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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토성에서 백제 수도임을 증명하는 '首府(수부)'명 기와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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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토성에서 백제 수도임을 증명하는 '首府(수부)'명 기와 출토


전북 익산시 금마면 익산토성 발굴조사에서 서문지 및 백제시대 초축 성벽이 확인됐다.


사진제공=익산시

익산시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 따르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익산시 금마면 익산토성(사적 제92호) 발굴 조사에서 익산이 백제 무왕대 수도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首府'명 기와를 비롯한 백제시대의 막새와 인장기와 등이 출토됐다는 것.

'首府'명 기와는 수도 지역임을 지칭하는 유물로서 부여에서는 왕궁으로 추정되는 관북리 유적과 피난성인 부소산성에서 출토된 바 있다.

이번 익산토성에서 출토된 '首府'명 기와는 익산의 왕궁유적에서 출토된 13점의 자료와 더불어 익산지역이 백제의 首都였음을 증명해 주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밖에 출토유물로는 백제시대의 '北舍'명 토기편을 비롯하여 토제 연가(煙家)편, 삼족토기, 병형토기, 그릇받침 등이 출토됐다.

'北舍'명 토기는 부여 관북리와 부소산성에서 출토된 예와 비교되는데, 역시 왕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유물로 추정된다.

익산토성은 백제시대 때 축조된 성으로 오금산성, 보덕성으로도 알려져 있다. 성곽의 둘레는 690m내외로 두 봉우리와 남쪽의 곡간부를 감싸는 형태를 띤다.

지난 1980년과 1984년 시・발굴조사를 통해 남문지가 조사되었으며, 남성벽 일원에 판축 토루와 일부 성벽의 축조양상을 확인하였다. 더불어 연화문, 파문 수막새와 인장와 등의 유물이 출토되면서 인근 왕궁리유적과 연계하여 그 중요성이 인지됐다.



이번 조사는 익산토성의 향후 보존 및 정비계획 수립의 일환으로 2016년 8월부터 진행됐다. 익산토성 내부(26,400㎡)의 시굴조사를 통해 건물지 및 유구의 흔적을 확인하고, 이후 서쪽지점(2,400㎡)에 대해 정밀발굴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새롭게 서문지가 확인됐다. 서문지는 북서모서리에서 남쪽으로 약 50m지점 개거식의 구조로 확인됐는데 후대에 폐쇄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축성벽은 지형을 ‘L’형으로 절개한 후, 자연암반 위에 최대 13단의 성벽을 축조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최하단석의 밀림을 방지하기 위해 흑갈색-적갈색점질토를 성토하여 보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도 익산토성 내부 조사에서는 원형의 집수정과 수혈유구 및 건물지 와 연관된 초석 등이 확인되었다. 원형의 집수정은 직경 1.5m, 깊이 90㎝로 주변으로 1m너비의 회갈색의 점토를 이용해 방수시설을 하였으며, 부여 부소산성의 소형 집수정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정헌율 익산시장은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연차적인 발굴과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나아가 백제왕궁인 왕궁리유적을 비롯한 주변 백제유적과 연계해 백제 수도의 모습을 되살려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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