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원혜영 하면, 농업이나 기업에 관심 있는 사람, 혹은 사회나 철학, 종교에 관심 있는 사람은 그의 아버지 원경선 옹을 떠올리게 된다. 민주당 전 원내대표, 원혜영 의원의 아버지 원경선 옹은 한국 유기농의 '대부'로 통한다. 그의 아들 원 의원이 쓴 <아버지, 참 좋았다>는 "자식도 유기농으로 키운" 원 옹의 인생이 담겼다. 아버지 원경선과 정치인 아들 원혜영 부자(父子)의 인생 이야기다.
원경선 옹의 이름을 인터넷 검색창에 넣으면 관련 책들이 줄줄이 딸려 나온다. 그 중 정치인 아들이 기술한 자신의 '거울', 아버지 원경선 옹의 삶을 읽으며 그를 상상해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이 책을 얘기하려면 '원 부자'의 전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1914년 생인 원 의원의 아버지 원경선 옹은 49년 당시 경기도 부천군 오정면 도당리에서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자리를 잡았고, 공동체를 꾸린 후 55년 '풀무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농장 공동체 식구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농사일로 풀무질 해서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비타베아타 |
무엇보다 원경선 옹은 '유기농'을 최초로 시도했던 사람이다. 원 의원은 "아버지가 유기농업에 눈을 뜬 것은 1974년, 일본의 기독농민들 모임인 '애농회'에서 발행한 잡지에 실린 '농약과 화학 비료를 사용해 지은 농사는 간접 살인'이라는 글을 통해서였다"고 회상했다. 원경선 옹은 이후 최초의 유기농 단체인 정농회를 설립했고, '생명농사'를 기치로 내걸었다. 당시는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어서 화학적 비료 사용이 관장되던 때였지만 원 의원은 "아버지는 이런 저런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고 유기농에 필요한 거름을 대기 위해 농장 한편에 항상 퇴비 더미를 쌓아두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원 의원은 아버지 원경선 옹과 '씨알 사상'을 주창한 함석헌 선생과의 특별한 인연도 기술하고 있다. 함 선생의 신앙과 철학에 감복한 원경선 옹은 89년 함 선생이 타계할 때까지 각별했다. 원 의원은 "아버지도 농사를 지었지만 함석헌 선생도 천안에 씨알농장을 마련해 농사를 지었다. 서로 농사꾼을 자처한 것도 두 사람 사이를 더욱 격의 없게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힘겨웠지만 올곧은 길만 걸어오신 자랑스러운 나의 아버지" 원경선 옹의 '유기농법'으로 자란 원 의원은, 이후 대학생 시절 반독재 학생 운동에 투신해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결국 서울대학교에서 제적을 당한 그는 아버지가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유통시키기 위해 (주)풀무원식품을 81년 창업해 6년간 경영을 했고, 이후 경영에 손을 뗀 뒤 92년 14대 총선을 통해 중앙정치로 진출했다.
▲ 원경선 옹. ⓒ비타베아타 |
그 아버지의 그 "유기농법"은 아들에게도 적용됐다. 원 의원은 "아버지는 농사만 유기농으로 했던 것이 아니라 아들도 유기농한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원 의원이 생각하는 '정치', 그리고 '개혁'은 새로운 것을 행하는 게 아니라 본성대로 돌려놓는 것, 제 모습을 찾는 것이라는 말이다. "아버지는 내 삶의 거울"이라는 원 의원은 다음과 같은 부자간의 대화를 싣고 있다.
내가 정치를 하겠다고하자 아버지가 던진 질문은 두가지였다.
"하나님 기준으로 바르게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 기준으로 잘 할지는 장담 못하겠지만 사람의 기준으로는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원 의원이 쓴 <아버지, 참 좋았다>는 아버지의 인생에 대한 회고, 그리고 그 아버지 밑에서 자라 지금의 위치를 찾은 자신의 이야기가 한 챕터 씩 엇갈리게 서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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