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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차기 정부, 사드 정책검토 당연히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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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차기 정부, 사드 정책검토 당연히 해야"

[인터뷰]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 특임교수 <2>

지난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항공모함인 칼빈슨호가 한반도 인근 해역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 한 마디에 한반도는 금세 전운에 휩싸였다. 북한이 고(故)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에 맞춰 핵 실험이나 미사일을 발사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양절 당일까지도 트럼프 대통령이 보냈다고 말한 칼빈슨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칼빈슨호는 한반도와 반대 방향인 인도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가 거짓말을 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 특임교수는 이와 관련 트럼프 정부가 기만 전술을 썼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한편, 현재 트럼프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심지어 워싱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폭스뉴스를 보고 칼빈슨호의 행적을 알게된 것 아니냐는 농담 아닌 농담도 흘러나온다고 문 교수는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트럼프 정부의 행태와 더불어 한국 정부의 행보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한국 정부 모르게 전쟁을 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는데, 한국 정부가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제대로 모니터하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문 교수는 특히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꼽으며 "지난 3월 17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방한했을 때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에 있다고 하면서 군사행동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당시 회담 상대였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여기에 동의해주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며 "우리의 동의 없이 군사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못 박아야 할 외교장관이 저러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누군가의 말처럼 '망국의 좀비' 같다"며 "과도기 정부의 각료가 이런 식으로 잘못된 신호를 주어서 미국이 파국적 행동이라도 벌이면 어찌 할 것인가. 안타까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4월 위기설은 북한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불거진 측면도 있다. 이에 대해 문 교수는 "부시와 오바마 모두 가치나 이념의 잣대에서 북한을 바라봤는데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과 거래를 할 생각이 있어 보인다"며 "이념보다는 실리의 잣대에서 북한에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트럼프가 '견문이 좁고(ill-informed)', '충동적(impulsive)' 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북한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모한 행동을 취할까 우려된다"면서도 "트럼프가 집필한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deal)을 보면 최악의 경우를 준비하지만, 계속 압박을 가하다 기회를 보라는 대목이 있다"며 "트럼프는 북한을 계속 밀어붙이다가도 북한이 조금만 꼬리 내리면 바로 협상하자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사드와 관련,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배치 완료를 결정하는 것이라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발언에 대해 문 교수는 "지극히 건전하고 상식적인 발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 정부의 정책 검토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지극히 당연한 절차"라며 "오히려 대선 전에 배치를 완료하려 하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국방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몰상식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인터뷰는 지난 19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1편 보러가기 : 문정인 "北이 가시적 조치하면 北美협상 급물살 탈 수")

▲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 특임교수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지난 9일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부 데이브 밴험 대변인은 북한을 제어하기 위해 칼빈슨호가 싱가포르를 떠나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0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칼빈슨호가 태평양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고 하면서도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11일에는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서 무적함대를 보낸다며 칼빈슨호의 한반도 해역 진출을 사실상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칼빈슨호는 한반도 쪽으로 북상하지 않았다. 함대 사령부에 국방장관, 대통령까지 모두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미국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셈인데, 어쩌다가 미국의 신뢰도에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는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문정인 :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전략적 기만 시각이다. 강대국들은 기만 전술을 많이 쓴다. 존 미어샤이머의 저서 <왜 리더는 거짓말을 하는가? (지도자의 거짓말에 관한 불편한 진실)>라는 책을 보면 전략적 이익을 위해 미국 지도자들은 과거에 기만 전술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미국은 세계 2차대전 때 독일 잠수함이 미국과 영국의 상선을 공격하지 않았지만, 공격했다는 빌미로 참전을 결정했다. 1964년 통킹만 사건도 마찬가지다. 당시 월맹이 미군 전함 매독스에 대한 공격을 가하지도 않았는데 공격한 것처럼 꾸며 대대적 월남전 개입을 정당화 한 바 있다. 이런 것을 전략적 기만이라고 하는데, 이번 사태 역시 전략적인 허풍, 허세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잘못된 정보에 의해 트럼프가 독자적 행동을 했다는 이론이다. 사실 트럼프가 폭스 뉴스를 보고 칼빈슨호가 북상하는 것으로 오인, 이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내부 사람들은 이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리얼리티 쇼에 나오는 트럼프의 모습 그대로다.

사실 지금 미국 행정부가 국방 정책 수립이나 집행에서 '콩가루 집안'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故)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에, 가장 결정적인 시기였던 15일에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시험을 감행할 수 있고, 그러면 이에 맞춰서 타격하겠다고 했는데 그때 레이건호는 요코스카 항에 있었고 칼빈슨호는 남중국해에 있었다. 그리고 4월 15일 당일에는 칼빈슨호가 순다해협을 통해 인도양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실제 칼빈슨호가 예정에 없던 북상을 했다면 한반도 전쟁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래서 이게 정말 대북 억지 차원에서 계산된 허풍이었는지, 아니면 미국 정부 시스템에 정말 큰 구멍이 생긴 것인지는 규명돼야 하는 문제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 정부의 행보다. 미국은 전략적으로 허세를 부릴 수 있는데, 칼빈슨호의 전개를 두고 한국 국방부는 지난 10일 정례브리핑에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가능성 등 북한의 전략적 도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해 이뤄지는 만반의 대비태세 차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무런 정보도 없고 판단도 확립되지 않았던 것 같은 답변이었다.

이건 미국이 한국 정부 모르게 전쟁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준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제대로 모니터하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다.

프레시안 :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지난 3월 중국을 방문해서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를 만났는데, 중국에서는 진짜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할 것이라고 믿고 있고 이미 한국은 여기에 동의해준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했다고 한다.

문정인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 지난 3월 17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방한했을 때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에 있다고 하면서 군사행동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당시 회담 상대였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여기에 동의해주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우리의 동의 없이 군사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못 박아야 할 외교장관이 저러고 있으니, 중국이 아니라 선제타격 행동 당사자인 미국에서도 이걸 묵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정말 누군가의 말처럼 '망국의 좀비' 같다. 과도기 정부의 각료가 이런 식으로 잘못된 신호를 주어서 미국이 파국적 행동이라도 벌이면 어찌 할 것인가. 안타까운 일이다.

▲ 미 항공모함 칼빈슨호 ⓒ미 해군

프레시안 : 트럼프 행정부가 취임한 지 석 달 정도가 지났다. 대선 전에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보다는 트럼프 후보가 우리에게 기회가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다. 지금까지 행보로 봤을 때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에게 정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나?

문정인 :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나 부시처럼 이념적‧가치적 경직성을 가진 인물이 아니다. 부시는 '악의 축'이라는 개념을 쓰면서 적과 아군을 구분했고, 오바마는 인권 혹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로 봤을 때 북한은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고 했다.

즉 부시와 오바마 모두 가치나 이념의 잣대에서 북한을 바라봤는데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과 거래를 할 생각이 있어 보인다. 이념보다는 실리의 잣대에서 북한에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대화나 협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중국도 그런 점에서 트럼프를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모든 게 가변적이다. 여기에는 북한의 태도가 관건이다. 북한이 중국에 설득 당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핵, 미사일 행보 중단하고 미국과 대화 의사를 우회적으로라도 보이면 트럼프가 화답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프레시안 :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도 후보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면서 견문이 좁고(ill-informed) 충동적(impulsive) 이라는 평가가 있다.

문정인 : 단기적인 위협이 있다. 북한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모한 행동 취할까 우려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문제가 극복되길 바란다. 미국 정부의 각 부처에서 한반도에 대한 브리핑하지 않겠나. 그런 점에서 충분히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충동적인 부분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골목대장 식으로 상대방을 성가시게 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충동 또는 본능적으로 극적인 거래를 할 수도 있다. 이념이나 가치가 아니라 실리 추구의 장사를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거래가 더 쉬울 수도 있다.

트럼프가 집필한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deal)을 보면 최악의 경우를 준비하지만, 계속 압박을 가하다 기회를 보라는 대목이 있다. 트럼프는 북한을 계속 밀어붙이다가도 북한이 조금만 꼬리 내리면 바로 협상하자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

사드 배치, 차기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 '상식적'


프레시안 :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한국에 왜 들렀을까?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사드 배치 완료는 한국의 다음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하더니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공동발표에서는 사드 배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개정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문정인 : 펜스 부통령의 방한은 이 지역 동맹국들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관례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 일본과 한국이 주요 동맹국인데 펜스 부통령이라도 와서 인사를 하고 관계를 강화 하는게 좋은 것 아닌가.

의전적인 측면도 있다. 원래 주요 방문지는 일본인데 일본 가면서 한국에 오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게다가 펜스 부통령의 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 동성무공훈장을 받은 바 있다. 펜스 부통령에게는 엄청난 정치적 자산이다. 그래서 이번에 가족들까지 모두 데려와서 판문점을 방문하기도 했다. 일종의 '애국적인 가족'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강조하는 행보를 보인 것이다. 펜스 부통령의 방한은 이러한 여러 목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본다.

▲ 마이크 펜스(왼쪽) 미국 부통령이 17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오찬 및 면담을 가진 이후 공동 발표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FTA 문제는, 기존 조약을 검토(review)하고 개혁(reform) 할 수 있다고 했다.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재협상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걸 그렇게 민감하게 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국이 아무리 FTA를 바꾼다고 해봐야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지 못하면 계속 적자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일본과 FTA를 체결하지 않았음에도 대일적자가 대한국 무역 적자보다 훨씬 빨리 크게 늘어났다. 결국 FTA가 무역 수지의 절대적인 변수는 아니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무역수지에서는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적자를 보고 있다고 하지만, 경상수지 차원에서 보면 한국이 미국에 직접 투자한 금액이 600억 달러, 미국이 우리에 투자한 금액이 200억 달러 정도다. 그렇게 보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적자만 보는 것은 아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 펜스 부통령의 입장도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미국 정부도 그렇고.

문정인 : 펜스를 수행했던 백악관 관리가 사드 배치 문제를 대선 후 새롭게 출범하는 한국 정부와 이야기하겠다고 한 것은 아주 건전한, 상식적인 발언이었다고 본다. 민주국가 미국의 시각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히려 대선 전에 배치를 완료하려 하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국방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몰상식한 것 아닌가?

지금 정부의 임기는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차기 정부가 들어오면 정책 검토를 거쳐야 한다. 민주 국가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절차다. 여기서 사드 배치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이 정부에서 대못을 박아 버리자는 것인데, 아무리 북한의 위협이 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대단히 정략적이자 자신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아집을 반영하는 몰상식의 극치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정책 검토를 통해 오바마 케어뿐만 아니라 의회에서도 인준이 끝났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뒤집었다. 물론 역대 정부가 한 것을 무조건 뒤집는 것이 100% 능사는 아니지만, 새 정부의 이러한 정책 검토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지극히 당연한 절차다.

게다가 한국은 대통령도 탄핵한 나라다. 국민의 열망을 반영하여 전반적인 정책 검토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 이치에 맞는다. 새 대통령이 들어서면 해야 할 일을 왜 '과도기 정부의 좀비 각료'들이 나서서 서두르고 있는 것인가?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사드 도입은 절차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국회와 협의하지도 않았고 배치 지역인 성주 및 김천 지역의 주민들과 제대로 된 공청회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밀어붙이기식으로 하다 보니 경제적인 피해를 보는 국민들도 생겨났다. 사드에 대한 중국 보복으로 1조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나. 그 피해는 더 커질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서면 이런 문제들을 당연히 검토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건 홍준표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도 해야 할 과정이다.

그리고 실제 사드 배치가 언제 완료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환경영향평가도 거쳐야 하고, 사드 배치와 관련해 법적인 소송 문제로 들어가면 6개월이 걸릴지 1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한국과 미국, 중국이 북한과 잘 소통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없애나갈 수도 있다. 그러면 사드 배치할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번에 새로 들어오는 정부가 인수위는 없지만, 사드가 군사적으로 유용한지, 사드를 운용하면 북한의 행태를 바꿀 수 있는지, 추가로 사온다고 한다면 비용은 얼마나 될지, 중국과 러시아는 어떻게 반응을 할지 등등 검토를 해야 하지 않나? 그리고 '국익의 손익 계산'이라는 관점에서 제 검토하고 국회와 국민의 의견을 물어보고 나서 최종적으로 결정해도 늦지 않다.

더군다나 지금 배치하려는 사드가 수도권을 방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사드는 기본적으로 주한미군과 시설을 방어하기 위한 것인데, 당장 우리의 생사를 결정하는 무기 체계도 아니다. 정책검토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사드 배치 시작이 미국의 상층부보다는 군에서 먼저 결정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기도 했다. 록히드마틴 쪽에서 들어온 민원을 처리하는 것과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는 관측도 있는데?

문정인 : 처음에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본다. 이미 사드가 국가 정상이 다루는 이슈가 되어 버리지 않았나? 미국과 중국 간의 기 싸움이 돼버렸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온 것에는 당사자 중 하나인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5년 3월까지만 해도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요청도 △한미간의 협의도 △결정된 바도 없다는 이른바 '3NO' 입장을 유지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이 그해 9월 1일 중국에서 항일 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행사에 참석해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을 때만 해도 중국은 이 문제를 따로 거론하지 않았다. 또 같은 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워싱턴에 가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했을 때 역시 사드 문제는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고 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1월 13일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문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감안하면서 우리 안보와 국익에 따라서 검토해 나갈 것"이라며 다소 입장을 바꿨다.

그리고 그해 2월 7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인 광명성호를 발사하자 그날 오후에 한미 양국 군 당국은 브리핑을 통해 사드 배치 가능성에 대한 공식 협의 시작을 결정했다. 그리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3월 4일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과 토마스 밴달(Thomas S.Vandal) 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이 국방부에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를 협의하기 위한 한미 공동실무단 구성 관련 약정에 서명했다.

합의문도 없는 사드가 배치로 결정 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합의문은 없을 수밖에 없다. 한국 내 미군이 들어오는 문제는 모두 소파(SOFA, 주둔군 협정)에 의해 진행된다. 주한미군이 탄저균을 들고 들어오는 것도 모르는데, 미국이 몰래 사드 들여오면 알 수 있겠나?

또 미국 입장에서 사드가 그렇게 중요했다면 2015년에 국방장관 회담과 정상회담 때 왜 의제에 넣지 않았겠나. 이렇게 보면 록히드 마틴이라는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 국무부와 국방성의 부차관보 수준 관리들의 쟁점화가 성공을 거든 사례라 하겠다.

▲ 류제승(오른쪽) 국방부 정책실장과 토머스 밴달 미8군 사령관이 지난해 3월 4일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방부에서 사드 배치 협의를 위한 한미 공동 실무단 구성 협약 약정을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국방부

프레시안 : 지난 19일 KBS TV토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사드 문제와 관련 '전략적 신중함'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얼핏 봐서는 전략적 모호성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전략적 신중함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입장이 한국의 대외정책이 가져가야 할 방향이라고 보시는지?

문정인 : 두 개념 모두 분명하지가 않아 보인다. 아마 전략적 모호성은 사드 관련 우리의 입장을 미국과 중국에 애매모호하게 함으로서 정권을 잡은 후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것이고, 전략적 신중함은 '전략적 모호성'이 좌우 양측에서 비판받으니까 모호성을 신중성으로 단어만 바꾼 것 아닌가 한다.

심상정 후보를 제외하고는 다른 후보들 중 문재인 후보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보다 솔직했으면 한다. 사드와 관련, '군사적 유용성에 대해 미국이나 한국 정부로부터 자세히 보고 받은 바도 없고 절차적 하자가 있으니 이번 대선 기간 중 확실한 답을 줄 수 없다. 집권하면 면밀한 정책 검토를 통해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고 하면 될 일이지 전략적 모호성이니 신중성이니 하는 수사를 쓸 필요가 없다고 본다.

한국, 전쟁 막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프레시안 : 사드와 함께 박근혜 정부 재임 기간 중에 실패했던 대표적인 외교 안보 정책으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문제를 꼽을 수 있다. 대권 후보들 모두 위안부 협상을 다시 하거나 파기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문정인 : 일본은 이 합의를 소녀상 철거로 받아들이고 있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결정이라고 못을 박았다. 어떻게 한 정부가 역사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규정하나?

우리가 일본에 이기는 길은 딱 하나다.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10억 엔을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서 돌려주고 대신 대사관 영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은 시민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일본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통령이 역사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최종적‧불가역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고 지난 정부가 부적절하게 합의한 것이라고 규정해야 한다.

또한 한일 관계에 대한 입장도 분명히 해야 한다. 한미일 3국 공조라는 동맹의 틀 보다는 한중일 3국의 협력과 통합의 질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일본이 중요한 파트너라는 점을 부각시켜야 할 것이다.

역사 문제는 백년이 지나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과거사 문제는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가야한다. 역사 갈등은 최소화 시켜 나가면서 협력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독도 문제나 역사 문제 가지고 국제사회에서 일본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 그건 일본이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 쟁점화가 되기 때문이다.

독도는 우리 땅인데 국제무대에 나가서 우리 땅이라 선전할 필요 있나.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과거 일본의 만행을 학계와 언론계를 통해 우회적으로 알리면 된다. 일본과 이전투구 할 필요 없다. 우리의 국격을 살리면서 일본을 압도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일본에 100억 원을 돌려주는 것은 찬성하는 여론이 높을 것 같은데, 소녀상을 이전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닐 것 같다.

문정인 : 소녀상 이전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강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본에 비해 월등한 도덕적 우위에 설 수 있도록, 용서는 하지만 잊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전국 곳곳에 소녀상을 설치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어떨까 싶다.

▲ 문정인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핵 문제를 가지고 속도를 내고 있는데, 정작 거기에서 한국이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정부가 가장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문정인 : 새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전쟁을 막는 것이다. 한반도의 급변사태를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세 방향의 접근이 필요한데 우선 남북부터 대화를 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북한의 의도를 파악한 뒤 워싱턴에 이를 전달해줘야 한다. 중국과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고 남북, 북미, 한미, 한중, 북중 관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우리가 북쪽과 통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에 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서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북한과 관계를 완전히 단절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외교적인 자원을 스스로 없애버린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를 한미관계에 예속시키면서 미국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것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귀를 누가 잡느냐는 상당히 중요하다.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 대통령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한국 대통령이다. 진솔하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면 그만큼 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다음 대통령이 이런 부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프레시안 : 동북아를 둘러싼 큰 질서를 바라보고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하는데 지엽적인 사안에만 매몰돼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문정인 : 노무현 정부 당시 동북아시대위원장으로 있을 때 노 대통령이 지시했던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앞으로 20년 후 동아시아 질서가 어떻게 변할지를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 정도의 안목이 있었던 대통령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대선 후보들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만 매달려있고, 사드와 한미 동맹만 염두에 두고 있는데 이건 지도자의 길이 아니다. 한국이 당장 내일 없어질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백년대계를 보는 외교적 철학과 지역질서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없어서 걱정이다.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비전 제시가 실종된 이런 대선은 처음 본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은 '무오류성'이라고 하는 미국의 전염병 문제를 그의 최근 칼럼에서 지적한 바 있다. '자신들은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는 이러한 전염병이 이제 한국에도 상륙한 것 같다. 모든 것이 북한과 중국의 잘못이고 우리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식이다. 잘못한 것이 없으니까 반성도, 고칠 것도 없는 거다. 지금 야당 후보들도 무오류성에 빠져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되면 정책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외교와 관련해서 제일 중요한 것이 철학적 기조다. 일정한 기조를 가지고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여기서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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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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