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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둥이' 든 루즈벨트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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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둥이' 든 루즈벨트도 있나?

[기자의 눈] MB, 정말 국민들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곧 라디오 연설을 통해 경제위기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 심리를 직접 다독이겠다고 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노변담화'를 벤치마킹한 이 방안은 일찍이 청와대가 검토해 온 사안이다. 프로그램 명칭은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이다.

이 대통령은 "미국이 1930년대 위기에서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됐을 때 '지금 미국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두려움 그 자체다.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얘기했다"고 벤치마킹 의사를 직접 밝히기도 했다.

1930년대 끔찍한 대공황을 겪고 있던 미국 국민들을, 루즈벨트 대통령은 마치 난로가에서 속삭이듯 자연스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다독였다'. 국민들에게 잔잔하면서도 확고하게, 국정 하나하나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얻는 방식으로 루즈벨트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의 혼란을 극복해나갔다.
▲ 지난 8일 재향군인회와의 오찬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노변담화의 키워드는 바로 자발적 동의를 얻어내는 '어루만짐의 소통', 국민들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 부여로 요약되겠다. 루즈벨트의 노변담화는 그 후 여러나라 통치자들이 국가적 어려움을 겪을 때 차용했다.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도 루즈벨트 모델을 따라 라디오 연설을 시도한 바 있지만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통령 국정 주례방송'이라는 문패를 걸고 라디오 연설에 도전했지만 23회로 막을 내렸다. "좌익폭력 세력의 도전을 극복하는 것이 이 시대의 과제"라는 식의 담화는 '엄포'와 '훈시'에 가까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주례 라디오 연설을 추진했으나 방송사와의 입장 차이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노변담화'는 어떨까? 청와대의 설명에 따르면 희망과 낙관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걸 라디오 연설의 목적으로 뒀다고 한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우리 경제의 어려움과 관련해 대국민 협조를 당부하는 메시지가 13일 첫 방송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이 문제와 관련해 "달러를 갖고 있으면 환율이 오르고, 달러를 바꾸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기업이나 일부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고 기업과 국민 개개인을 옥죈 바 있다. "사재기"라는 표현까지 동원한 '경고'이지만, 달러 확보에 혈안이 된 기업들이 이 대통령의 '옐로우 카드'를 무게 있게 받아들일 리 만무해 보인다. 달러 사재기를 신종 재테크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 일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위기 앞에 이속을 챙기는 행태가 얄밉기는 해도, 대통령이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 기업과 개인을 강제하는, 지극히 1970년대식 발상에 머물러 있는 탓에, 이 대통령의 '노변담화'가 목적 달성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게다가 이 대통령이 금융위기 대처를 위한 비장의 카드로 꺼내든 '한중일 공동펀드' 구상은 중국과 일본의 시큰둥한 반응 속에 치밀하게 조율된 얘기가 아니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외풍·내풍으로 살림살이 시름이 늘고 있는 국민들에게 준비된 대응과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야 할 대통령이 외교적, 국민적 불신을 자초한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로 시작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 '어떤 국민'들은 공포를 느끼지 않을까도 싶다. 본의 아니게 이 대통령으로부터 '좌파세력'이란 딱지를 얻게 된 이들 말이다. 바로 어제, 이 대통령은 "좌파세력이 이념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틈만 나면 국가를 분열시키고, 틈만 나면 국가를 흔들려고 하는 세력은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국민들 중 어딘가를 겨냥했다.

의견이 분분한 교과서 개정 논란에 대해선 "북한의 사회주의가 정통성 있는 것 같이 돼 있는 교과서가 있는 등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고, "북한의 사회민주주의는 밥도 먹이지 못하고 있다"고 북한을 크게 자극하기도 했다. 역사인식과 남북문제에 대한 우익적 외길 외에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투다.
▲ 루즈벨트 전 미국 대통령. ⓒ위키피디아

이 대통령이 이렇게 손수 '색깔론'을 선보임으로써 정부의 위기관리 매뉴얼은 '루즈벨트 모델'에 '박정희 모델'을 갖다 붙이는 기형적 방향으로 뻗어나갈 공산이 커 보인다. 1970년대 잠 설치며 미싱을 돌린 여공들이나 새마을 운동 등을 수차례 회상했던 이 대통령의 사고 회로에서 반공과 철권으로 '총화단결'을 이뤄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내면의 모델로 받아들인 게 아니냐는 지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처럼 한 손에 든 몽둥이를 어깨에 걸치고, 입으로는 국민들 마음을 다독이겠다는 형국이니 '어루만짐의 소통'과는 참 동떨어진 모습이다. 하기에, 루즈벨트 흉내내기에 앞서 이 대통령이 반드시 봐주기를 바라는 건 루즈벨트의 마음이 어떻게 미국 사회를 바꾸어냈는지이다.

저명한 정치학자 찰머스 존슨 전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루즈벨트 시대를 이렇게 평가했다. "루즈벨트의 당선으로 인한 정치적 재편은 미국 정치사에서 드물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됐던 상황을 낳았다. 여성과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주고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루즈벨트의 뉴딜은 짧은 시간이나마 민주주의에 가까운 정치 체제를 가져왔다."

몽둥이를 든 루즈벨트는 세상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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