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불법' 인공 임신 중절(보통 낙태라고 부른다) 수술을 더 강하게 처벌하려는 정부의 조치는 철회하는 것이 맞다. '죽은' 규정을 살려내 낙태를 줄이겠다는 방침이 왜 나왔는지 따져봐야 하겠으나 그건 좀 미룬다. '죄'라면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여성과 의사만 처벌하는 것이 맞는 일인가, 이런 질문도 다음 기회에 따지기로 한다.
정부 방침을 반대하는 첫째 이유는 정책으로서 효과를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효과는커녕 더 많은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안전하지 못한 불법 시술로 많은 여성이 생명과 건강을 해칠 것이 뻔하다. 불법 시술의 비용은 더 비싸지고 해외 원정 낙태도 증가할 것이다.
사문화된 낙태 금지법을 그냥 두는 것으로 문제가 끝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법을 바꾸거나 폐지하는 것이 단순 입법 기술의 문제가 아닌 다음에야 사회적 판단이 필요하고, 합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는 논쟁을 피할 수 없다. 낙태와 낙태의 권리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낙태의 권리에 대해 우리의 (잠정적) 판단을 말하기 전에 강조할 것이 있다. 권리의 내용 이전에 그 내용을 생각하는 새로운 '과정'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는 논의와 논쟁을 해 나가는 접근과 방법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를 '민주적 숙고'라고 부르고 싶다. 낙태죄가 유례없는 방식으로 사회적 관심을 끌게 되었으니,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알고 있듯이, 성찰과 토론, 숙고 과정이 없으면 어떤 법률 조항이나 정책 결정도 소용이 없다. 더 많이 논의해야 한다.
어떤 관점과 가치를 중심으로 논의를 할지 또한 과정에 속한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도구적 관점을 버리고 '내재적' 가치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임신과 출산, 낙태 등 '재생산(reproduction)'(더 좋은 번역을 찾지 못했다)은 도구가 아니라 권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서 권리는 기본권이나 인권, 생명권, 그 어느 것으로 불러도 괜찮다.
세계적으로도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도구화하는 것이 익숙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집단의 기억으로 각인된 자식 얻기와 아들 낳기는 물론이고,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인 가족 계획 사업은 여성의 몸을 인구 조절 정책의 수단으로 삼은 생생한 사례다.
여성의 몸을 도구로 보는 것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그 완고한 전통이 갑자기 어디로 갈까, 지금 벌어지는 모든 저출산 정책도 여성을 그리고 여성의 몸을 도구로 보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난임 시술 지원이 저출산 대책의 핵심이라는 사실이 현실을 웅변하다. 여성을 '열등한 타자'로 규정하는 데서 오는 귀결, 더도 덜도 아니다.
불평등 구조는 내용으로서의 윤리를 논의하는 데까지 미친다. 생명 존중과 생명에 대한 권리를 이유로 낙태에 반대한다고 할 때조차, 여성은 그런 판단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존재라고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듯싶다. 낙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당사자가 생명과 윤리 또는 (있을 수 있는) 딜레마의 주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에게 고민과 고통은 아예 없는 양 노골적으로 '생명 윤리'를 가르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내재적 시각, 그리하여 여성의 '기본권'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먼저 논의해야 할 것과 갖추어져야 할 것이 분명하다. 첫째, 성을 누릴 권리와 모성(어머니가 되는 것)을 선택할 권리. 적어도 규범적, 이론적으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여성의 보편적 권리다.
노파심에서 말하면, 모든 여성이 아이를 낳고 어머니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익숙한 프레임이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에 기초해 있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국가의 통치 이데올로기까지 결합해 있으니 더 문제다. 다시 말하지만, 여성은 재생산의 도구가 아니라 (그 어느 것이라도)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삶의 주체다.
이런 기본권에서 다른 권리들이 따라 나온다. 임신에서 육아, 전체 모성의 역할을 따라가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들이다. 먼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권리. 단순 정보와 지식뿐 아니라 임신, 출산, 낙태 등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성찰도 여기에 포함된다.
안전한 피임과 출산에 대한 권리가 바로 다음이고, 출산 후에는 제대로 양육하고 교육할 권리까지 포함한다. 임신과 출산이 이런 사회적 실천과 긴밀하게 연관된 다음에야 이들 역시 '재생산'의 권리임이 틀림없다. 이런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채 임신과 출산, 양육을 강요하는 것은 권리 침해를 넘어 폭력이다.
지금까지 과정을 말했으나, 여기에 기초하면 실질 내용도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우리는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갖고 스스로 결정한 낙태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독의 권리가 아니라, 다른 권리들, 즉 재생산에 대한 전체 권리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의 '낙태법'(☞관련 자료 : About the Abortion Act)에는 의사가 낙태를 원하는 여성에게 낙태 방법과 부작용을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정해놓았다. 낙태를 하지 않으면 어떤 사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이후 피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단, 여성은 원하지 않으면 설명을 듣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좁게 봐도 단지 낙태뿐 아니라 재생산의 권리와 연결되어 있다.
물론, 이런 근거로 낙태의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고 해서 깔끔하게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 가장 크게(그리고 '악명' 높게) 걸리는 것은 다른 권리와 충돌하는 문제다. 생명(life)과 인격성(personhood)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생명권' 이슈가 제기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자칫 사회의 모든 효용의 총합을 중심에 두는 공리주의로 빠질 위험도 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미 논쟁을 경험한 많은 사회가 '숙고'의 결과를 실천하고 있으며, 그를 통한 현실 윤리의 기반도 갖추었다. 유명한 미국 연방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사건'에서는 임신 말기(third trimester) 이전의 낙태를 허용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여러 유럽 국가가 10~12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스웨덴은 18주, 영국과 네덜란드는 24주를 상한으로 삼는다. (☞관련 기사 : Europe's abortion rules : no single policy)
의학적으로 또는 철학과 생명 윤리 차원에서 몇 주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는 결정에 고려할 한 가지 요소일 뿐이다. 어느 나라든 사회적 논의를 거쳤고, 숙고 과정을 거쳐 기준을 정했으며, 실천과 그 결과는 다시 개방된 논의로 이어진다. 새로운 상황, 예를 들어 의학 기술 발전에 따라 새로 논의하고 다시 정한다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둘 이상의 권리가 충돌하는 가운데서도 침해 정도가 심각하고 긴급한 것, 주로 어떤 인구 집단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이 때문에 재생산에 대한 권리, 그리고 낙태에 대한 권리에는 일종의 '긴급 구호의 규칙(rule of rescue)'을 적용해야 할지도 모른다(보통 '긴급 구호의 규칙'이라고 할 때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원뜻은 다음 자료를 참고할 것). (☞관련 자료 : The Rule of Rescue)
구체적 현실로 돌아오자. 지금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낙태에 대한 생각은 대강 이렇다. 최근의 설문 조사 결과다(☞관련 기사 : 인공 임신 중절(낙태), 필요시 허용 의견 많아)
낙태 관련 입장의 경우 '보다 엄격하게 금지'는 21%였고, '필요한 경우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74%였다. 5%는 의견을 유보했다. 모든 응답자 특성별로 '필요 시 낙태 허용' 의견이 우세했고, 특히 20~40대에서는 비율이 85%를 넘었다.
(…)
낙태 금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한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은 결과(214명, 자유 응답) '생명 존중/경시하면 안 됨'(41%), '인구 감소 우려/저출산'(35%), '낙태 남발/무분별/무책임'(9%) 등의 이유를 꼽았다.
반면 필요한 경우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이유의 경우(753명, 자유 응답) '원하지 않은 임신일 때'(31%), '강간, 성폭행 등 범죄로 임신한 경우'(18%), '미성년, 미혼 등 감당할 수 없는 경우'(17%), '개인이 결정할 문제/본인 선택'(9%), '아이 건강, 기형아 출산 문제'(8%), '낳아서 책임 못 지거나 버리는 것보다 낫다'(5%) 등이었다.
여러 가치가 동시에 표출되고 판단은 엇갈리니, 사회적 논의와 숙고가 더욱 필요하다. 그 과정이 갖추어야 할 요건은 이미 말했다. 도구적이 아닌 내재적 관점에 기초하여, 권리로서의 재생산을 중심으로, 더 긴급한 권리 보호에 나서는 것이 초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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