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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환경탓', '촛불탓'…이상한 '경제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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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환경탓', '촛불탓'…이상한 '경제대통령'

국면전환용 '경제위기론', 부메랑 될 수도…

"우리가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은 1·2차 오일쇼크에 준하는 '제3차 오일쇼크'라고 할 만한 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던진 말이다. 고유가 등 대외적 경제여건이 악화일로인 것은 명백한 현실이지만 대통령이 직접 '제3차 오일쇼크'를 언급한 데 대해선 많은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경제위기'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지난 인수위 시절부터다. 당시는 원자재가격이 인상되고 국제유가가 폭등세 조짐을 보이는 등 외부 경제환경이 전반적으로 악화되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대통령의 이 같은 '경제위기론'은 현재까지 대체로 비슷하게 이어져 왔다. 하지만 유난히 대통령의 '위기론'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대통령 자신과 측근들을 둘러싼 각종 논란이 불거진 시점이었다.

"심상치 않다"→"세계적 위기의 시작"→"지구상에서 사라지느냐, 살아남느냐"

우선 영어공교육, 민영화, 친재벌 정책, 통일부 폐지 등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인수위 활동 당시로 되돌아가 보자.

이명박 당시 당선인은 지난 1월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세계 경제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지난 몇 년 간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던 세계 경제가 곳곳에서 적신호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면서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며 미래로 향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 '뻣뻣'에서 '사과'로…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어깨에서 힘이 빠지면 빠질 수록 대통령의 '경제위기론'은 그 강도를 더해 갔다. ⓒ프레시안

이어 정부 출범 직후, '강부자-고소영' 비난이 극에 달하면서 자신에 대한 지지율이 10.5%포인트가 폭락(내일신문 여론조사, 3월11일)한 직후인 지난 3월17일 이 대통령은 지식경제부 업무보고에서 "이런 위기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엄포를 놨다.

이 대통령은 "어쩌면 세계 위기가 시작된다는 생각도 든다"며 "세계 경제가 아직 예측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맘 때 쯤 장·차관 워크숍에서는 '위기'라는 단어를 무려 13번이나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는 4월9일 총선을 코 앞에 두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정치권에선 "대통령이 과반의석 획득을 위해 '위기'를 이용하고 있다"는 반발이 일었다.

4월18일,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재개를 위한 협상이 타결됐다. 즉각 여론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4월25일 청와대 고위공직자에 대한 재산공개가 이뤄지면서 이 대통령은 "진짜 강부자는 청와대"라는 싸늘한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그러부터 사흘 뒤인 28일 이 대통령은 과천 중앙공무원 교육원에서 열린 국무위원 재정전략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일본에 가니까 나이 든 기업인들이 '만약 전쟁에 이겼으면 오늘 같이 발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 전쟁에 졌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느냐, 살아남느냐는 위기의식을 가졌다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다."

"패전한 일본의 위기의식이 현재의 경제대국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경제위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회하는 이 대통령의 대응방식은 시간이 지나며 이렇게 일정한 패턴을 갖추기 시작했다.

습관화된 '경제위기론'

본격적으로 '광우병 파동'이 번져나가자 이같은 '위기론'은 하루가 멀다하고 반복됐다.

여중생이 중심이 된 첫 촛불집회(5월2일)가 열리고, 포털 사이트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온라인 탄핵서명이 100만 명을 돌파(5월4일)한 직후인 5월6일 이 대통령은 서울 디지털포럼 개막사를 통해 "경제 살리기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이끌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숙제를 안고 있지만, 세계 경제환경은 매우 어렵다"며 예의 '위기론'에 다시 불을 지폈다.

최종 검토단계에서 삭제되긴 했지만 당시 개막사 초안에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는 문구도 들어있었다. 이 대통령은 "변화와 개혁은 일시적으로는 불편하고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는 이를 극복해야 한다"며 "그래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세계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월 중순을 거치며 촛불집회는 대규모로 확산됐다. 이 대통령은 5월22일 1차 대국민담화에서 "국민께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바로 이 시점에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면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엄포를 놨다. 그는 "지금 우리는 선진국에 진입하느냐, 하지 못하느냐하는 그야말로 역사의 분기점에 서 있다"고까지 했다.

대통령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대국민담화에서조차 광우병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괴담'으로 치부한 '경제 대통령'의 태도에 촛불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6월10일 촛불집회에는 광우병 대책회의 추산 70만 명의 인파가 운집했다. 바로 다음 날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중소기업 성공전략회의에서 "중국 순방을 갔다 왔는데 중국은 나름대로 세계 최고의 경제 성장을 하고 있지만 국민과 정부가 합심해 위기상황에 대처하더라"면서 "국민, 기업, 근로자, 정부, 정치권이 합심하면 어떤 나라보다도 위기를 잘 극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퇴로 없는 '촛불정국'이 장기화되면서 '경제위기'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복은 아예 이 대통령과 청와대의 '습관'이 됐다. 이 대통령은 한껏 몸을 낮춘 것으로 평가되는 2차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해서도 "국제 경제 여건이 대단히 어렵다"며 "세계 경제가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고, 우리도 그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6월30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쇠고기와 남북 문제에 가려 경제상황이 주목을 끌지 않지만 지금 경제는 국난(國難)적 상황"이라며 "경제가 위기상황이라고 하면 경제를 앞세워 국민들을 겁준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현재 상황은 심각하다"고 했다.

경제가 정치의 볼모냐?

"제3차 오일쇼크라고 할 만한 상황"(7월2일, 수석비서관회의)이라는 발언은 이런 끝에 나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정이 보여 주듯 정치적 의도가 뻔한 '경제위기론'은 번번이 더 큰 반발을 불러왔다. 외국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는 식의 사족을 덧붙임으로써 경제위기의 이유를 '촛불집회'에 돌리려는 의도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7월5일 촛불집회에는 지난 6.10 집회 이후 최대인파인 50만 명(대책회의 추산)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이명박 대통령의 '항복'을 요구하고 나섰다.

촛불집회 주최측 내부에서 향후 프로그램에 대한 시각차가 엿보이지만 당장 촛불이 꺼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번 시위를 분수령으로 거리의 촛불이 점진적으로 잦아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청와대의 노림수도 여기에 있다. 촛불의 동력이 고갈됐다는 판단이 드는 순간 '건국 60주년' 행사 등 대대적인 관(官) 주도의 국면전환 프로그램을 쏟아낼 태세다. '경제위기론'은 이 때도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사회적 혼란이 마감됐으니 온 국민이 허리띠 졸라매고 정부를 중심으로 경제위기를 함께 극복해가자는 식의 선전이 예상된다.

반면 금주 초로 예상되는 개각에서는 한나라당 일각에서조차 경질을 요구하는 '강만수 경제팀'을 유임시킬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유가 등 외부적 요인에 대한 적절한 대응에 실패함으로써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킨 정부측의 책임론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같은 정황을 종합하면, 이 대통령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경제살리기'에 대한 바람에 반성적으로 부응하기보다는 '경제위기'를 '정치적 볼모'로 역이용하는 악순환 시나리오를 그리는 게 아니냐는 비판론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외부환경탓, 촛불탓 등으로 경제 실패 책임을 회피하려는 임기응변식 대응은 오히려 더 큰 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제계의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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