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이석현 의원에 따르면,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왕차관'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이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재직 시절인 2008년, 기획조정비서관실에 있던 이창화 전 행정관이 이명박 정부 초대 국정원장인 김성호 전 원장을 직접 사찰했다.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이 촉발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생기기 전부터 이미 청와대가 직접 전 정권 인사를 비롯해, 친박계 의원, 심지어 현 정권 실세들까지 사찰해왔다는 것. 박영준 차관은 그간 야당은 물론 정두언 최고위원 등 한나라당 일각으로부터 총리실 불법 사찰의 배후로 지목당해왔던 인물이다.
사찰 대상이었던 김 전 원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부장관을 지냈으며,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8년 1월부터 2009년 2월까지 1년 여 동안 국정원장을 지냈다.
이 의원은 또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MBC <PD수첩> 등 언론인을 비롯해 트로트 가수와 정권에 비판적인 사진작가까지 사찰했다는 것을 추가로 폭로했다. 검찰이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박영준 밑에 있던 일개 행정관 이창화가 현직 국정원장을 사찰"
이 의원은 사찰 담당자로 지목한 이창화 전 행정관에 대해 "포항 출신이고 이명박 출범 직후 박영준 전 기획조정비서관 밑에서 행정관으로 일했었고, 당시 현직이었던 김성호 국정원장, 정권 실세였던 정두언 최고위원 등을 직접 사찰했다"며 "일개 행정관이었던 이창화 씨는 당시 TK(대구경북) 출신 4명과 팀을 이뤘었다"고 주장했다.
▲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국회에서 청와대의 불법 사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뉴시스 |
이 의원이 밝히는 전말은 다음과 같다. 이 전 행정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부장관을 지냈던 김성호 전 원장이 친노 성향의 PK(부산경남)출신만 챙긴다면서 김 전 원장이 다녔던 브니엘고등학교 인맥을 예로 든 후 이종찬 당시 민정수석에게 '김성호 원장 체제의 문제점'을 보고하면서 시작됐다. 이 의원은 "이같은 사실이 김성호 원장이 추후 제거되는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김성호 전 국정원장은 김용철 변호사가 공개한 '떡값 검사' 명단에 있었는데,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정원장이 되자 이 점을 청와대에 해명할 필요가 생겼다. 2008년 4월 17일 삼성특검 수사 발표가 있었는데, 이 무렵 김성호 전 국정원장은 이종찬 민정수석을 압구정동에 있는 미라클이라는 룸살롱에서 만나 자신을 둘러싼 내용에 대해 해명을 했다"며 "이후 이창하 전 행정관이 룸살롱 여주인을 만나 내사해서 청와대 정동기 민정수석에게 그 내용을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2008년 7월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출범하기 이전에 벌어진 일이어서 "총리실 불법 사찰 이전에는 청와대가 직접 불법 사찰을 자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정두언, 정태근, 친이재오계, 친박계, 민주당 대표까지 사찰"
이 의원은 또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 부인과 정태근 의원의 부인을 사찰한 당사자도 이 전 행정관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행정관은 친이재오계 인사인 전옥현 당시 국정원1차장, 친박계인 이성헌 의원과,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도 사찰했다고 주장했다.
사찰이 이뤄진 시점도 정두언 최고위원 등이 친이재오계 인사들과 함께 이상득 의원 불출마 촉구 기자회견을 했던 무렵이다. 그래서 사찰 배후에 이상득 의원과 이 의원의 최측근인 박영준 차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정 최고위원 등을 중심으로 꾸준하게 제기됐었다.
이 의원은 친이재오계 J 의원의 측근인 전옥현 전 국정원 1차장이 결국 퇴직한 것과 관련해 "전 전 차장의 부인은 미국의 국정원 직원에게 사찰을 당했었다. 그러다가 2008년 김정일 위원장 와병설이 나왔을 때, 이를 언론에 공개한 발설자로 지목 당해 결국 김성호 원장 퇴임 때 같이 옷을 벗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 전 행정관은 2008년 3월부터 청와대에 있을 때와 2008년 9월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파견된 후에도 정태근 의원 등을 사찰했다"며 "이 전 행정관은 공직윤리지원관실 공식 명부에는 이창화 이름이 없지만, 이는 사찰을 당한 정두언 최고위원, 이성헌 의원 등이 청와대에 강력히 항의해, 청와대로부터 내쳐진 후에 (총리실에서) 사찰을 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지금 질의하는 내용은 민간인 사찰 수사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들"이라고 답했다. 이 의원의 주장이 알려지자 청와대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관계를 조사하겠다"고만 말했다.
만약 이같은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 의원의 폭로는 여권 내 권력 투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총리실 사찰 대상은 어디까지? "<PD수첩>부터 트로트 가수까지 사찰해"
최근 1심에서 징역형을 받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들이 <PD수첩> 등 언론인과 다른 민간인에 대해 광범위한 사찰을 했다는 의혹도 추가로 제기됐다.
이 의원은 "이번 총리실 사찰로 징역 1년 2개월 형을 받은 권중기 경정의 수첩을 입수했다"며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민간인 사찰에 대한 수사가 의뢰된 직후인, 지난 7월 8일 10시회의 때 작성된 메모를 보면, <PD수첩> 정리, 언론정리, 중간보고 2건 등의 문구가 보여 MBC <PD수첩> 관련자와 언론에 대한 사찰내용을 감추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 수첩 메모를 통해서 봤을 때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와 트로트가수에 대해서도 사찰을 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수첩에는 "(수사를 지휘한) 오정돈 부장검사를 비롯해 특별수사팀 지휘라인에 속해 있던 검사들의 인적사항은 물론, 배우자 인적사항까지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검찰 진술을 앞두고 지원관실이 서로 입을 맞추는 등 대응책을 마련했던 내용도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징역 10월 형을 받은 원충연 사무관의 수첩도 공개했다. 이 의원은 "이 수첩을 보면, 김종익 씨 이외에 '이시우'라는 인물에 대해 '비자금 조성부분/자금이 불법폭력시위의 배후지원자금화 첩보'라고 써 있다"며 "지원관실이 이시우 씨에 대해서도 조사를 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은 "이 씨는 지난 2008년 노동자 대회 때 촛불집회 관련 사진 전시했던 사진 작가인 이시우 씨를 가리키는 것이냐"고 이 장관에게 질문했지만 이 장관은 "모른다"고 답했다.
이 의원은 "두 사람의 수첩에서 드러나듯이, 김종익 씨 뿐만아니라 수많은 민간인에 대해서 불법사찰을 했다"며 "민간 사찰은 위험하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인데, 이 사람들이 사찰을 하고 자기 혼자만 알고 있었겠느냐. 심심해서 사찰한 거냐. 사찰이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이냐"고 질타하면서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을 요구했다.
이귀남 장관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검찰에서 철저하게 수사를 했었다"며 "원충연 사무관의 수첩도 법원 판결문에 다 인용이 돼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검찰이 이같은 정황들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치부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나라 "정치공세" VS 민주 "독재 정권"
이 의원은 "이런 불법 행위 의혹이 있는데 검찰은 민간인 사찰 사건 수사를 부실하게 했다"며 "검찰과 관련한 예산을 심의하기 위해서는 법무부장관이 아니라 김준규 검찰총장이 직접 국회에 출석해 답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안형환 대변인은 직접 국회 브리핑실을 찾아 "내년도 국가살림, 예산안을 꼼꼼히 따져야 하는 예결위에서 야당이 전가의 보도인 정치공세를 펼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안 대변인은 "예산심의가 이런 정치공세로 미뤄지거나 수박 겉핱기에 그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예결위가 정치공세의 장으로 확대·변질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검찰총장을 출석시키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안 대변인은 "국회 예결위에 검찰청장이 나온 적은 없었다고 한다"며 "이석현 의원의 주장은 국회 운영위원회 등 다른 상임위에서 따지면 된다"고 선을 그었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제 이명박 정부를 국민을 사찰하고 감시하는 독재정권으로 규정한다"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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