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나온 정부의 세법 개정안을 본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입니다. 유연탄 개별 소비세 인상 효과를 제외하면 세수 효과가 마이너스인 세법 개정안을 정부가 내놓았습니다. 현재의 재정 상황을 타개하고 복지 재원을 확보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전혀 없다는 점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올해 5월까지의 국세 수입이 전년 동기 대비 19.0조 원 증가했다고 하지만, 2015년 결산 기준 관리 재정 수지 적자가 38.0조 원이고 2016년 예산 기준 적자가 36.9조 원임 고려하면 우리나라 재정이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이번 세법 개정안의 문제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누더기 법인세법 개정안, 법인세율 원상 회복 외면과 대기업 공제 감면 증가
첫 번째, 정부는 야당과 시민 단체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법인세율 원상 회복 요구를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경기가 어려워 법인세율 인상이 안 된다고 하는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저유가로 조선, 해운처럼 어려운 산업도 있지만, 이익이 증가하는 업종도 있습니다. 저유가는 기본적으로 항공, 자동차 산업의 이익 증가에 기여합니다. 제약, 화장품 등 실적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업종도 있습니다. 2015년 상장사 전체의 당기 순이익은 전년보다 약 15% 증가했습니다.
법인세는 이익에 과세됩니다. 이익을 내지 못하고 손해 보는 기업은 법인세를 내지 않습니다.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결손금 소급 공제를 통해 이전에 낸 세금을 돌려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려운 기업 때문에 증세를 못한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거꾸로 어려운 기업이나 산업의 구조 조정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합니다. 그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 여건이 나은 기업이 좀 더 부담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합니다.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은 최근 "법인세 세율 인상 주장의 5가지 오해”라는 제목으로 법인세율 인상에 반대하는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그 중에는 법인세 감세 조치 이후 증가한 사내 유보금 중 법인세 인하가 차지하는 비중이 4.6%에 불과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법인세 감세로 별 이득을 못 봤고, 그 혜택이 없어도 충분히 사내 유보금을 증가시킬 수 있었는데 뭐 그것 가지고 생색을 내느냐고 주장한 셈입니다. 감세 혜택을 주었는데 부잣집이 더 부자되는 데 그리 도움이 안 되었다면, 그 혜택을 거두어서 어려운 쪽에 주는 것이 사람 사는 이치입니다.
두 번째, 대기업 공제 감면 증가가 우려됩니다. 신성장 산업 연구 개발(R&D) 지출 비용에 대한 세액 공제율이 중소기업은 변동이 없으나, 대기업은 현재 20%에서 최대 30%로 상향조정되었습니다. 기술 이전 및 기술 취득 세액 공제도 이전까지는 중소기업만 적용되었으나, 이번에 대기업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하였습니다. 이 밖에 이번에 신설된 신성장 기술 사업화 시설 투자 세액 공제나 벤처기업 출자 세액 공제는 주로 대기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되는 제도입니다.
정부는 공제 감면 축소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얼마 전 조기 공개된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15년 법인세 세액 공제 감면은 9.6조 원으로 전년보다 0.9조 원 증가하였습니다. 이 금액은 최저한세율이 한참 낮고 각종 공제 감면이 많았던 2011년이나 2012년 보다도 많은 금액으로 역대 최고의 금액입니다. 여기에 이번에 추가된 공제 감면을 고려하면 공제 감면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늘어나 세입 기반이 잠식되는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공평 과세 확립 요구 무시한 소득세법 개정안
세 번째, 신용카드 세액 공제 개편은 방향은 긍정적이지만 효과가 미약합니다. 이번 신용카드 관련 세법 개정안은 소득 금액이 증가할수록 한도가 줄어드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소득세에 있는 각종 공제 감면은 생계비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공제 감면은 중산층과 서민에게는 필요한 조치이지만, 생계비 보장과 상관없는 고소득자에게는 적용될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 영국, 호주(오스트레일리아) 등 많은 나라에서는 소득이 늘어날수록 각종 공제 감면의 한도가 줄어들거나 적용을 아예 배제하는 제도를 폭넓게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신용카드 공제에 적용된 방식을 보험료, 연금 저축, 교육비 등 다른 공제 감면에도 좀 더 강화된 방식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유명무실화된 소득세 최저한세를 대폭 강화하여 고소득자 공제 감면 총액을 적극적으로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네 번째, 주택 임대 소득 관련 각종 특례 조항이 연장된 것도 소득이 있으면 과세한다는 원칙에 비추어 볼 때 문제가 많습니다. 2014년부터 3년 동안 소액 주택 임대 소득을 비과세 해왔는데, 이번에 다시 2018년까지 비과세가 연장되었습니다. 전세 보증금 간주 임대료 과세 관련 주택 수 계산 특례 연장(2년), 소형 주택 임대 사업자에 대한 세액 감면 기간 연장(3년) 등도 주택 임대 소득과 관련하여 공평 과세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전혀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부는 세입자에 세 부담이 전가될 것을 우려하여 비과세를 연장했다고 하지만, 적절한 상황 인식이 아닙니다. 주택 임대 소득 과세의 세 부담이 세입자에 전부 전가될 것인지, 아니면 일부만 전가될 것인지는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2017년에는 입주 물량 폭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전세 가격 하락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입주 물량을 기준으로 볼 때 2017년은 세 부담 전가가 매우 어려운 시기로 예상됩니다. 세 부담 전가 측면에서도 주택 임대 소득 과세 도입의 적기를 놓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주식 양도 차익 과세 개편 방향도 미흡합니다. 대주주 범위를 2018년에 소폭 확대하는 데 그쳤습니다. 상장 주식 양도 차익 비과세 범위는 유가 증권 시장을 기준으로 지분율 1% 미만 또는 금액 25억 원 미만으로 너무 넓습니다. 1%가 작은 수치 같지만, 유가증권 상장 주식 중 시가 총액이 1조 원을 초과한 기업이 170개가 넘고 시가 총액 2500억 원을 초과하는 기업이 400개 수준입니다.
시가 총액이 1조 원인 회사의 1%는 100억 원이고, 시가 총액 기준 400위권 기업의 1% 주주여야 25억 원이기 때문에 비과세 범위의 실질적인 기준은 25억 원입니다. 그런데, 금액 기준으로 봐도 종목별 25억 원입니다. 한 종목에만 25억 원을 투자하는 사람을 소액 투자자라고 비과세하는 것은 과도합니다. 2018년에야 이 기준이 15억 원으로 조정되는데, 획기적인 과세 범위 확대가 필요합니다.
담뱃세 인하할 게 아니라, 다른 세금을 올려야
마지막으로, 부동산 보유세 증세 방안이 전혀 없는 점도 문제입니다. 공시 지가는 실거래가와 별개로 과세의 기준을 잡기 위한 가격입니다. 자산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략 실거래가의 50~70% 수준입니다. 고급 주택이나 오피스 건물의 실거래가 반영률은 이보다도 한참 낮습니다.
공시 지가를 이렇게 실거래가와 차이가 나도록 설정하였으면 최소한 공시 지가만큼은 과세해야 합니다. 당초 설계된 대로 제도가 운영되었다면 현재는 공시 지가를 기준으로 과세가 되었을 것인데, 2009년 이후로 거의 변동시키지 않아 아직도 공시 지가의 60~80% 만 과세되고 있습니다. 보유세 정상화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담뱃세가 2014년 6.9조 원에서 2015년 10.5조 원으로 증가하였는데, 2016년에는 13.0조 원을 넘어갈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다른 증세는 하지 않으면서 왜 서민 증세만 하느냐만 불만이 있습니다. 이런 여론을 의식하여 일각에서 담뱃세 인하를 언급하고 있는데, 재정 상황을 고려하면 적절하지 않습니다. 담뱃세 인상에 비례하여 다른 세금도 올리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보유세를 담뱃세 증가율에 연동시켜 정상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막대한 재정 적자, 복지 수요에 대응하는 공평 과세와 복지 증세 나서야
위에서 언급한 전경련의 논평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괜찮다며 재정 상황이 양호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번 세법 개정안을 보면 정부의 재정 상황에 대한 인식이 전경련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많은 재정학자들이 언급하고 있듯이 한국의 재정 상황 문제는 현재의 총량이 아니라 증가 속도 그리고 급속한 고령화라는 피할 수 없는 미래에 있습니다.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위에서 언급한 공평 과세 확립을 통한 조치로도 부족합니다. 복지 재정 확충을 위해 사회 복지세와 같은 복지 증세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GDP의 2%를 넘는 재정 적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래의 복지 수요 증가를 강 건너 불구경 하는 듯하고 있는 정부의 각성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홍순탁 내만복 정책위원은 회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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