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당시 딱 한 번 '경북'에서 21.65%를 기록했을 뿐, 지난 30년동안 10% 전후의 야박한 표심을 보였다. 심지어 1987년 당시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는 대구에서 2.63%, 경북에서 2.33%를 얻는데 그쳤다.
1987, 16년만의 '직선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대구경북 대선 표심은 말 그대로 '보수 몰표'였으며 '反민주당 몰표'였다.
12.12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대통령 선거인단 선출'이라는 전무후무한 선거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호헌'을 내세웠지만 국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현재의 헌법인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해 12월 16일, 1971년 이후 16년만에 국민들의 직접투표로 대선이 치러지게 됐다.
그러나 역시 쿠테타 주범인 '민주정의당(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당선으로 선거는 막을 내렸다. 당시 노태우 후보는 36.64%,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 28.03%,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 27.04%,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후보는 8.06%를 득표했다. 당시 노태우 후보의 득표율은 지난 30년동안 깨지지 않는 '최소 득표 당선'이었다. 그러나 대구경북은 달랐다. 노 후보는 대구에서 70.69%, 경북에서 66.38%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대구에서 2.63%, 경북에서 2.33%에 그쳤다. 노태우 후보는 전국 최다 득표였으며 김대중 후보는 전국 최소 득표였다.
1992년 제14대 대선은 김영삼-김대중-정주영의 3파전이었다. 1987년 대선에서 '군정종식'을 외치던 김영삼이 쿠테타-유신세력과 손잡고 1991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합당'을 이뤄 '민주자유당(민자당)'이라는 간판으로 출마했고, 김대중은 '민주당'으로, 정주영은 '통일국민당'으로 나섰다. 최종 전국 득표율은 김영삼 41.96%, 김대중 33.82%로 10%이내 차이였다. 그러나 대구경북은 극과 극의 지지를 보냈다. 김영삼은 대구에서 59.59%, 경북에서 64.72%를 득표한 반면, 김대중은 대구에서 7.82%, 경북에서 9.62%에 그쳐 또 다시 10%의 벽도 넘지 못했다.
1997, 첫 정권교체 - 2002, 노무현
첫 정권교체를 이뤄낸 1997년 제15대 대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40.27%를 얻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38.74%)를 불과 1.53%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그러나 대구경북은 이회창 후보에게 전국에서 가장 높은 60~70%의 지지(대구 72.65%, 경북 61.92%)를 보낸 반면 김대중 후보에게는 전국에서 가장 낮은 대구 12.53%, 경북 12.66%의 표만 주었다.
대구경북의 이런 표심은 21세기 들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2년 제16대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48.91% 득표율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46.58%)를 2.33%포인트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그러나 대구경북은 이회창 후보에게 7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대구 77%, 경북 73.46%)를 보낸 반면, 노무현 후보에게는 대구 18.67%, 경북 21.65%를 주는데 그쳤다. 그나마 대구경북에서 통칭 '민주당' 후보가 87년 직선제 이후 처음으로 20%에 턱걸이했다는 점이 이채로울 정도였다.
2007~2012. '이명박근혜'
이른바 '이명박근혜'로 이어지는 2007년, 2012년 대선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2012년 제18대 대선 때는 대구경북이 80%라는 최고의 득표율을 박근혜 후보에게 안겨주기도 했다.
2007년 제17대 대선에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48.69%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26.14%)를 넉넉히 따돌리고 당선됐는데, 당시 이명박 후보는 대구에서 69.37%, 경북에서 72.58%를 득표한 반면 정동영 후보는 대구경북 모두 6% 수준(대구 6.00%, 경북 6.79%)에 그쳤다. 특히 대구경북은 이명박 후보에게 70%정도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면서도, 세 번째 출마한 무소속 이회창 후보에게도 대구 18.05%, 경북 13.72%의 지지를 보냈다. 이명박·이회창 후보가 같은 '보수' 성향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80%가 넘는 '보수 몰표'인 셈이다.
2012년 제18대 대선. 5년 뒤 '국정농단'으로 헌정 사상 첫 '파면'에 이르게 될 것을 예상하지 못한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무려 80%의 득표율을 '박근혜'에게 안겨줬다.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51.55% 득표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48.02%)를 누르고 당선됐다. 두 후보간 전국 득표율 차이는 3.53%포인트였다. 그러나 대구경북에서는 무려 60%포인트이상 차이였다. 박 후보는 대구에서 80.14%, 경북에서 80.82%를 득표한 반면 문 후보는 대구에서 19.53%, 경북에서 18.61%에 그쳤다. 대구경북은 통칭 '민주당'에게 또 다시 20%의 벽도 허락하지 않으면서 '이명박근혜' 10년의 최대 지지자가 됐다.
TK '보수 몰표'. 30년 만의 변화는?
1987년 이후 '대통령 직선제' 30년이 된 2017년. 그동안 정당의 간판이 여러 차례 바뀌었을 뿐 뿌리 깊은 '보수' 정서는 대구경북에 여전히 남아있다. 실제로 '탄핵' 이후 처음 치러진 지난 4월 12일 재보궐선거 결과, 대구경북은 국회의원 1석과 대구시의원 1석, 대구경북 기초의원 4석 모두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내줬다.
지난 30년동안 보수정당은 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꿨고, 새누리당은 현재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나뉘었다. 통칭 '민주당' 역시 평화민주당-민주당-새천년민주당-대통합민주신당-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꿨고,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당'이 분가했다.
제19대 대선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4월 17일 현재,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비롯해 15명이 대선 후보로 뛰고 있다. 문재인·홍준표 후보는 첫 날부터 대구를 찾았고 안철수 후보도 18일 대구에서 유세전을 펼친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 그리고 '국정농단'을 단죄하는 촛불 항쟁으로 이끌어 낸 2017년 5월 9일 대선. '보수 몰표', '反민주당 몰표'를 보여온 대구경북의 표심, 30년만에 그 '몰표'의 역사가 변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프레시안=평화뉴스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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