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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추석의 남자'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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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MB, '추석의 남자'가 될 수 있을까?

미담도 아닌 것을 되새김질해 죄송합니다

그는 언제나 '추석의 남자'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2005년 추석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서울시장 이명박'보다 '대선후보 이명박'의 이미지가 자리 잡게 됩니다. 다음 해 추석이 지나자 당 내 라이벌이었던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을 추월합니다. 마땅한 경쟁자를 찾을 수 없었던 대선국면에서의 추석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또 다시 '추석'입니다. 청와대는 추석을 계기로 '대반전'이 일어나길, '추석의 남자'라는 전설이 또 한 번 입증되길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오랫만에 명절밥상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 든 민심은 과연 이명박 대통령을 두고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까요?

"주동자는 아니죠" 한마디에 채널 돌아가는 소리가…

노력만큼은 가상해 보입니다.

대선이 끝난 뒤에는 별로 찾지 않았던 재래시장도 이 대통령은 최근 직접 방문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배, 홍삼절편, 고등어, 조기, 도넛 등을 구입하는 데 5만 원을 썼다고 합니다. 일선 기업에 대한 '현장방문'도 함께 이뤄졌습니다. 한 보육원을 방문해서는 양말까지 벗고 직접 이불빨래를 하는 모습도 연출하셨습니다. 꼼꼼한 CEO 출신 답게 "이렇게 밟아라, 저렇게 밟아라"고 측근들을 지휘하기도 했더군요.
▲ 최근 한 보육원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맨발로 이불빨래를 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청와대

부실논란이 없지는 않았지만 추석을 앞두고 '생활공감정책'도 발표했습니다. 생방송 '100분'을 위해서는 그 몇 배가 넘는 시간을 사전연습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노력'들이 얼마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쉽지 않아 보이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청와대가 야심차게 내 놓은 '대통령과의 대화'만 해도 그렇습니다. '감동'보다는 '훈시'가, '겸양'보다는 '강공'에 대한 의지가 앞섰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특히 "물대포 진압과 백골단 부활이 과연 소통이냐"는 한 대학생의 질문에 대해 "주동자는 아니지요"라고 되묻는 이 대통령의 한 마디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이 대통령은 추석연휴 직전인 12일 경찰병원을 방문해 촛불시위에서 부상을 당한 전·의경들을 위로했습니다. 8월15일 시위에서 군중들이 던진 소화기에 허리를 맞았다는 한 장병에게는 "공무수행중인 장병들이 폭행당하는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그의 등을 어루만졌다고 합니다. "형제같은 사이인데 안타깝다"고도 했습니다.

8월15일은 100번 째 촛불집회가 열린 날입니다. 경찰은 색소를 첨가한 물대포와 사복체포조를 투입해 초저녁부터 '성공적인 진압작전'을 벌였고, 언론은 '인간사냥'이라는 말로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대통령이 명절을 앞두고 일선 전·의경들이나 경찰관, 소방관 등을 위로하기 위해 나서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대통령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부상당한 장병은 분명히 위로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물음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왜 이명박 대통령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부상 시위대'의 등을 어루만져 줄 생각은 하지 못하는 걸까요.

이 대통령은 '대화'에서 "저도 학생 때 데모를 했는데, 매판자본 물러가라고 했던 것은 나중에 졸업하고 일하면서 부끄러웠다. 현실을 너무 모르고 그랬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빼놓기에는 아까운 이야기입니다. 100차례 넘게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민심'이, 광우병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졸지에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의 치기' 쯤으로 전락해 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하기야 '촛불들'에 둘러쌓여 홀로 '아침이슬'을 부르던 순간에도 이 대통령은 이를 '정보전염병'이라고 낙인찍기까지 했으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해야 할까요.

"신뢰가 중요하다"면서 "정치적인 공약도 많았다"고?
▲ '대통령과의 대화'인가, '대통령과 강만수의 대화'인가. 생방송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불만족스러웠다"고 답했다. ⓒ청와대


'반값등록금' 추진여부를 묻는 질문에 "정치적으로 나온 공약들이 많다. 나 자신이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내 세운 적은 없다"고 답한 대목도 있습니다.

반값등록금이 이 대통령 자신의 정책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대선 공약집에도 빠졌습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지난 수년 간 이를 추진해 왔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1기 청와대의 교육과학문화수석을 지낸 이주호 전 의원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새로 임명된 전재희 장관도 여러 차례 이를 장담했었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반값등록금'의 꿈은 휴지통으로 직행하게 됐습니다.

"공약으로 내 세운 적이 없다"는 말 앞에 있는, "정치적으로 나온 공약들이 많다"는 이야기에 눈길이 가기도 합니다. '반값등록금' 외에 정치적으로 나왔다는, 그야말로 공약(空約)은 또 무엇무엇이 있을까요. 한번쯤 곱씹어 볼 대목입니다.

"경제만큼은 반드시 살리겠다, 믿어달라,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거듭 이어졌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시장과 학계로부터 '신뢰'를 상실한 '강만수 경제팀'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 번 드러냄으로써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강 장관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은 역시 두터웠습니다. 전국민을 상대로 한 생방송 '대화'에서, 이 대통령은 오직 강만수 장관 한 사람의 마음만을 달래준 셈이 됐습니다. 타이틀을 차라리 '대통령과 강만수의 대화'라고 했으면 그나마 자연연스러웠겠습니다.

대통령은 '호프 뒤풀이'…국민들은 '가슴앓이'

청와대의 자평은 뜻밖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생방송이 끝난 직후 청와대 참모들과 여의도의 한 호프집을 찾아 '한 턱'을 쐈다고 합니다. '골든벨'을 울린 게 아니라 지인들의 테이블 술값만 계산해 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만, 어쨌든 대통령의 기분만큼은 꽤 좋았나 봅니다.

이동관 대변인은 "국정현안을 체화된 식견과 실천력으로 다뤄 나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토론회였다"며 "국민들과 마음을 열고 진솔하게 대화함으로써 진정성이 전달되었을 것으로 본다"고 낮뜨거운 자화자찬을 늘어놓았습니다.

글쎄요, 그럴까요? '대통령과의 대화'를 방송한 방송사들의 시청률 합계가 <식객> 최종회를 내보낸 SBS의 시청률을 넘지 못했다는 점은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이날 '대화'가 "불만족스러웠다"는 응답이 50%가 넘었습니다.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똑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한 '자판기 토론'이었다"는 지적도 빗발칩니다. 전문가 패널로 참석한 시사평론가 유창선 씨는 생방송이 끝난 뒤 "이거 욕좀 먹겠구나" 싶었다고 합니다. 패널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우리의 대통령이 청중의 심금을 울리는 '달변형'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마이크만 잡으면 '어록'에 가까운 그 많은 '말실수'를 남겨 왔던 이명박 대통령 특유의 화법을 감안하면 오히려 '대형사고'는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질끈 눈감아 줄 수도 있습니다.

"모래알이든, 바위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
▲ 지난 10일 천안의 한 재래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하지만 '대화' 말고도 화제거리는 차고 넘칩니다.

두달 넘게 이어진 불교계와의 갈등은 이명박 대통령의 '유감표명'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대리사과 지시'가 나온 바로 다음 날 어청수 경찰청장은 전격적으로 불교계 지도자들을 방문했지만 만나지도 못하고 쓸쓸한 발길을 되돌려야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보도 등을 종합해 보면 불교계와의 갈등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불교계에 대한 차별은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공직자의 종교차별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겠다는 약속도 곁들였습니다.

물론 그 뒤에 논란이 오히려 확산되자 이 대통령이 직접 국무회의에서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지만, 인식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는 말,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입니다. 아, 그랬습니다. 바로 당내 친박(親朴)진영과의 갈등이 한창일 때 이 대통령이 습관처럼 반복했던 이야기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경선 직후, 또 공천문제를 두고 말이 많았던 올해 총선 때 특히 그랬습니다. 경선과 대선에서 각각 '승리의 깃발'을 쟁취한 이 대통령은 결연한 목소리로 "계파갈등이란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했더랬습니다.

'반대론', 혹은 '반대진영'에 대한 이 대통령 특유의 대응방식입니다. 물론 상식적으로는 "종교차별(혹은 계파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배려할테니, 이만 섭섭함을 가라 앉히시라"는 당부로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석연치가 않습니다.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쪽 사람들의 반응이 그렇습니다.

친박 쪽 한 인사는 이를 "계파라니 당치않다. 이제 '친이(親李)'로 대동단결하라"는 '협박' 쯤으로 이해했다고 합니다. 불교계에서도 대통령의 이런 언급 이후에 오히려 반발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혹시 이 대통령은 '종교차별' 논란, 혹은 '계파갈등' 논란의 존재 자체를 애써 '없는 일'로 돌리고 싶었던 것일까요.

불교계와의 갈등뿐 아니라 최근 청와대 경호처를 두고 벌어진 '장애인 비하' 논란이나 '성희롱 파문' 등도 있습니다. 대선기간에도 '장애인 낙태' 발언으로 파문을 자초한 이 대통령입니다. 경호원들이 장애인으로 설정된 인물을 '잠재적 범죄자'로 묘사하고, 또 이를 진압하는 동안 대통령은 물론 그 주변의 누구 하나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 가슴에 남습니다. 참으로 대범한 '인권감수성'이라고나 할까요.

"모래알이든, 바위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청와대 주변에는 어쨌든 '물에 가라앉을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안타깝지만 우리 대통령은 자신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감복시키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분들이 전체 국민의 70%를 넘는다는 점입니다. 이것 참 큰일입니다.

장관들만 '민심' 챙기라고 하지 말고…

말이 길어졌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도 아닌 것을 이렇게 되새김질 해서 죄송합니다. 어쨌든 이런저런 정황들을 고려해 보면 매년 추석을 정치적 반전의 기회로 활용해 온 '추석의 남자, 이명박의 전설'이 올해 다시 재현되기에는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기야 반년이 넘도록 '민심'이 무엇을 원하는지, 대통령을 중심으로한 권력자들의 언행을 민심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라면 '무지'에 까까운 인식수준을 보여 줬던 청와대입니다. '대통령과의 대화'나 재래시장 방문 등 몇 가지 일회적 이벤트들을 늘어 놓고 '반전'을 기대한다면 그 또한 도둑놈 심보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번 추석은 이명박 대통령이 정말로 민심을 새기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고향가는 장관들은 금방 오지 말고 하루 이상 푹 쉬면서 세상돌아가는 물정을 파악하는 게 어떻겠냐"고 지시한 것처럼 이 대통령도 전국 방방곡곡의 민심을 잘 살펴보길 부탁합니다. '이명박 시대'에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돌아보면 반드시 답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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