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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파시즘 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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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파시즘 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

[창비주간논평]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

미디어 관련법이 표결과정의 불법성에 대한 헌재의 결정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남겨두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미리부터 개정 미디어법을 근거로 방송산업 재편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기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를 선언했지만 도덕적·법적 논란을 무시하고 의석수 우위를 앞세운 밀어붙이기식 정국운영이 변화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이러한 정국운영에 대한 반발을 누르기 위해 점점 더 공안통치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예견되는 이러한 악순환이 최근 파시즘체제에 대한 논란을 부르고 있다. 현상 이면의 본질적 문제를 파악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이명박정부의 성격을 구조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민주주의 위기를 성급하게 파시즘의 등장 가능성과 연계시키는 것이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도 크다.

한국에 파시즘체제가 등장했는가?

파시즘체제의 등장에 대한 논의가 성급하다는 것은 파시즘체제를 형성할 동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체제의 형성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위계층에 대한 호소, 아래로부터의 동원과 함께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는 출범 이후 고소영내각, 부자감세, 그리고 4대강 정비사업에 이르기까지 특수계층의 이익대표자임을 노골적으로 보여주었고 이에 따른 민심 이반도 돌이키기 어려운 정도로 거세졌다.

자본주의체제의 지속을 위해 필요한 이른바 총자본의 이익을 고려하는 세력을 찾기 어렵고 개별 자본들의 공공성 약탈만이 전면적으로 진행되는 양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시즘체제로 나아갈 동력이 만들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이명박정부의 통치행위의 특징과 관련해서는 자유주의와 법치주의의 논리들을 편의적으로 배합하는 방식에 대해 더 분석적인 논의가 필요하며 이를 파시즘체제의 전조로 보는 것으로는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파시즘 논의의 부정적인 측면은 이것이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기보다는 가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의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설명은 경제적 환원론의 경향이 강하다. 즉 파시즘 형성의 원인 혹은 동력으로 신자유주의적 경제구조나 여기서 비롯되는 실업 및 비정규직의 문제를 지적한다.

노무현정부 시기에는 이후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정치적 민주주의의 퇴행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 혹은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무관심이 존재했다. 이 논리에서도 경제적 문제만을 핵심문제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다.

양자 모두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이해에 일정한 편향을 드러내는데 이는 주로 정치적 요인, 특히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이 지닌 특수성을 외면하는 데서 비롯된 문제로 보인다. 과거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이러한 논리를 따르게 되면 정치적 균열에 내재하는 역동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진보적 동력을 축소시키기 십상이다.

분단체제하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구조

사실 1987년 이후 진행된 절차적·제도적 민주주의의 진전은 어느 정도 낙관을 가능하게 할 정도의 성과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성과가 특수한 구조적 요인에 의해 항상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 요인은 바로 분단체제이다. 분단체제하에서 한국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에는 민주주의 원리를 전제로 하는 진보-보수의 분포를 벗어나, 민주주의 원리 자체를 부정하는 이념적 경향들이 큰 비중을 차지해왔다.

이러한 이념적 경향은 정치제도와 사회제도에서 과잉대표되었으며 그동안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이러한 구조적 요인에 의해 분단체제하의 기득권세력과 친화성을 갖는 상층권력의 등장이 곧 민주주의에 대한 노골적 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분단체제하에서 민주화가 진전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성과가 기득권세력의 반격에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1987년 이후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려는 세력과 역진시키려는 세력 사이의 팽팽한 긴장관계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민주주의의 성취는 장기적이고 지난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를 잘 이해한다면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 지나친 낙관도 비관도 필요 없으며, 현재의 위기를 특별히 새로운 현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할 필요도 없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현재성과 정치연합

이렇게 보면 '민주 대 반민주'를 낡은 대립구도로 여기는 태도의 문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진보든 개혁이든 자신의 가치를 발전시키고 다수의 지지를 받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민주주의는 계속 핵심적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적지않은 사람들이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를 불편하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보다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민주당 같은 '보수'적 정치세력의 이익이 될 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 정치연합의 성과가 불균등하게 배분되는 상황에서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를 외면하면 그 세력은 더욱 주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뉴시스

그러나 완고한 분단체제의 기득권세력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려는 정치연합에서 민주당이 핵심적 역량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연합의 성과가 불균형하게 배분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인데, 여기서 '민주 대 반민주'라는 구도를 외면한다면 그 세력은 더욱 주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민주주의 진전을 위한 정치연합을 형성하는 가운데 그 정치적 성과가 더 공평하게, 가능하면 진정으로 민주적인 세력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분배되는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 타당한 전략이며, 여기서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를 결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연합의 성과에 대한 분배전략에 집중해야

우선 정치적 성과의 불균형한 분배를 해소할 수 있는 장치와 룰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오픈 프라이머리, 선거구제 개편 등이 그러한 논의의 의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지역 차원, 풀뿌리 차원에서의 민주주의 토대를 강화시켜 정치연합 내에서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 이는 매우 장기적 과제이지만 이러한 축적 없이 새로운 정치세력을 주장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당면한 국면에 대응하기 위한 연합을 확대시키는 과제와 장기적으로 민주주의의 토대를 강화하는 과제를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는 데 있다. 정치적 선언에 앞서 이러한 과제를 추진해갈 때 새로운 정치주체 형성이라는 지평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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