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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공장식 사육에 대한 윤리적 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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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공장식 사육에 대한 윤리적 반성이 필요하다

[민미연 포럼] 뒷전으로 밀린 '빌어먹을' 환경 문제

환경문제는 과학기술이나 경제적인 해결책보다는 근본적으로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해결책이 요구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인류는 과학기술 문명의 발전으로 물질적 풍요와 발전을 구가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 '기후변화, 대기오염, 자원고갈, 물부족, 식량위기, 생명위기, 질병, 빈곤 및 차별문제' 등으로 대표되는 다중적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대부분 환경문제에서 비롯되기에 사람들은 흔히 21세기 화두는 '환경과 생명'이라느니, '환경 위기 시대'라느니 하는 말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문제는 다른 문제들과는 다소 다른 특성을 지닌다. 일단 환경문제는 지구적 차원의 문제라는 점에서 광범위하다. 그리고 복잡계로서의 생태계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복잡하다. 게다가 강도의 강도질이나 도둑놈의 도둑질처럼 지금 당장 나에게 직접적 위협이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장기적이고 간접적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러한 점을 두고 "많은 환경문제들은 장기적인 집단적 행위의 문제들(longitudinal collective action problems)"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환경문제는 "서로 알지도 못하고 서로 멀리 있는 개인들의 별로 중요치 않은 수많은 결정들이나 행위들의 의도치 않은 축적적인 결과들에서 발생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문제의 이러한 특성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은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 사건이나 이른바 대권 잠룡들의 행보 혹은 북핵 및 사드(THAAD)배치 문제 등과 같은 다른 많은 문제들에 대한 관심보다 뒷전으로 밀리거나 무시되기 일쑤이다. 그럼에도 환경문제는 우리 삶의 전제인 건강이나 생명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라서 그 무엇보다도 중차대한 문제임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경문제는 진정 무엇이 문제이고, 누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에 대해 고려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보통 환경이 문제라고 할 때 그것은 인간의 문제 혹은 인간 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환경 자체의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이는 우리의 언어 사용방식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지구가 병들었다'느니, '건강하지 못하다'느니, '지구가 아파요'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은연중 나와 자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의사와 환자의 관계로 보고 병든 자연을 인간들이 치료하는 위치에 있다고 보는 것이고, 그것은 과학적 탐구나 과학적 기술을 통해서만 해결 할 수 있다는 아주 잘못된 사고방식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많은 환경문제에 대한 접근이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지구적 기후변화(global climate change)' 혹은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의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특히 '지구 온난화'는 지구의 평균 표면 온도 상승의 문제를 지칭한다.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산화탄소가 수증기, 오존, 메탄, 질소 산화물과 더불어 지구의 기온을 안정시키는 데 중요한 대기 가스라는 것을 주장해 왔다. 그런데 최근 자동차 이용이나 산업 활동을 통해 석탄, 석유, 가솔린 등의 화석연료를 태우는 인간의 활동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의 양을 심각하게 증가시켰다. 이러한 이산화탄소와 수증기가 대기 중에 존재할 때 이를 온실 가스라 하는데, 이러한 온실 가스의 증가는 지구의 기온을 상승시킨다.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지구 기온의 상승은 극지방의 눈과 빙하를 녹여 해수면의 상승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기후변화, 전 지구적 가뭄과 사막화, 해류의 변화 그리고 생태계 파괴로 인한 동식물의 대량멸종 사태 등과 같은 심각한 환경피해는 물론, 이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모든 영향들이 결국에는 여러 측면에서 인간의 고통을 야기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무시무시한 예측들로 인해 당연히 많은 사람들은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을 포함한 중요한 정책 및 삶의 양식에서의 변화를 주장해 왔다. 특히 많은 나라들은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이산화탄소 감축을 요구하는 국제적인 협약을 지지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국제적인 협약에서 주목할 것 중의 하나는 배출권거래제(ET : Emission Trading)이다. 배출권 거래제는 교토의정서를 이행하기 위한 경제적 수단 3가지(배출권거래제, 청정개발체제, 공동이행) 중 주된 수단으로 국가마다 할당된 감축량 의무달성을 위해 자국의 기업별, 부문별로 배출량을 할당하고 기업들은 할당된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다른 나라 기업으로부터 할당량을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배출권 거래제 같은 구체적인 방안은 바로 경제적인 이해관계와 맞물려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를 위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도록 만든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함량을 직접적으로 낮추는 방안으로 제시된 기술 중 대표적인 것은 이른바 '탄소 격리(carbon sequestration)' 기술이다. 이는 석유, 가스, 석탄을 태우는 발전소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땅속이나 해저에 가두는 기술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이 효과가 있으려면 수만 년 동안 완벽하게 차단되어야 하는데, 이는 1000년 동안 탄소가 누출된 확률이 1% 미만으로 유지되어야 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기술은 핵폐기물 저장소처럼 누출 가능성 탓에 심각한 위험이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핵폐기물 저장과 마찬가지로 지진과 같은 지질학적 변동에 의해 탄소가 누출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기술에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밖에 이산화탄소를 특히 잘 흡수하는 유전적으로 조작된 수종을 개발하자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는 유전자 조작과 그로 인한 생태문제가 제기될 것이 뻔하다. 또한 대양에 황화철(Iron sulfide)을 뿌리는 방안도 제안되는데, 이렇게 할 경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피토플랑크톤이 보통 바닷물에서보다 5배나 빠르게 번식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방식은 해양 생태계의 교란을 일으켜 오히려 물고기를 대량으로 죽일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사례는 흔히 과학기술적 해결책이 지니는 양면성의 특성이기도 하다. 즉 대부분의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이지 않아서 편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폐해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그래서 과학기술적 해결은 해결하는 만큼의 또 다른 문제를 반드시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를 우려해 이산화탄소 규제를 외치는 것은 바로 지구 생태계를 보호하자는 것인데, 거꾸로 이들 기술은 이산화탄소를 규제하고자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모순을 낳고 있다. 게다가 이들 기술은 전 지구적인 생태학적 상관관계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산화탄소 흡수라는 하나의 과제만 해결하여 경제적인 이득만 얻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이렇듯 과학기술에만 의존한 접근은 생태계에 대한 진정한 고려 없이 단편적인 시각으로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는 등의 문제를 지니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은 앞서 지적했듯이 환경문제는 환경 자체가 문제이고 그 해결책 또한 문제가 되는 그러한 환경의 오염을 방지하거나 오염된 환경을 정화하는 과학기술 등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보는 경향에 기인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환경문제라고 할 때, 환경은 그 자체로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기후변화와 순환과정은 지구 역사에서 계속해서 발생되어 왔다. 수백 만 년 동안 지구의 가열과 냉각이 되풀이해서 발생함에 따라 빙원이 규칙적으로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그러므로 지구가 태양처럼 불덩어리로 뒤덮이건 다른 혹성처럼 얼음덩어리로 뒤덮이건 지구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다. 문제는 인간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생존문제와 환경에 대한 인간의 태도 문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적어도 오늘날은 '환경문제'라고 할 때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환경 자체가 아니라 환경을 대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이나 활동이고, 그 결과로 인해 건강과 생존을 위협받는 인간이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치료해야 할 진정한 환자는 인간이다. '생태계 건강'이라는 수사가 하는 역할이 무엇일 수 있든지 간에 치료해야 하는 진짜 환자들을 제쳐놓고 엉뚱한 환자들만을 돌보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환경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단지 사실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환경문제는 과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과학기술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환경문제'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은 환경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환경은 인간에게 무엇이 되어야 하고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당위에 대한 문제를 반드시 수반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어떠한 종류의 존재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인간은 어떠한 종류의 세계에서 살아야 잘 살아갈 수 있는가'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들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요즈음 조류독감(AI)으로 생매장이라는 대량 살육이 벌어지는 공장식 축산(factory farming)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공장식 축산은 식량 증산이라는 편익을 위해 경제적 효율이라는 명분으로 유전학, 육종기술, 과학적 영농기술을 활용하여 고밀도 사육을 하는 방식이다. 확실성과 객관성 그리고 효율의 대명사인 과학이나 경제라는 말로 치장은 되었지만 이 또한 우리가 목도하는 바와 같이 편익뿐만 아니라, 유전적 다양성의 훼손이나 밀집사육으로 인한 집단 폐사는 물론, 더 나아가 인간의 건강 및 생명과 관련된 많은 폐해를 동시에 수반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폐해를 철새에게 덮어씌우고 그 해결 또한 방역소독이나 예방적 살처분 등의 과학기술적 수단을 활용하지만 이러한 폐해는 해마다 여지없이 되풀이된다. 게다가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 또한 적지 않다. 지금까지 3000만마리 이상의 살처분 비용이 1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 또한 과학과 경제적 효율이 아니라 동물을 대우하는 인간의 태도나 마음가짐의 측면에서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진정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철새들을 원망하거나 연례행사처럼 가축을 방역소독하고 살처분하는 것이 아니다. 공장식 사육 방식에 대한 윤리적 반성이다. 인간이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지, 동물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 등에 대한 반성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자연에 대해서 가져야 하는 올바르거나 바람직한 태도와 행위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자연을 올바르게 다루고 그것과 더불어 잘 살기 위한 최선의 이유를 찾고자 노력하는 일이다. 물론 이러한 추상적이고 막연해 보이는 태도나 자세에 대한 요구만으로 금세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는 구체적인 환경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막강한 토대로서 작동될 것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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