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 직전 "담배 있냐"고 물었던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이제는 글을 읽을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글도 눈에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었던 고통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고통을 가중시킨 유폐생활
윤 전 대변인은 28일 '사람 사는 세상'에 올린 글을 통해 운명을 달리하기 전 검찰 수사에 시달려 온 노 전 대통령의 근황을 세밀히 묘사했다.
"사저 안마당으로 통하는 작은 대문이 입주한 이래 항상 열려있었던 기억을 지워버릴 정도로 굳게 닫혀 있었다. 뒤편 가운데 위치한 대통령의 서재는 유난히 어둡고 침침해졌고, 남과 북으로 면한 통창의 절반 이상까지 황갈색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다. 따스한 온기를 담고 지붕 낮은 집을 찾던 남녁의 햇살은 대문 밖에서 서성이거나 안마당 위의 허공을 맴돌았다. 창문 틈의 그림자까지 잡아채려는 취재진들의 렌즈가 내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부터 사적인 영역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조치가 만들어낸 사저의 분위기였다.
4월 중순, 대통령의 사저는 생기를 잃어가면서 때로는 적막감마저 휘감고 돌았다. 그 안에 선 대통령은 유난히 머리가 희여 보였다. 사저를 둘러싸고 형형색색들의 꽃들이 피어나 울적한 대통령을 위로하려 했지만, 대통령의 시야에 드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특유의 농담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이제는 부산 사투리의 억양마저 없어진 듯 나지막하고도 담담한 대통령의 어조가 서재 밑바닥으로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노건평 씨 문제가 불거졌을때부터 노 전 대통령은 지인들의 사저방문을 만류했고 사저가 적막해지자 노 전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1박2일로 다녀갈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봄이 되면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는 여의치 않았고, 결국 노 전 대통령은 '5년 전 탄핵의 봄'을 연상시키는 일종의 유폐 생활에 들어가 몸과 마음이 더 피폐해졌다는 것이 윤 전 대변인의 증언이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책을 들어
노 전 대통령은 이같은 상황을 독서와 공부로 돌파하려 했다. 윤 전 대변인은 "재임시절 내내 은밀한 독대는 거부하면서 회의실 의자가 동이 나도록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대통령에게 홀로 앉은 텅 빈 서재는 참으로 낯선 풍경이었을 것이다"면서 "대통령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진보주의 연구' 등에 대한 생각을 천착하고 다듬어나가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내가 글도 안 쓰고 궁리도 안하면 자네들조차도 볼 일이 없어져서 노후가 얼마나 외로워지겠나? 이것도 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 글이 성공하지 못하면 자네들과도 인연을 접을 수밖에 없다. 이 일이 없으면 나를 찾아올 친구가 누가 있겠는가?" 4월 초 노 전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윤 전 대변인은 "단순히 혼자만을 위한 지적 호기심 충족은 아니었다. 대통령은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읽은 책 가운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강력히 추천했다"고 밝혔다. " 작년에는 폴 크루그만의 '미래를 말하다', 최근에는 유럽의 사회보장체제를 설명한 '유러피언 드림'"을 추천했다며 "대통령은 특히 이 책을 최고의 책으로 평가하고 찬사를 보내며 이런 책을 꼭 한번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판 유러피언 드림'"이라고 전했다.
윤 전 대변인은 또 "글을 쓰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수록, 허리를 비롯한 육체의 건강은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다고 손을 놓자니, 밖으로부터 다가오는 힘겨움과 그 긴 시간들을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라며 "시간을 이겨내기 위한 책과 글에 대한 집념이 건강을 갉아먹는 악순환의 늪으로 대통령을 서서히 끌어들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사저의 서재에 들어서면 앞에 놓인 책들을 뒤적이다가 부속실로 통하는 인터폰을 누르며 '담배 한 대 갖다 주게'하고 말하는 대통령, 잠시 후 배달된 한 개비의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대통령이 '어서 오게' 하며 밝은 미소를 짓는 대통령.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그 모습이 영결식을 앞두고 다시금 보고 싶어진다. 미치도록…."
윤 전 대변인은 이렇게 글을 맺었다.
¡ã 노 전 대통령은 담배와 글을 끝가지 떼놓지 못했다. 사람사는세상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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