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특위 자문위원회는 "과학과 소비의 발달로 지구환경 자체의 위기가 도래한 상황에서 인류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생명 보호와 환경권을 강화해야 한다"며 환경권에 관한 자세한 개정 의견을 내놨다.
헌법이 환경권을 말하다
△ 환경권을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릴 권리로 명시. 환경권을 개체의 권리이자 집단 권리로 표현해 구체 효력을 확보하고 국가 과제로 명시해 환경 보호를 국가 목표(규범)로 확립
△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중을 명시하고 동물 보호 의무 도입과 입법 의무화 촉진. 인간 기본권을 규정한 헌법에서 모든 생명체 존중을 명시하는 것은 헌법 체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 있으나, 인간 기본권도 인간 사회가 존재한 뒤에 성립할 수 있는 것으로 인간 존속의 기본 조건으로서 생명체 존중을 헌법에 명시한다고 문제 될 것은 없음
△ 국가의 환경 보전 의무(미래세대에 대한 책임과 지속가능성) 명시
개헌 국민투표는 이제 기정사실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개헌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따라서 환경과 생명 가치가 개정 헌법에 어떻게 반영돼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다만 그 전에 개헌이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으므로(일부 환경활동가들도 개헌 필요성에 뚜렷한 공감을 표하지 않았다) 이 점에 관해 잠깐 언급해야 할 것 같다. 그 다른 의견은 "환경권을 그럴듯하게 바꿔본들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기초하고 있다.
헌법에 환경권 조항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지만, 4대강 사업이 '강 살리기' 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시행됐다. 또 엄정하게 보전해야 할 설악산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사업이 정부 지원 아래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다. 환경 보전과 보호에 이바지해야 할 환경영향평가법을 비롯한 환경법들은 이러한 반(反)환경 사업들을 오히려 규범으로 정당화해주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개헌에 다른 의견을 가지는 사람들은 말한다. 문제는 "법이 아니라 정치"라고.
이러한 규범 현실에 관한 인식과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하지만 환경에 관해 제대로 된 개헌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먼저 헌법상 환경권 조항을 보자. 현행 헌법은 환경권을 이렇게 정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35조 제1항).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나는 환경에 깊은 우려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한 근본 이유는 그 사업이 '강은 흘러야 한다'는 강의 자연생태적 본성(자연의 권리를 주장하는 나는 이를 '강의 흐를 권리(right to flow)'라고 표현하고 싶다)을, 물의 순환과정을 파괴, 훼손했다는 점에 있다고 본다. 여기서 인간 생활환경의 보전은 2차 관심 사항이고, 이보다 앞서는 관심 사항은 강 자체에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도 이런 점에서 마찬가지다. 여기서도 인간의 쾌적한 생활 환경 보호보다는 산양 서식지 보전과 나아가 인간에 의한 과도한 이용으로부터 국립공원 자체의 보호가 사업을 반대하는 근본 이유라고 본다.
헌법상 환경권 조항이 4대강 사업 같은 반환경적 사업을 적절히 제어, 통제하지 못한 까닭은 지금의 환경권 조항이 지나치게 인간중심주의로 구성된 데도 있다고 본다. 따라서 쾌적한 환경에 생활할 권리인 환경권을 생태중심주의 구성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헌법의 정체성에 관해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보통 '최고규범'이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헌법을 '한 정치공동체가 갖는 기본 가치질서를 규정하고 있는 법'으로 보자고 말하고 싶다. 헌법은 한 사회의 기본 가치 질서다. 개헌은 이런 가치 질서에 변경을 가하는 작업이고, 이 문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어떠한 가치 질서 위에 세우기를 바라는가 하는 '미래기획' 관점에서 적극 생각하고 바라봐야 한다.
가령 우리 모두가 인간 존엄성이 노동영역에서도 보장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면,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을 헌법에 담도록 노력해보는 것이다. 이 가치 원칙이 헌법에 담기면 앞으로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이라는 원칙에 반하는 법과 제도, 관행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 위헌(상태)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개인이나 집단이 위헌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입법과 행정 차원 조치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자연과 생명 가치가 그 무엇보다 존중되어 이것이 법 제도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의 생각과 태도, 행동을 지도하는 원리가 되는 그러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러자면 위에서 언급한 이유와 같이 개헌과정에서 이러한 가치가 온전히 반영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헌법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우선 다뤄야 할 사항은 현세대 인간 중심 헌법(가치)를, 우리 인간(미래세대를 포함하여)과 그 밖의 다른 비인간 존재들의 기반인, 자연의 고유한 존재가치와 이익을 인정하는 생태 중심 헌법으로 그 가치 중심점을 이동시키는 일이다. 인간 운명은 지구 위 생명공동체 운명과 통합돼 있다. 지구 위 자연은 단순히 인간의 필요에 쓰이는 자원 집합이 아니다. 인간은 지구 위 생명공동체 한 성원으로, 우주와 지구의 진화 여정에서 축복으로 주어진 이성을 통한 성찰능력을 발휘해 지구 위 생명공동체를 돌봐야 할 책임이 있다. 자연에 내재하는 근본 가치와 인간과 그 밖의 다른 존재와의 상호의존성, 또 생명공동체 한 성원으로서의 책임이 헌법에 언급돼야 한다.
자연에 내재하는 가치와 관련해 자연의 권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환경보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연의 권리'를 말하는 이가 늘고 있다. 이런 주장을 제도화하려는 노력들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에콰도르는 2008년 9월 세계 처음으로 "자연과 조화하면서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안녕(well-being)을 추구"할 것을 선언하며, 자연의 권리를 명문화한 헌법을 채택했다. 유엔 총회는 2009년 4월 22일 결의(A/RES/63/278)를 통해 4월 22일을 '국제 어머니 지구의 날(International Mother Earth Day)'로 선포한 바 있다. 여기서 '어머니 지구'라는 용어는 "인간과 그 밖의 다른 종들과 우리 모두가 거주하는 행성 지구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의존성"을 반영한다. 2010년 4월 22일, 기후변화와 어머니 지구 권리에 관한 세계시민회의는 어머니 지구의 권리 내용을 자세히 담고 있는 세계선언을 채택했다. 2017년 2월 5일 발표된 멕시코시티 주 헌법은 제18조에서 '자연의 권리'를 인정했다.
자연의 권리 인정은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동물의 권리(적어도 동물의 고유한 이익)를 헌법이 인정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인간의 건강이 인간 이외의 동물의 존재 상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살충제 달걀' 파동을 통해 다시 한번 분명해졌다. 달걀 파동 근본 원인은 공장식 밀집 사육에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애초에 방지하려면 사육 환경을 바닥부터 바꿔야 한다. 지금껏 달걀 생산 비용을 높인다는 이유로 문제점을 지금 상태로 유지해 왔다. 독일은 2002년 헌법에 동물 보호 규정을 도입했다. 그 뒤 독일에서는 산란 닭의 거의 대부분은 평사(넓은 공간에서 바닥사육) 또는 자유 방사로 기르고, 13.4퍼센트 정도만 닭장에서 사육하고 있다. 닭장에서 길러진 닭에서 나온 달걀 시장점유율을 2004년 60퍼센트에서 2012년 기준 13.4퍼센트로 줄었다. 이는 독일이 동물 보호를 헌법에서 명시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환경 국가' 원리의 명시다. 한국의 환경법 체계는 제법 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정치 환경에 따라 '규제프리존법' 같은 특별법 탓에 그 체계가 일순간에 무너질 정도로 취약하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이런 특별법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설령 만들어지더라도 위헌으로 선언될 수 있도록 헌법 총강 부분에 환경 보호를 국가목표로 규정하는 환경국가원리를 명시해야 한다. 환경 국가 원리는 자연의 순환 과정과 재생능력 존중을 경제 질서의 기본 바탕으로 삼아야 하고, 국토의 지속가능한 보전과 관리를 위해 국토 계획-환경 계획을 연결해 세우도록 명해야 한다.
환경권은 의무와 책임이 뒤따르는 분명한 권리로 규정해야 하며 이를 위해 환경권을 '환경을 더불어 누릴 집단 권리'로 재구성해야 한다. 또 시민과 시민단체 참여 보장을 통한 환경 협치 체계를 보장·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귀중한 자연자원 보전에 국민의 사법 접근권과 특히 동물보호단체에 입법·행정·사법과정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
나는 자연을 물질문명의 존속을 위한 단순한 자원의 집합으로만 여기지 않는, 곧 자연에 내재하는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러자면 지금 개헌논의가 '환경권을 어떻게 지금보다 더 효과 있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인간 중심 권리 담론으로 축소돼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자연의 가치를 정치공동체의 가치질서 속으로 훨씬 더 깊숙이 밀어 넣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될 때 우리가 인간 중심주의 사고와 태도에서 벗어나 생태 중심 가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한 인간과 사회로 바뀌는 바탕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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