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디가우저(하드디스크 영구 파괴장비)를 전혀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해명한데 대해 이를 반박하는 총리실 내부자 제보가 10일 나왔다.
민간인 불법사찰로 검찰 수사를 받았던 지원관실이 그간 중요 문서 작성 등의 경우 타부서 컴퓨터를 이용한 뒤 이를 디가우저로 지웠다는 것. 민주당 우제창 의원은 이날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중요 업무에 대해서는 다른 부서에서 컴퓨터를 빌려 쓰고 반납할 때 반드시 디가우저 작업을 한 뒤 돌려줬다는 공직윤리지원관실 모 관계자의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우 의원은 "윤리지원관실은 디가우저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한 이유는, 보안을 요할 때는 지원관실에서 다른 부서 컴퓨터를 빌려쓰고, 이를 디가우저로 지웠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공직윤리지원관실 컴퓨터에는 디가우저 사용 내역이 공식적으로 나오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 의원은 또 "2010년 8월 11일에 21건, 총 용량 2000기가바이트를 삭제했는데, 당시에는 8월 18일 디가우저에 대한 검찰 수사를 앞둔 시점이었다"며 "수사를 앞두고 지원관실에서는 타부서에서 빌려 쓴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조직적으로 삭제한 것이다. 이는 애초부터 검찰이 부실수사를 했고, 총리실이 증거를 삭제하는 것을 방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와 관련한 반박은 하지 않고 "(지원관실이 디가우저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그 부분은 확신한다는, 자신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만 말했다. 김 총리는 전날 새벽 3시까지 퇴근을 하지 않고 디가우저 관련 보고 등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 의원이 받은 제보가 사실이라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그간 관행적으로 민감한 자료들을 불법삭제 해왔다는 것이 된다. 황희철 법무부 차관도 이같은 주장에 대해 "(지원관실에서 디가우저를 사용했는지 여부는) 확인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이는 검찰이 지난 8월 18일 지원관실에서 디가우저를 입수해놓고도 재대로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도 읽힌다.
임채민 총리실장이 지난 8일 반박 기자회견에서 "2009년에는 디가우저를 사용하지 않고 이레이저(데이터 삭제 프로그램)를 사용했다"고 주장한데 대해서도 우 의원은 "거짓말이다. 오늘 오전 총리실 실무자가 이레이저 프로그램은 2010년에 구입한 것이라고 밝혔다"고 재반박했다.
결국 '대포폰 사건'을 촉발된 '민간인 사찰 청와대 개입설' 등과 함께 민간인 사찰 수사가 부실수사였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검찰에 대한 재수사 요구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우 의원은 대포폰 사용 의혹과 관련해 "(대포폰을 만들어준 인사가) 포항 출신인 청와대 최 모 행정관이고, 이를 비롯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수많은 인사들이 모두 왕차관 박영준 차관의 수하들이다. 대포폰은 차명폰이 아니라 '영포폰'이라고 불러야 한다"며 민간인 사찰 재수사를 거듭 요구했다.
"국회도 입법권 있다…검찰, 전쟁하자는 거냐"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친목회) 로비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면서 영장 사본을 제시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은 "헌법 12조 3항에는 영장 제시 의무를 규정하는데 형사소송법 규정을 헌법에 규정하는 것은 그만큼 무거운 의미가 있다는 것으로 등본이나 사본으로 집행하면 안된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관행상 이뤄진 일이고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민주당 이춘석 의원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압수수색"이라며 "국회도 입법권을 가지고 있다. 검찰은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 지금 전쟁하자는 거냐"고 몰아세웠다. 이 장관은 이에 "정치적 의도는 없다. 검찰에서 엄정하게 수사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진보 정당에 대한 선거법 위반 수사에 대한 질타도 나왔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은 "선관위가 수사 의뢰한 선거법 위반 등의 건수가 125건인데 이중 민주노동당이 7건이고, 진보신당이 2건이다. 그런데 경찰에서는 진보정당과 진보교육감인 곽노현 교육감 관련 건만 수사하고 있다"며 "가장 위법한 당은 따로 있는데 진보 정당만 수사하는 이유가 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선거법 위반 사례는 내버려두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수사만 경찰이 발표했는데, 유독 진보정당만 수사하는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이에 이 장관은 "나머지 것(한나라당, 민주당 관련 선관위 수사 의뢰건)도 다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국회는 전날 여야 원내대표 합의에 따라 SSM(기업형수퍼마켓)법안인 유통법(유통산업발전법)과 상생법(대중소기업상생협력법) 가운데 유통법을 찬성 241명, 반대 1명, 기권 1명으로 먼저 가결시켰다. 유통법은 전통시장 등의 경계에서 500m 이내에 SSM이 들어오는 것을 제한하는 법이다. SSM 관련 정부가 사업조정 권한을 갖게 되는 내용의 상생법은 여야 합의에 따라 오는 25일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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