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영화는 사드배치의 불필요성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와 전문가들의 증언보다, 사드가 들어와서 성주라는 지역의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에 대해 집중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사드라는 절대악의 생성과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마치 히어로영화가 그렇듯 절대악인 빌런(villain)의 탄생 과정보다 히어로(hero)의 탄생에 집중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사실이 그렇다. 사드는 어느 날 갑자기 성주 지역에 뚝 떨어져 버렸다. 그렇다면 서사는 지금부터인 것이다. <파란나비효과>는 절대악에 맞서 싸우며 성장해가는 히어로 영화와 닮아 있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절대악에 맞서 두려움 없이 싸우지만 하늘을 날지도, 그렇다고 그 괴물 같은 사드를 휴지조각처럼 구겨서 던져버리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다른 헐리우드 히어로 영화만큼 흥미진진한 건 바로 각 캐릭터들의 성장과정이 그만큼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들의 변화 혹은 성장은 자신들의 반성과 고백에서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이수미씨가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삼십 몇 년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간첩의 소행인 줄 알았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이국민씨가 "내가 백골단을 하면서 제일 싫었던 게 나도 모르게 투쟁가를 따라 부르게 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라고 말하는 것도, 또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를 지지했다는 김정숙씨가 딸에게 "박근혜 찍지 않을 거면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던 것 역시 어쩌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드라마틱한 장치가 아닐까.
그런데 그들의 살아온 세월과 경험을 생각하면 삶의 가치관이 바뀐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완성된(혹은 완성되었다고 생각되는) 인격체의 변화는 쉽지 않은 법이다. 게다가 그들이 사는 지역이 ‘보지도 않고 1번을 찍는’ 경북의 어느 한 지역이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절대악이라 할 수 있는 사드의 등장으로 자각의 계기를 맞게 된다. 히어로영화로 치자면 주인공이 드디어 자신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깨우치게 되는 이야기의 시작인 셈이다.
자각 뒤 마주하는 적은 너무나 거대하다. 성주 주민들이 직면하게 되는 가장 궁극적인 적이 ‘국가’이기 때문이다. 절대악인줄 알았던 사드는 이렇게 ‘중간보스’ 쯤으로 밀려난다. 혈서(결과적으로 큰 밑밥이었지만)까지 써가며 함께 싸움을 시작했던 김항곤 성주군수는 제3부지(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를 핑계로 사드배치 찬성으로 돌아서 버린다. 성주가 지역구인 이완영 국회의원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의심스러운 내부의 동지(영화 속 표현에 따르면 ‘관군’)였다가,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배신을 ‘때리고’ 절대악의 편에 서버린다. 평화를 위해 사드를 들여온다는 형용모순처럼 국민을 위해야 할 국가가 그 자체로 큰 모순이 되어 버린다. 국가의 부재.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 밀양과 삼평리의 송전탑 반대 투쟁 등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장면이다.
그렇다고 좌절할 순 없다. 그들은 국가라는 보다 분명해진 적에 대항해 새로운 싸움을 만들어 간다. 의심스러운 관군은 빠지고 의병만이 남은 싸움은 오히려 즐겁다. 그렇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드가 들어올 예정지인 성산포대를 수 킬로미터 인간띠를 만들어 둘러싸는 모습은 이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관군들은 자존심 버린 배신에도 모자라 비열한 공격을 감행한다. 남성들이 국가를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겠냐며 눈치를 살피던 때 사드배치 반대투쟁을 조직하고 싸움의 최전선에 썼던 주민들 중 대부분은 여성들이었다. 그런데 김항곤 성주군수는 관변단체들과의 회의 자리에서 이들을 향해 ‘술집하고 다방하는 그런 것들’이라며 여성비하 발언을 한 것이다. ‘국가’라는 거대 모순에 맞서 싸우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삶의 모순들 역시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잠시나마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런 행태에 소름이 끼치지만 주인공들은 이 싸움 역시 피할 생각이 없다. 배미영씨의 말처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촛불집회에 나와 투쟁하는 이들이 권력의 기생충들보다 훨씬 떳떳하고 멋지기 때문이다. 싸우면 싸울수록 주인공들은 점차 완전체가 되어 가고 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주민들 사이에 국가라는 절대악을 이길 수 있겠냐는 의구심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 싸움은 성주라고 다르지 않았던 느슨한 마을 공동체를 더욱 활기차게 만들어주었고, 진심을 알고주고, 뜻 맞는 사람들과 무언가를 함께한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임을 느끼게 해주는 싸움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일상에서의 작은 승리들 일지도 모른다. 성주주민들의 투쟁이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조롱거리로 전락했을지언정 뭐 어떤가. 히어로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언제 처음부터 ‘나 히어로요’ 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들도 처음에는 조롱과 무시를 당하지 않는가. 그러다 결국 악을 깨부수는 게 누구인가. 주인공들로 대변되는 성주 주민들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렇게 싸워나가며, 성장해 나가고, 작은 승리들을 일구어 갈 것이다. 물론 마지막 승리가 주인공의 몫임은 당연하다.
<파란나비효과>가 다른 히어로영화처럼 시리즈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들은 분명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우리 사회의 부당함과 억울함이 있는 곳에 늘 나타나 활약을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어떤 부조리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배미영씨의 말처럼 먼저 이렇게 질문하고 행동할 것이다. "아, 이러면 안 되지. 그럼 이제 내가 뭘 해야 하지?"라고. 주인공들은 이미 엄청나게 진화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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