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용인해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 경영권 승계가 가능하다'라는 점을 삼성과 박 전 대통령 모두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금융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등 시장감독기구에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고 했다. 삼성물산 주주들이 일방적인 손해를 보게끔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지난 2015년 합병 역시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해 "순수 경영 목적이 아닌, 삼성 미래전략실의 기획에 따라 진행된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의 일부"라고 밝혔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5명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 위원장이 밝힌 내용이다.
이건희 쓰러진 뒤, 삼성 수뇌부가 김상조 찾아와 조언 구해
그리고 김 위원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14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김종중 전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 등 삼성 수뇌부가 수시로 자신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삼성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삼성 미래전략실 수뇌부의 고민을 알게 됐다는 것.
김 위원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삼성SDS 상장, 메르스 사태 대응, 이 부회장의 삼성공익재단 이사장 취임 등 법적·사회적 논란이 있는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최종 결정 전에 (김종중 전 사장이 김 위원장에게) 알려줬다"고 밝혔다. 이는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에 대한 김 위원장의 증언이 추정이 아닌 사실에 바탕한 것이라는 뜻이다.
김 위원장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삼성 수뇌부가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 부회장, 장충기 전 사장, 김종중 전 사장 등 4명의 집단지도체제로 재편됐다"고 밝혔다. 이 회장이 갑작스럽게 쓰러진 탓에, 이 부회장이 제대로 경영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 4명 사이엔 알력도 있었다고 했다.
"대통령 메시지 따라 시장감독기구 판단 달라질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는 혐의 등으로 이 부회장 등 5명을 기소한 박영수 특별검사 측은 "대통령이 국무회의 및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등에서 삼성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적법 절차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는 신호만 줘도 담당 공무원이나 여론에 큰 영향을 미쳐 승계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금융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등 시장감독기구의 법 집행에 대통령의 메시지가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김 위원장은 "합병 및 분할, 주식 이동 등과 관련해 적법과 불법을 따지는 시장감독기구의 경우 재량적인 판단의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시장은 매일 빠른 속도로 변해 그 기준을 법령에 세세히 적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최종 국정책임자의 메시지에 따라 시장감독기구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통령이 편법승계 반대했다면, 삼성물산 합병 시도 못했을 것"
김 위원장은 "최종 국정책임자가 적법성과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했다면 공무원들이 업무수행의 매우 중요한 지침으로 생각해 재량적 판단에 매우 엄격하고 신중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위원장은 "반대로 대통령에게 다른 방향의 메시지가 나오면 다른 재량권 행사의 여지가 충분히 생길 수 있다"며 "해당 기업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행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검 측이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편법승계에 반대했다면 실제 삼성물산 합병 및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 승계 작업을 시도조차 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자, 김 위원장은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이어 "대통령이 용인하지 않으면 승계가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도 "그렇다. 금융위나 공정위의 법 집행에서 대통령의 메시지가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답변을 반복했다.
다만 특검 측이 "이 부회장 입장에선 대통령이 요구한 정유라 씨 승마 지원 등을 한 이상 승계 작업을 마음 놓고 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묻자, 김 위원장은 "그 부분은 개인적인 입장을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 수뇌부, 4인 집단지도 체제
김 위원장은 그동안 김종중 전 사장과 자주 만났던 사실을 자세히 공개했다. 삼성 미래전략실 수뇌부는 사실상 최지성 전 부회장, 장춘기 전 사장, 김 전 사장 등 3명으로 돼 있다. 이 부회장은 공식적으론 미래전략실 소속이 아니다.
가장 선임인 최 전 부회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가정교사 격이었다. 장 전 사장은 이른바 대관업무를 총괄했었고, 김 전 사장은 재무 전문가다. 김 위원장이 한성대학교 교수 및 경제개혁연대 소장이었던 시절, 김 전 사장이 김 위원장을 자주 만났던 건, 불법 가능성이 있는 경영권 승계 작업에 대한 반대 논리를 알기 위해서였다. 또 김 위원장이 삼성 내부 정보로 사익을 취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 최 전 부회장, 장 전 사장, 김 전 사장 등 4명이 이끄는 구조였다. 이들 4명은 해외 출장이 없는 한, 거의 매일 모여 회의를 했다. 이 부회장과 나머지 3명은 수직적인 주종 관계가 아니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와병으로 갑작스레 경영책임을 맡게 된 이 부회장이 경영에 자신감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이 건강하던 시절과는 대조적이다.
최 전 부회장, 장 전 사장, 김 전 사장 등은 알력을 품고 경쟁하는 관계였다고 한다. 김 전 사장이 김 위원장을 수시로 만나는데도, 장 전 사장 측 임원이 김 위원장과 따로 접촉한 사실도 공개됐다.
김상조 진술이 사실에 기반했다는 증거
이 같은 사실들을 법정에서 공개한 건, 사실관계에 대한 증언 목적이었다. 김 위원장은 삼성의 경영 방식 및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에 대해 아주 자세히 진술했는데, 그게 이론적 추정이 아닌 사실에 기반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김 위원장은 특검 측이 요청한 마지막 증인이다. 그는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전 경제개혁연대를 이끌며 재벌의 불법, 편법 행태를 집중적으로 감시했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증인 출석을 위해 하루 휴가를 내고, 관용차 대신 자신의 차를 직접 운전해서 법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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