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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대로 몸이 된다"

[귀농통문] 텃밭을 밥상에 올리다

민낯같이 싱그럽고 순한 자연의 맛

요리책이기는 한데 요리책만은 아니다. <텃밭을 밥상에 올린다>(이현숙 지음, 신민주 사진, 들녘 펴냄)는 제목에 걸맞게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요리의 재료는 시장이나 슈퍼마켓 아닌 텃밭에서 나온다. 텃밭 작물에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풀까지 재료가 되니 텃밭이 통째로 밥상에 올라가는 셈이다. 키우기 까다롭거나 찾아보기 어려운 재료는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의 효용은 텃밭이 있는 사람에게 극대화될 것이다.

▲ <텃밭을 밥상에 올린다>(이현숙 지음, 신민주 사진, 들녘 펴냄) ⓒ들녘
예전에 갓 결혼하는 주부에게 요리책은 혼수와도 같았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부터는 남녀 모두 원하는 레시피를 즉시 찾을 수 있게 됐다. 이제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도 어딘가에서는 요리를 하고 있을 정도다. 값싼 먹을 것이 지천이고 온갖 요리법이 홍수를 이루는 지금 정작 필요한 것은 겉만 형형색색 치장한 레시피가 아니라 우리의 몸과 정신을 맑고 이롭게 하는 음식을 분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농약과 화학비료, 첨가물, 유전자조작식품 등 건강을 해치는 음식이 저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양 미사여구를 붙인 채 우리의 눈과 귀를 속이는 상업주의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텃밭을 밥상에 올리다>는 '공장식 농업, 식품가공업, 외식산업에 포위된 일상 너머'에서 '온갖 화학조미료와 첨가물로 분칠한 맛이 아니고 민낯같이 싱그럽고 순한 제맛'을 바라는 사람을 위해 쓰인 책이다.

지은이는 "텃밭농사로 밥상을 자급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걸 어떻게 해 먹어야 하나?"라는 두 가지 화두를 던진다.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발상을 달리하기만 하면, 밥상을 자급할 수 있는 폭은 넓어진다는 것. 겨울을 빼고는 1년 내내 작물보다 먼저 움트고 그보다 늦게까지 살기 때문에 텃밭에 넘쳐나는 들풀로 밥상을 차릴 수 있는데, 들풀은 저마다 고유한 영양분과 약성을 지니고 있다. 또 하나는 저장이다. 작물이든 들풀이든 한철을 살고 나면 사라지지만, 제철에 잘 말려두고 얼려두고 절여두면 밥상은 늘 풍성해진다. 어떻게 해 먹어야 하는가 하는 두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창조적 표현'을 하라는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텃밭 작물과 들풀로 만든 182가지 요리가 사진과 함께 선보이는데, 지은이 스스로 던진 두 번째 화두에서 건져낸 결과이리라.

1년 내내 활용할 수 있는 재료와 182가지 요리

말한 대로, 이 책의 음식 재료에는 작물뿐 아니라 들풀도 포함된다. 텃밭 농사를 하다 보면 그 존재감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게 바로 풀. 제초제를 치든, 비닐을 덮든, 부지런히 뽑든, 어르고 달래며 적당히 타협하든 간에 풀을 못 본 척 넘어갈 수는 없다. 풀을 대하는 태도 중에서도 으뜸가는 것은 바로 풀을 '잘 먹는 것'이다.

유학 시절 간첩 사건으로 체포돼 13년 2개월 옥살이를 했던 <야생초 편지>(황대권 지음, 도솔 펴냄)의 저자는 책에서 "감옥 마당에서 무참히 뽑혀 나가는 야생초를 보며 나의 처지가 그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생태주의적 시각으로 야생초 즉 풀에 대한 상념을 펼친 바 있다. 그는 교도소 마당 한쪽의 풀로 음식을 만들며 '들풀모듬', '모듬야초무침', '모듬풀 물김치' 같은 이름을 붙여 주었다. "잡초는 제철식재"라고 말하는 책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변현단 지음, 안경자 그림, 들녘 펴냄)에도 풀을 날것으로, 데쳐서, 묵나물로, 죽이나 밥으로 지어서, 김치를 담그거나 찌거나 튀기거나 부쳐서, 국을 끓이거나 비빔밥을 하거나 절이거나 장아찌를 만들어서, 또 차나 술로 즐기는 방법이 나온다.

<텃밭을 밥상에 올리다>도 같은 맥락에서 냉이, 꽃다지, 망초, 원추리, 광대나물, 별꽃, 제비꽃, 돌나물, 쑥, 봄까치풀, 개망초, 별꽃, 민들레, 머위, 질경이, 개나리, 아카시아꽃, 소리쟁이, 명아주, 왕고들빼기, 비름 같은 들풀요리를 등장시킨다. <야생초편지>의 황대권은 1993년 5월 15일 안동교도소에서 쓴 편지에서 "밖에 나가면 해 보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각종 꽃을 따서 꽃샐러드를 한번 만들어 먹는 것"이라 했었다. <텃밭을 밥상에 올리다>의 레시피에는 그가 말한 꽃 샐러드가 아주 많다. 별꽃샐러드, 배추꽃샐러드, 아카시아꽃샐러드, 한련화샐러드…. 꽃 말고도 들풀, 딸기, 완두콩, 양상추, 쇠비름, 옥수수, 동치미, 돼지감자 등 풀, 과일, 채소, 반찬 등을 활용한 여러 샐러드 만드는 법이 소개되어 있다.

▲ <야생초 편지>와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표지. ⓒ프레시안

다른 레시피는 어떤가. 주식인 밥을 재료로 하는 요리로 익히 아는 잡곡밥 말고도 들풀밥, 들풀비빔밥, 들풀김밥, 들풀주먹밥, 쑥주먹밥, 새싹모듬비빔밥, 아욱밥, 무밥, 시래기밥, 콩나물밥, 토란대밥, 김치밥, 묵나물비빔밥, 묵나물김밥 등이 있다. 모두 제철 재료를 사용한다. 들풀샤브샤브, 쑥완자탕, 토란들깨탕 같은 요리부터 각종 무침, 겉절이, 장아찌, 나물, 냉국, 김치, 부각 같은 반찬 종류도 여럿이다. 들풀모듬전, 쑥개떡감자스프, 양상추볶음우동, 당근잎부침개, 고구마맛탕, 녹두빈대떡, 호박만두, 파전, 호박죽, 늙은호박양갱, 팝콘, 가지오가리파스타, 김치말이국수, 들깨콩강정, 호박식혜 등은 때로는 간식으로 때로는 출출한 배를 채울 간단한 끼니 대용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조금 낯선 이름의 외국요리도 등장한다. 감자뇨키, 가지프리타타, 토마토퓌레, 토마토가지스파게티, 토마토리소토, 건토마토올리브유, 라타투이, 바질페스토, 방울토마토마리네이드, 무청된장파스타 등. 그리고 목련꽃차, 아카시아꽃차, 쇠비름발효음료, 당근주스, 고구마라떼, 오미자에이드, 울금차, 구절초꽃차, 감국차, 결명자차, 돼지감자차 같은 음료 종류도 풍성하다.

밥상에 덧붙이는 팁과 텃밭 이야기

음식을 만들 때 재료와 더불어 양념이 절대 빠질 수 없듯이 책에는 요리법과 함께 여러 가지 팁이 제시된다. '입맛에 맞는 드레싱 만들기', '들풀, 식감과 향을 살리며 데치는 방법', '들풀, 맛깔나게 무치는 방법', '야생의 기운을 담은 들풀차 만들기', '감칠맛 나는 맛국물 만들기', '풍미를 살려주는 맛장 만들기', '발효액(효소) 제대로 만들고 활용하기', '새콤달콤 장아찌와 피클 만들기', '색깔 있는 장아찌 담그기', '국수 맛있게 삶는 법', '파스타 맛나게 삶는 법', ' 들깨의 효능과 활용법', '들깨 국물 내리기', '나물 볶는 법', '묵나물, 맛있게 조리하는 방법', '대추꽃 만들기', '엿기름 활용법' 등은 요리의 고수들에겐 별것 아니겠지만, 처음으로 뭔가 만들어 먹으려는 초보나 아무리 해도 남들처럼 깊은 맛을 내지 못한다는 요리 무지렁이들에게는 단비처럼 반가운 '꿀팁'이다.

책의 구성은 텃밭과 밥상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는 방식이다. 1년 열두 달이 각각 '밥상'으로 시작해 여러 요리법이 소개되고 '텃밭'으로 끝을 맺는다. 요리 방법을 읽다 보면 그와 관련해 텃밭에서 해야 할 일이 나오고, 다시 새로운 계절의 밥상을 접하는 식이다. 다른 요리책과 구별되는 이 책의 특징이 텃밭을 활용해 밥상의 자급을 이루는 것일진대, 텃밭에 나가는 것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텃밭 풍경이 밑그림처럼 깔리고 그 위에 밥상이 차려지다 보면 일 년이 후딱 지나간다.

지은이는 "돈으로 사 먹을 수 없는 맛의 원형에 가까이 가려면 텃밭을 밥상에 올리는 수밖에 없구나"를 깨달았다 한다. 음식의 맛을 내는 요소로는 재료 각각의 맛과 그들의 어울림, 온도에 따른 맛의 변화, 그릇에 담는 순서와 모양, 먹을 때의 기분과 분위기 등이 모두 포함된단다.

그리고 우리가 "먹는 대로 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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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통문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7년 10월 현재 83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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