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 소녀 앞에 서다
밀봉된 역사가 천 번의 외침으로
물의 날, 단발머리 소녀로
환생하였다
맨발의 울음을 삼키고 별이 된
하얀 적삼들은 갈 곳을 몰라
늘 뒤꿈치를 들었다
숨소리조차 유배되는 이 땅의
조직적인 난청에, 항상
그림자는 낡고 야위었다
유일한 노랑나비만이
생을 건너 뛸 날갯짓으로
곧잘 피어올랐다
현해탄이 몰고 오는 비릿한 바람은
소스라칠 듯 이곳, 초량의
붉은 깃발을 요동치게 했다
제국의 부활이 망령처럼 떠돌고
눈 먼 자들의 맹신적 제의가
흉물스럽게 방치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방년芳年의 세월만큼
두 손을 꼭 쥔 채, 오롯이
시대의 화두를 정면으로 붙잡았다
불온한 왼쪽 어깨 위론, 이미
진실을 타진할 새 한 마리가
신에게 준비되었다
다만 비워 놓은 옆자리엔
그때 그 소녀들이 흔들림 없이
배심원으로 앉아 있었다
시작 노트
부산 도시철도 초량역 5번과 7번 출구 사이에는 우리 시대의 모순을 오롯이 품고 있는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 일제의 착취와 수탈의 전진기지였던 북항 일대와 부산역 가까운 그곳에는 펄럭이는 일장기와 마주하며 꼿꼿한 자세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앉아 있는 그림자가 있다.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정부가 일본과 졸속적으로 처리한 한일합의가 있은 지 꼭 1년이 지난 그날, 이 ‘평화의 소녀상’은 구청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고, 3일간의 정의로운 시민들의 싸움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으로 시작된 위안부 문제는 다음해 1월부터 종로 일본 대사관 앞 수요 집회로 이어졌고, 천 번이라는 지난한 싸움의 과정에서 탄생한 이 소녀상엔 그분들의 한 많은 삶처럼 굴곡진 역사를 바로 잡고자 하는 미래 세대들의 바람과 준엄한 질책이 동시에 함의되었었다. 어린 고사리 손에서부터 교복을 입은 청소년과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이 소중한 가치를 지키려 수구기득권에 맞서 싸우는 아름다운 모습은 이 땅 한반도에 적어도 평화를 싹틔울 한 줌 홀씨가 되지는 않을까?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끊임없이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직접 몸으로 겪어왔기에, 이런 불의(不義)의 고리를 지금 세대에서 끊어내야 할 당위는 소녀상이 가지는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지난 8월말엔 또 한 분의 위안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하상숙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이틀 만에 생전에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하셨던 당신은 모질게 이어온 이 땅에 고단한 육신만을 남기시고 노랑나비가 되었다. 눈을 감기 직전까지 할머니는 무엇을 생각하셨을까? 제국의 광기가 가녀린 그녀들의 인권마저 유린하고 온갖 수모와 굴욕을 강요했던 역사를 떠올리며,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과 사죄를 바라지는 않았을까? 이제 이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증언할 사람은 겨우 서른다섯 분밖에 남지 않았다. 국가가 기억하지 않는 진실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밝히고 기념하는 소녀상, 맨발로 주먹을 꼭 쥐고 앉은 바로 그 옆 의자엔 그때의 수많은 고통 받은 소녀들이 배심원으로 영원히 앉아 계실 것이다. 그리고 마침 그 근처엔 임진년 왜구들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정발 장군의 동상이 마치 재판정 한가운데 서있는 듯 묘하게 오버랩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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