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전국에서 처음일 것이다. 섬에 대한 마을 만들기, '가고 싶은 섬' 만들기 사업이 전남에서 섬 스물네 곳을 우선 대상으로 3년 차 진행 중이다. 이미 존재 자체가 친환경적인 섬을 개발하되, 상상하는 그런 토목사업을 통한 개발행위는 없다. 공정여행, 착한여행, 생태여행지 조성이 그 목적이다. 주민들이 섬을 떠나지 않고, 고향을 떠나 도시 노동자로 떠도는 청년들이 돌아와 '살고 싶은 섬'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생태여행지 섬
섬은 유리병같이 조심스럽다. 수천 년 동안 바람과 파도에 부대끼며 스스로 멸할 것은 멸하고 겨우 살아남아 고유한 생태계를 이룬 자연환경이 그러하고, 가까스로 살아낸 주민들의 삶이 그렇다. 개발의 이름으로 사납게 다가서는 모든 행위는 문화적 침략에 가깝다. 사실 섬은 간섭하지 않고 그냥 내비두는 것이 최상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 사람이 산다. 날마다 잊혀가고 올해와 내년의 생존 여부를 가늠하기 어려운 노인들이 산다. 섬을 떠난 청장년들이 돌아오고 싶어도 먹고 살 '거리'가 없어서 망설이는 곳이다. 대부분 섬의 유일한 교육기관인 초등학교는 폐교된 지 오래고, 국가가 제공하는 대국민 서비스 제도는 멀다. 주민센터, 편의시설, 복지시설 심지어 병·의원도 없다. 때문에 섬들은 점점 비어간다. 해마다 공도의 개수는 늘어나는 추세다. 국토의 손가락이자, 발가락에 해당하는 섬은 정치인들에게는 '표'가 안 되고, 행정으로부터는 관리가 힘들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방치돼왔다. 아니면 일부 유명한 섬들처럼 유람선 업자들 입맛에 맞게 개발됐거나….
2015년 여섯 개의 섬이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되어 나란히 출발했다. 여수 낭도, 강진 가우도, 고흥 연홍도, 완도 소안도, 신안 반월박지도, 진도 관매도. 2016년 장도와 생일도가 합류하였고, 2017년 기점소악도와 손죽도가 추가되어 10개의 섬이 움직이고 있다. 해마다 두 개의 섬을 선정하는데, 공모전의 참여 열기는 뜨겁다. 여수 낭도는 300명 정도의 주민들이 사는 큰 마을이다. 봉수대가 남아있고, 남장여장 여장남장의 신기한 축제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장 선출을 하는데 대통령 선거하는 줄 알았다. 입후보, 정견발표, 투표, 재검의 순서를 거친다. 올해 당선된 이장은 2등과 한 표 차이로 아슬아슬했다. 100년 된 젖샘 막걸리가 현존한다.
고흥 연홍도는 고흥반도의 끝자락, 거금도의 새끼 섬이다. 두 시간이면 섬 둘레길(2.9km)을 완주할 수 있는 작은 섬이다. 폐교를 미술협회에서 매입하여 지금도 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유일한 섬인섬 미술관이다. 관장 부부는 섬에 귀촌하여 뿌리내리고 산다. 선착장에 내리면 커다란 흰 소라 두 마리가 여행자를 반긴다. 골목의 낡은 벽들은 해양폐기물의 놀라운 변신을 보여주는 정크아트 전시장이다.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주민들이 운영하는 마을식당, 유자막걸리를 먹을 수 있는 마을카페가 있고 미술관에서는 맛있는 커피를 판다. 미술 섬 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주민들의 작품도 마을카페와 벽면을 가득히 장식하고 있다.
천개의 섬, 천개의 이야기
이외에도 천연기념물 방풍림이 있어 섬 둘레길이 아름다운 소안도, 어머니들의 무르팍을 고장 나게 만든 펄 배가 어업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 벌교 장도에는 사람보다 꼬막이 더 많이 산다. 주민들이 집집마다 꽃을 기르는 화원의 섬, 손죽도. 아침저녁으로 물바다에서 흙바다로 변하는 기적을 볼 수 있는 신안군의 기점도와 소악도, 천사의 다리가 갯벌 위를 길게 가로지르는 반월도와 박지도. 무엇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진도 관매도는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되기도 한 3만 평의 소나무 숲과 높은 피톤치드를 자랑한다. 아슬아슬하게 벼랑에 걸린 '하늘다리' 가는 길은 가히 환상적이다. 국립공원답게 다양한 야생화를 품고 있으며 섬 가운데 습지가 있다. 여기에 여름에는 십만 평의 노란 유채 물결이, 가을에는 메밀꽃이 흰 소금처럼 핀다. 선창에 내리면 커다란 생일케이크가 있어 '빵' 터지게 만드는 365일 생일인 섬 생일도, 5개의 노둣길을 건너가는 섬, 기점 소악도의 갯벌은 람사르 보호구역이다.
해양, 생태, 문화, 지역경제, 스토리텔링 등의 자원도 조사를 실시하고서야 기본계획을 세운다. 동시에 섬 주민들은 대학생이 되어 공부를 시작한다. 한 학기에 열 시간씩, 1년에 스무 시간을 공부한다. 4학년이 되어서야 졸업한다. 그때쯤이면 섬 마을만들기 사업이 지속가능할지 여부도 어렴풋이 짐작되는 시기다. 도청, 군청, 전문가그룹, 주민 이 네 그룹이 함께하는데 다자 간의 소통이 가장 문제다. 도청과 군청이 소통이 안 될 때도 있고, 군청과 주민이 각을 세우기도 하고, 주민과 주민 간에 그럴 때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그것이 안 되면 다 실패한다. 오죽하면 소하고도 말이 통하게 하는 것이 '소통'이라고 하겠는가.
섬마다 주제와 콘셉트는 다르지만, 기본적인 시설 갖추기는 비슷하다. 우선 걷는 길을 수작업으로 만든다. 폭 1.2미터 내외의 오솔길을 복원하는 것이다. 옛사람들이 나무하러 다니던 길, 학교 가던 길을 전통방식으로 만든다. 큰 섬은 6킬로미터 이상이 되기도 하고, 작은 섬들은 3킬로미터 안팎인데 섬의 오솔길들은 한쪽 귀로 파도 소리를 듣고 걷는데 풍경 또한 참으로 '오지게' 어여쁘다. 그리곤 방문자들을 위한 숙소를 짓는데 주로 폐창고, 폐가를 찾아 리모델링한다. 펜션이 되기도 하고 게스트하우스가 되기도 한다. 관매도는 경로당 옆 칸을 민박으로 개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섬마다 협동조합을 구성하여 마을기업을 구축했다. 미역도 팔고, 톳도 판다. 그리고 마을민박과 마을식당도 운영한다. 섬마을의 음식 맛은 '일러 무삼 할' 것이다. 로컬푸드에 웰빙이고 대부분 유기농이며 세상에 없는 음식들이 많다. 일자리 창출은 어디 먼 데서 외치는 메아리 없는 구호가 아니라 현실 속에 발을 담글 때 가능한 일이다. 공동작업, 공동수익을 원칙으로 한다.
'가고 싶은 섬' 사업은 올해로 3년 차 접어들고 있다. 이미 다섯 개의 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문을 열고 손님을 맞고 있다. 굽이마다 수월케 가는 일은 없지만, 아쉬운 점은 청년들이 섬으로 들어왔으면 하는 것이다. 급여를 꽤 준다고 해도 마을사무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그 섬에서 2년만 살고 싶다' 아니면 인생 1막 2장은 섬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 선한, 생태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 없을까? 가까운 일본의 경우 국가가 운영하는 '이도센터'를 통해 유능한 청년들이 섬으로 들어와 주민들과 작은 사업체를 만들기도 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하는 등 청년들의 발걸음이 섬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래저래 정책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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