은 사람이 누가 있을지 모르겠다. 너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힌다. 민주주의가 권력분산에서 출발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입법부의 입법 활동이 행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고 사찰을 한다면 어떻게 3권분립이 이루어지며,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저는 굉장히 그런 부분이 난감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것이 총리실 선에서 끝나는 문제인지, 청와대와 연결이 돼 있는지 말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이런 부분들에 대한 의혹이 있는 상태에서는 청와대든 대통령이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가 어려운 상황 아니겠나. 특히 많은 분들이 레임덕 얘기도 하는데, 레임덕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부분은 철저하게 밝히고 명명백백히 공개해서 털고 가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대포폰이 밝혀지고, 증거 파일을 삭제했다는 것이 밝혀지고, 이번에는 사찰의 정황들이 108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자세히 기록한 수첩이 나오오는데, 추가 증거가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이것을 덮지 말아야 한다"며 "추가 증거가 없어 재수사를 안한다"는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수첩에 이름이 등장한 원희룡 사무총장도 "구본홍 전 YTN 사장 임명을 반대해서 사찰 대상에 오른 것 같다"며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고, 친박계 서상기, 유승민 의원 등도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 검찰의 재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안상수 대표는 "불법 사찰 재수사 관련 문제는 내게 맡겨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평도 사태로 다소 시간적 여유를 얻은 안 대표는 현재 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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