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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미남' 존박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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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미남' 존박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

[기고] 10년 뒤 슈퍼스타K12엔 이주노동자 2세가 우승한다면…

여전히 많은 시청자들은 한국말이 서툰 교포나 외국인 출연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어눌한 말투 때문일까? 돌이켜 보건대 십 수 년 전 배우 신현준이 풋풋하던 시절,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한 MBC 드라마 <1.5>에서 두 손을 모으고 어수룩한 말투로 '사랑합니다'라는 대사를 칠 때 여자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어디 그 뿐인가.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한국말을 못하기도 하지만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아 여전히 대부분 영어 대사로 <도망자>에 출연 중인 혼혈인 배우 다니엘 헤니는 <내 이름은 김삼순>이 한창 방영될 당시의 신드롬보단 덜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주요 배역을 맡으며 한국서 연기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며 남성그룹 2PM 멤버인 외국인 닉쿤은 뒤떨어진 한국어 실력에도 예능 프로그램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이래저래 민망한 기사거리, 영어강박증 탓인가?

▲ <슈퍼스타K2>에 출연 중인 존박. ⓒ연합
이유를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어눌한 한국어는 무언가 부족함을 보여줘 이른바 내재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반면 유창한 영어는 서구사회에 대한 환상과 영어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돼서 그런지도. 생각해보면 어릴 적부터 상상 속의 백마 탄 왕자는 말만 하얀 게 아니라 얼굴까지도 하얗지 않았나.

그 외에도 이유야 많겠지만 어쨌거나 최근 전국민적 관심 속에 마지막 결승을 남기고 있는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2>의 생존자 존박이 마치 다니엘 헤니의 바통을 이어받은 듯 인기 행진 중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예전 연인과의 민망한 사진부터 플레이오프 개막전 애국가 제창 당시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던 일, 얼굴의 좌우대칭을 바로잡기 위해 했다는 필러시술까지, 이래저래 일거수일투족이 기사 거리다.

혹자는 이제 <슈퍼스타K2> 마지막 생방송 결승이 다가오자 "만약 미국 국적인 존박이 우승해 2억 원의 상금을 타면 세금 원천징수는 어찌되는지"를 묻는다. 궁금한 거야 호기심이니 어쩔 수 없지만 언론에서 이를 다루는 방법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되도록 '바지 아래는 건드리지 않는' 정치인 등 권력자들과 반대로 연예인은 사생활 보호 없이 난도질당하는 한국 연예기사 속에서 하물며 아직은 가수지망생일 뿐인 스물셋 재미교포 청년을 보호해 줄 장치는 아무 것도 없다.

상상해본다. 동남아 이주노동자 2세의 슈퍼스타K 출전을

많이 알려졌다시피 존박은 미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9> TOP20 출신이다. 그 프로그램의 영향력을 생각해 봤을 때, TOP20 정도면 스타급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이미 <아메리칸 아이돌9>을 비롯한 대학시절 아카펠라 그룹 활동 영상 등 그의 자료는 인터넷에 널리고 널려있다. 그런 그가 <슈퍼스타K2>에 출전한 것에 대해 이래저래 또 말이 많다. '미국에서 20등 한 사람이 한국에서 1등하면 국격에 맞지 않는다'라거나, '<슈퍼스타K2> 제작진이 상품성 때문에 그를 의도적으로 밀어주고 있다' 등 그의 출전에 대한 네티즌의 억측과 비판은 앞서 말한 연예기사와 맥을 같이 한다.

동양인 최초로 <아메리칸 아이돌> TOP20에 올라갔던 존박은 심사위원들에게 노래와의 교감이 부족하다는 평가와 함께 탈락했다. 이미 <아메리칸 아이돌>은 2005년 팝스타 엘튼 존까지 "인종차별이 벌어지고 있다"며 미국 방송계를 강하게 비판하는 등, 탈락자를 두고 끊임없는 인종 차별 논란이 있는 프로그램이다.

더욱이 '필리핀에서는 크게 될 수 있겠다, 아시안(Asian)은 출연해서는 안 된다'라는 존박에 대한 미국 일부 네티즌들의 비아냥거림을 봤을 때, "아들이 동양인이라는 핸디캡으로 인종차별을 겪어야만 했다"는 그의 어머니의 말이 과도한 자식 사랑으로 인한 피해의식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인지 <아메리칸 아이돌9> 관중석에 앉아 있는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한국인 중년 부부가 백인 관객들 틈바구니에서 매우 위축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상상해본다. 10년쯤 후 <슈퍼스타K>가 장수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아 시즌10 정도의 무대를 꾸밀 때 한국교육을 받고 자란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의 자녀가 출전하는 모습을. 이미 2010년 현재 이주노동자 120만 명,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10만 명을 훌쩍 넘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자연스러운 미래가 아니겠는가.

한국에서 어릴 적부터 자라 정서상 한국인과 전혀 다를 것이 없고 재능 있는 가수지망생이더라도, 음색과 외모 모두 토종 한국인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다. 이주 노동 1세대인 동남아 출신 부모님을 둔 출전자는 실력 그대로 한국인 관객과 교감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또한 그의 부모님은 한국인 관객들 속에서 백인 혼혈 앤드류넬슨의 미국인 아버지처럼 당당하게 관중석에서 자신의 모국어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남-미국-장신인 존박이 1등하는 건 재미없다?

얼마 전 4명의 생존자가 프로야구 개막식에서 애국가를 부르게 됐을 때 '애국가 부르려면 군대부터 갔다오라'는 무슨 '주의'라고 이름 붙이기도 뭣한 이 공격은 실제 그간 숱한 외국 출신 남자 연예인들에게 그래왔듯 존박에게도 날아왔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타블로보다 한국어에 미숙하며 재범처럼 거대 기획사의 보호막조차 갖추지 못한 가수지망생 존박은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다.

혹자는 "미남-미국-장신인 존박이 1등하는 건 재미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게다가 중졸 학력에 불운한 가정환경, 세련되지 못한 외모 탓에 행사무대를 전전해야 했던 '서민 후보' 허각의 우승은 영국의 폴 포츠만큼이나 감동적이다.

그러나 제1세계에서 제3세계 출신으로 겪었을 아픔 또한 만만치 않았을 존박이 마치 다른 후보들보다 권력에 가까운 것처럼, 혹은 어차피 상업성을 목표로 하는 이 시장에서 그가 우승하면 마치 공평하지 못한 경쟁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도 사실 좀 어이없는 일 아니겠나. 그리고 모든 선거가 그러하듯 어차피 투표의 묘미는 결과보다도 흥미진진한 과정 그 자체에 있는 것을.

꽤나 괜찮았던 재미를 기억하며, 다른 미래를 그려 본다

이번 주 금요일, 어쨌든 누군가 1등을 할 것이고 누군가는 떨어진다. 누가 되든 이미 그들은 우리에게 꽤나 괜찮은 감동을 선사했으며 국민적 관심을 얻은 스타인만큼 어떻게든 가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내 맘대로 진짜 감동을 상상해 본다. 10년쯤 후 최근 개봉해 조용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방가? 방가!>에 '알리'역으로 출연해 트로트를 구성지게 부른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칸 모하마드 아사두즈만 씨의 2세가 그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슈퍼스타K>에 출전해 우승한다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감동을 주며 눈물 쏙 뺄 드라마가 될 거라고.

그리고 약속한다. 만약 그 때가 오면 난 그가 차별받지 않고 경쟁할 수 있도록 한 표라도 모으기 위해 나이고 체면이고 없이 팔을 걷어붙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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