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인용하자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이 침통한 분위기에 빠졌다. 지도부는 "헌재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침착한 공식 입장을 내놨지만, 친박계 조원진 의원은 탄핵 선고 직전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열린 '탄핵 기각 집회'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는 등 사실상 초상집 분위기다.
인명진 비대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 이현재 정책위의장, 박맹우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를 텔레비전 생중계로 지켜봤다. 겉으로는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만장일치로 인용 결정을 내리자 분위기는 급격히 침체됐고 정 원내대표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이어 이날 오후 2시께 의원 총회를 열고 소속 의원들에게 '자중'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인 비대위원장은 헌재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헌재의 고노와 숙의를 존중하고 인용 결정을 겸허하게 수용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의총장에서는 "나라와 역사가 우리 당에 부여한 책임과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막중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며 소속 의원들을 다독였다.
인 위원장은 "저도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고 심정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참담한 심정"이라며 "우리 모두가 마음 속에 원망도 있고 후회도 있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이 있지만 지금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가 있겠나. 다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분 모두가 위로 받으셔야 할 사람이고 저도 위로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서로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 있는 때 아니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될 때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디 자중자애해서, 다시 한 번 우리가 옷깃 여미며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며 "우리가 하나될 때 뜻을 같이할 때 능히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 밝은 미래를 창조해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의원 여러분들의 애국심과 애당심과 따뜻한 마음과 높은 뜻을 자유한국당 이름 앞에 모아주길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인 위원장의 이 같은 주문은 당내 친박계와 비주류 모두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친박계에는 비록 박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더라도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며 개인적 돌발 행동을 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비주류에는 헌재 결정에 위축돼 바른정당으로 추가 탈당 행렬이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준 모습이다.
정우택 원내대표도 의원들 앞에 나서 "헌재 결정에 대해서 많은 아쉬움이 남지만 헌재 결정을 겸허히 수용하고 존중해야 한다"며 "집권여당으로서 큰 책임을 느끼고 이 순간 이후부터라도 언행을 자제하고 겸허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당부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제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국가적 과제가 우리 앞에 남아있다. 좌파 세력이 대통령이 다 된 것처럼 대세론을 펴고 불안한 안보 의식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할 때 그래도 자유한국당을 국민들이 다시 밀어주고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총장에는 홍문종 정종섭 이장우 함진규 민경욱 박덕흠 윤상직 곽상도 등 친박계 의원들이 주요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착석해 있었으나, 이처럼 '자중자애 하라' 지도부 발언에 특별히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지는 않았다. 다만 참석 의원들이 모두 침통하고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어 회의 장소 분위기는 매우 무거웠다.
한편, 헌재 주변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가 헌재의 박 대통령 파면 결정을 듣고 눈물을 흘린 조원진 의원은, 이날 청와대를 찾았다가 박 전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 채로 발걸음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조 의원은 일행과 함께 오후 1시쯤 청와대 시화문 쪽으로 향했으나 청와대 측에서 '면회 절차에 따라 영풍문으로 가야 한다'고 안내했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이 밖에 박 대통령 탄핵 반대 의견을 내고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왔던 친박계 의원들은 대체로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다만 김진태 의원은 "대한민국의 법치는 죽었다. 대통령을 끄집어내려 파면하면서 국론 분열이 종식되겠나"라며 "마녀 사냥의 그림자만 어른거린다"는 논평을 냈다. 대선에 출마한 이인제 전 최고위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비통하고 참담하다"며 "그러나 역사의 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글을 남겼다. 자유한국당 의원 총회는 통상적인 참여 의원들의 '자유 발언' 시간 없이 서둘러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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