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국무총리로 지명된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은 충청권 출신으로 2007년 대선 당시 민주당의 러브콜을 받는 등 사실상 야권 성향이 강한 인물이었다.
특히 최근 들어 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 녹색뉴딜 등에 대해 비판해온 이력이 있어 그가 총리직에 앉게 될 경우 대립각을 세울지, 소신을 접을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국가 개입 확대'론자인 정 후보자의 성향이 최근 이명박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과 일부 맥을 같이할 수 있지만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해온 학자로서 '감세' 등을 앞세운 이 대통령의 '작은 정부론'과는 상충될 여지도 있다.
이명박정부 경제정책 맹비난 했던 정운찬
정 후보자는 정통 경제학자 출신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케인지언'으로 통한다. 케인즈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에 적극적인 재정 정책과 소비진작을 통해 대량실업 등을 극복하는데 이론적 토대를 놓은 인물이다.
정 후보자는 지난 3월 한 강연에서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안 된다. 시장은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규제를 통해 시장이 투명해져야 자본주의를 지킬 수 있다"며 '국가 역할을 확대'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이 자리에서 정 후보자가 이명박 정부가 의욕적으로 내세웠다 슬그머니 접었던 '녹색 뉴딜'을 비판했던 것은 주목되는 부분이다. 그는 "패러다임 전환이 없는 SOC 사업은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미래 세대에 부담으로 남을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현재 '중도 서민' 기조를 내세웠지만 4대강 살리기와 같은 '대형 SOC 사업' 때문에 복지 예산이 삭감되고 있다는 등 논란을 빚고 있다. '복지 재정 확대'를 주장해온 정 후보자가 이 부분에서 정부의 정책 기조를 변화시킬지, 아니면 충돌을 빚게 될 지 주목된다.
정 후보자는 또 "지난 5~10년 간 금융부문에서 많은 실수를 한 사람들이 요직에 있다. 이해할 수가 없다"며 이명박 정부 경제팀에 직격탄을 날렸었다. IMF 이후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은 금융감독원장이었고, 당시 정 내정자가 날을 세웠던 강만수 전 장관은 지금 대통령 경제특보에 내정됐다. 현 경제팀과 정 후보자의 관계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정 후보자의 이같은 성향과 관련해 "총리라는 중책의 자리에 오르면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정치를 하거나 행정할 수 없다. 자기 생각과 다르더라도 국민, 한나라당 뜻은 무엇인지 헤아려 슬기롭고 합리적으로 (총리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즉각 견제구를 던졌다.
여권과 통하는 지점도 있다. 서울대총장으로 교육자 출신이기도 한 정 후보자는 본고사,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3불 정책'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 대선 '충청권' 캐스팅보트 쥐고 'MB 대항마'로 불리기도
정 후보자는 충남 공주 출신으로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그는 한국금융학회 회장,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을 지냈고 이후 서울대 총장을 거쳐 현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는 2006년 1월 충청 향우회에서 '자랑스러운 충청인 대상'을 받는 등 지역색이 비교적 강한 인사다.
정 후보자가 정치권에서 주목을 받은 시기는 서울대총장 시절이다. 당시 당시 인물난을 겪고 있던 민주당에서는 잠재적 대권 후보 중 하나인 정 후보자에 끊임없는 구애 공세를 펼쳤다. 당시 정 후보자는 '한나라당 입당 가능성'에 대해 불쾌한 심정을 비쳤을만큼 여권과 거리를 둔 인물이었다.
지난 2007년 대선 열기가 고조될 무렵 민주당 일각에서는 '정운찬 대항마론'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의 몸값이 뛴 것은 서울대 총장으로 학생 선발에 있어 '지역할당제'를 실시하는 등 '스타성'이 돋보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당이 충청권 출신 인사를 영입해 '충청+민주당'의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 였다는 분석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그해 4월 '정치권에 세가 없다'는 이유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정통 경제학자 출신인 정 후보자가 건설사 사장 출신으로 대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이 대통령과 대조된 것 역시 '정운찬 대항마론'의 근거였다.
정치 활동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정 후보자는 서울대총장 시절 직접 강의에 나서기도 해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미 FTA 등 굵직한 정치 경제 현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발언을 통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었다. 이 때문에 '소심하다', '기회주의자가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었다.
홍익대 전성인 교수, 한성대 김상조 교수 등 학계의 진보적인 학자들이 그의 제자이고 총리 하마평에 올랐던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 한나라당 내 개혁성향의 김성식 의원 등 여야를 아우르는 인맥도 갖추고 있다. 역시 총리 후보로 거명됐었던 자유선진당 심대평 전 대표와 충청 출신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 등과도 가까운 사이다.
정 후보자와 가까운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정운찬 전 총장의 컨셉은 충청도 출신이라는 것도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 서민' 기조와 가깝다. 정 전 총장은 극우도 극좌도 아니다"고 평했다. 친박계 한 의원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크게 거부감이 없는 인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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