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 서문(Preamble)에 불평등 조항이 포함된 경위가 확인됐다. 해당 조항과 비슷한 내용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폐기한 환태평양동반자 협정(TPP), 여전히 작동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에도 없다.
이처럼 유례가 없는 불평등 조항에 대해 한국 정부는 2007년 6월 30일 협정문 서명을 앞두고, 세 차례나 수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끝내 거부했고, 결국 불평등 조항이 포함됐다. 협정문 공개 이후, 진보 매체들이 불평등 조항에 대해 비판했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언론 보도를 반박하면서 해당 조항을 옹호했다. 불평등한 내용이 아니라는 게다. 그러나 당시 정부 역시 해당 조항이 불평등한 내용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는 단지 과거사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TPP 폐기에 이어 한미 FTA 재협상을 하려 한다. 10년 전, 한국이 불평등 조항을 수용했던 사실은 새로운 협상에서 한국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FTA 협정문 속 불평등 조항…한국, 세 차례 수정 요구 거절 당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국제통상위원회는 최근 대법원 판결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한미 FTA 협상 문서를 2일 공개했다. 모두 5장이며, 언론에 공개된 건 처음이다.
한미 FTA 협정문 서문에는, 미국이 한미 FTA를 체결하더라도 미국 내 한국 기업에 미국 법 이상의 추가적인 보호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같은 내용이 한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은 한미 FTA 체결로 추가적인 혜택을 누리지만,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정부가 공개한 문서를 보면, 미국은 2007년 6월 16일 이처럼 일방적인 조항을 한국에 제안하며 동의를 요구했다. 한국은 같은 해 6월 22일과 25일, 그리고 서명을 사흘 앞둔 27일 세 차례에 걸쳐 'Korea(한국)'라는 문구를 넣으려 했다. 같은 내용이 한국에도 적용되게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제시한 수정 문안은 끝내 거절당했다.
명백한 불평등 조항인데, 당시 노무현 정부는 억지 해석을 했다. "외국인 투자자와 내국인 투자자가 동등한 수준의 투자 보호를 제공받는다는 것을 선언적으로 규정한 것은 글로벌 금융 허브를 추구하는 한국의 금융산업 발전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리(한국)에게도 적용되는 조항"이라는 보도 자료도 냈다. 사실상 거짓 해명이었다. 실제로 당시 한미 FTA 반대 진영은 "정부가 사실을 왜곡했다"며 비판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런 비판이 옳았다는 점이 정부가 공개한 문서를 통해 입증됐다.
이것이 불평등한 내용이 아니라고 한다면, 노무현 정부에서 미국 측에 'Korea' 문구를 넣어달라고 요구한 행위 자체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FTA 장밋빛 전망은 빗나갔다
민변은 2일 성명을 통해 해당 불평등 조항의 폐기를 촉구했다. 아울러 10년 전 협상을 진행한 참여정부(노무현 정부)의 '반성과 사과'를 요구했다.
아울러 민변은 노무현 정부가 10년 전 한미 FTA 협상을 진행하며 발표했던 전망이 대부분 빗나간 사실을 지적했다. "한미 FTA가 가져다 줄 것이라던 GDP 연 평균 0.6% 증가, 고용 연 평균 3.4만 명 증가는 실현되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민변 국제통상위원회는 지난해 3월 산업통상자원부에 한미 FTA 서문 조항 협상 문서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비공개 처분을 했고, 민변은 이에 반발해서 소송을 냈다. 1, 2, 3심 모두 민변이 승소해서 이날 협상 문서가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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