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불법 사찰, 4대강 사업,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을 두고 여야 대치가 첨예한 가운데 "화기애애"(정옥임 원내공보부대표)하게 끝났다는 18일 청와대 원내대표단 초청 만찬이 불편한 의원들도 있었다.
특히 김무성 원내대표는 숙제 거리를 잔뜩 걸머지고 왔다. 김 원내대표는 청와대 만찬 관련 질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고, G20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데 대해 축하와 대통령이 수고 많이 했다는 내용, 그리고 대통령도 원내대표단이 수고 많았다는 덕담 정도 주고 받은 자리였다"고 말했지만 참석한 다른 의원들의 설명은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이 대통령이 사실상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인 12월 2일까지 처리해달라고 독려하는 자리였던 터라, 김 원내대표의 표정 변화를 본 한 참석자는 "김 원내대표가 많이 부담스러워하더라"고 전했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19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하면서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을 줄줄이 내 놓았다. 민간인 불법 사찰, 4대강 사업 예산, 대야 관계, 한미FTA, UAE 파병 문제, 청목회 사건, 정치자금법 개정, '감세' 관련 의원 총회 등 최근 모든 현안을 망라한 자리였다. 이에 한나라당 관계자는 "딱 봐도 알겠다. 청와대 만찬에서 한 이 대통령의 말을 그냥 전달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촌평했다. '암묵적 오더'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김 원내대표는 실제로 기자들로부터 "민간인 사찰 국정조사는 안 받겠다, 특검도 안하겠다. 한미 FTA는 재협상은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야당의 요구를 하나도 들어주지 않겠다는 것인데, 어떻게 야당과 협상할 것이냐"는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계속되는 질문에 김 원내대표는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지 말고 수용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하라고 하겠다"고 해서 간담회장에서는 잠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청목회 말 몇 마디 꺼내자 이재오 장관이 바로 수습"
전날 만찬에서는 청목회 관련 얘기가 잠시 거론되기도 했다. 참석한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던 도중 또 다른 한 의원은 "소액 후원금 제도를 고쳐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을 했는데, 만찬장에 참석한 이재오 특임장관이 "그것은 제가 맡을 사안인 것 같다"고 말을 끊었다. 이 말을 들은 한 참석자는 "아주 짧게 몇 마디 말도 하지 않았는데, 바로 이재오 장관이 수습하더라. VIP(이명박 대통령)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의원은 "의원들이 요즘 서로 '후원금 얼마 받았냐'는 말을 하는 식으로 걱정해주고 있다. 특히 환경노동위, 농림수산식품위, 행안위 의원들이 걱정이 많은데, 그런 차원에서 말이 나온 것 같다"며 "최근 검찰, 경찰에 청목회 사건과 같은 국회의원 소액 후원금 관련 제보가 스물 몇 건이 들어와 있다고 하는데, 그것 때문에 의원들이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청목회 사건 관련 국회의원 압수수색으로 검찰이 국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상태에서 청와대 만찬이 마냥 '화기애애'할 수는 없었다는 말이다. 실제 김 원내대표는 전날 여야 의원 모두가 연루되 정국 경색의 원인으로 꼽히는 청목회 관련 얘기는 꺼내지 않았지만, 이날 검찰의 압수수색을 두고 "분명히 무리한 강제 수사"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했다.
이같은 해프닝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학생주임(이재오 특임장관)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감시하고 있는데 어떻게 학생(의원들)이 거기에서 소신 발언을 할 수 있겠느냐"는 농담도 오가고 있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이날 "(야당이 요구하는) 국정조사, 특검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여당에서 최근 "재수사 안하면 국정조사 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들리는데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느껴지는 발언이다.
정옥임 원내대변인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진 G20에 대한 축하, 그리고 앞으로 정기국회 국정을 마무리 잘하자는 덕담이 오고 가는 분위기"라고 전했지만, 김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분위기는,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