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사정(司正)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검찰이 일부 여권 인사와 함께 주요 '표적'으로 야권의 굵직한 인사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24일 취임 100일을 맞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정치권을 겨냥한 표적 사정은 없다"면서도 "기업 비리 수사 과정에서 파생적으로 정치인의 비리가 나오는데 버려둔다면 그것은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이어 "정치인 수사가 그런 차원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최근 태광 그룹 비자금 수사, C&그룹 비자금 수사 등에서 야당 정치인들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권에서 역시 한나라당 장광근 의원이 불법 후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는 등,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야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당선 축하금을 건넸다"고 지목했던 이 대통령의 '절친' 천신일 세종나모 회장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와 함께, 대우조선해양 남상태 사장 연임 로비 창구였다는 의혹도 나온다.
또한 태광 그룹 비자금 사건은 DJ정부, 노무현 정부, 그리고 현 정부 인사 등 어느쪽으로 불똥이 튈 줄 모르는 상황이다.
C& 그룹의 경우 대검 중수부가 수사에 나섰고, 구속 영장이 발부된 임병석 회장이 전남 영광 출신이어서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등 민주당을 긴장케 하고 있다.
태광 그룹 비자금 사건이 터진 이후 주목도가 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한화 그룹 비자금 사건 역시 "야당 거물을 겨냥한 것"이라는 말이 많다. 여권에서 DJ 정부 시절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와 관련해 감사원 감사 청구를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 역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재계의 '실세'인 천신일 회장,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냈던 장광근 의원의 비위 혐의를 건드리고 있는 마당인데, 야권 인사들 3~4명 정도를 터는 것은 일도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검찰 안팎에서는 '박연차 사건' 수사 이후 사실상 '개점 휴업' 상황이었던 대검 중수부가 C& 그룹 사건을 맡으면서 "조만간 재계 서열 10위권 내 대기업 수사를 시작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특히 지난 민주 정부 10년 동안 사세를 크게 확장했던 그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검찰의 기획 사정이 야권 위축시키고 민주주의 후퇴시켜선 안돼"
가장 불안한 것은 민주당이다. 전병헌 정책위의장은 당장 "기획사정"이라며 반발했다. 전 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공정사회가 '사정사회'로 귀결되면 공정한 사회에 대한 기대는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 의장은 "C&그룹에 대한 정보도, 민주당 의원 중 누구의 실명이 거론됐는지도 모른다"면서도 "정부와 검찰의 기획 사정이 야권을 위축시키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부작용을 내서는 안 된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춘석 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내고 "검찰수사를 흔쾌한 눈으로만 바라볼 수만은 없다. 그간 검찰의 수사에는 명백히 성역이 있어왔고 검찰의 수사에는 의도가 있다고 읽혀왔음이 사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의 BBK 의혹과 도곡동 땅 실소유 여부의 뇌관인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한 사실상의 방치와, 천신일 회장의 대우해양조선 로비 의혹에 대한 굼뜬 수사 및 해외 도피 방조의혹,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정권 실세의 비호 아래 연임에 성공한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에 대한 미지근한 대응, 청와대가 직접 개입됐다는 새로운 증거들이 나오고 있지만 재수사만은 못하겠다는 민간인 사찰 수사 등 검찰이 사실상 손을 놓은 수사가 한둘이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변인은 "살아있는 권력에는 무조차 자르지 못하는 검찰의 칼이 대검중수부의 부활과 함께 날카롭게 다른 목표를 향하고 있다"며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 관련 사건을 '과거'로 돌리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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