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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맛, 누가 빼앗았나

[함께 사는 길] 해양투기·①

"홍게 보고 가이소. 오늘 아침 위판장에서 가져온 거라 싱싱합니다. 대게까지 10만 원에 다 가져가이소."

비릿한 바다 내음이 가득한 2월 중순 영덕 강구항은 게를 팔려는 상인과 게를 사려는 사람들의 흥정으로 북적인다. 바다에서 막 돌아온 선박들은 동해바다에서 막 잡아온 게를 실어 내리느라 분주하다. 이곳 어부들은 홍게라 불리는 붉은대게와 대게를 주로 잡는다. 붉은대게와 대게는 동그란 몸통에 긴 다리 열 개로 얼핏 비슷한 모습이지만, 대게는 배쪽이 흰색에 가깝지만 붉은대게는 온 몸이 진홍색으로 붉다. 사는 곳도 조금 다르다. 둘 다 동해에 서식하지만 대게는 주로 수심은 200~400미터(m)에 산다. 반면 붉은대게는 이보다 더 깊은 수심 700~2200m 깊은 바다의 부드러운 진흙지대나 모랫바닥에 산다. 알에서 부화한 새끼는 게라기보다는 물벼룩과 비슷한 모습이다. 몇 번 탈피한 뒤에야 게 모양을 갖추는데 우리가 먹는 붉은대게는 7년생 이상이다.

▲ 동해에서 잡힌 대게와 붉은대게. ⓒ함께사는길(이성수)

황금어장을 쓰레기장으로 만든 정부

붉은대게를 잡기 위해서는 먼 바다로 나가야 한다. 어부들은 원뿔대형의 통발 어구에 먹이를 넣어 바다에 던져놓고 붉은대게가 통발 안에 들어오길 기다렸다가 건져 올린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게와 붉은대게 개체 수를 보호하기 위해 산란기 어로행위는 법으로 금지된다. 대게는 6~11월, 붉은대게는 7~8월에는 잡을 수 없다. 두 대게의 금어기가 풀리는 지금은 어부들이나 '게 맛'을 아는 사람들이 기다리던 때다.

생계에 큰 보탬이 되니 어민들에겐 효자고, 소비자들에겐 사랑받는 메뉴지만 붉은대게는 해양투기로 인한 바다오염의 상징이기도 했다. 2005년 한 방송 프로그램으로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17년 동안 바다에 폐기물을 버려왔고 그로 인해 바다가 오염되었다는 내용이었는데 붉은대게에서 나온 돼지털이 전국에 방송된 것이다. 어민들도 국민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해당 지역 붉은대게의 중금속 함량이 다른 해역보다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붉은대게 소비가 뚝 떨어지고 어민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사실 붉은대게의 이상 현상을 발견하고 세상에 알린 것은 해당지역 어민들이었다. 2003년 당시 경북홍게통발협회 소속 어민들은 포항에서 동쪽으로 12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붉은대게 어망에 붉은대게뿐만 아니라 돼지털 등 동물 잔재물과 하수처리 오니 등 각종 폐기물이 같이 올라오고 있다며 환경부와 해양수산부에 탄원서를 보냈다. 당시 한 어민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통발의 그물이나 포획된 붉은대게의 몸통과 다리에 폐기물이 붙어 있거나 뒤엉켜 있는 경우를 자주 보고 통발 하나에서 돼지털 같은 잔재물을 한 움큼씩 수거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어민들은 해양투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해양투기를 위해 동해 두 곳, 서해 한 곳을 각각 해양배출 해역으로 지정했는데 그 중 한곳이 바로 문제가 된 어장과 일치했다. 정부는 포항 동쪽 125㎞ 떨어진 해역 3700제곱킬로미터(㎢)를 투기 배출 해역으로 지정하고 축산분뇨 및 산업폐수, 각종 오니 등을 내다 버렸다. 2005년까지 동해병 해역에 쏟아 부은 폐기물은 총 3818만 톤(t)이나 됐다.

그곳은 황금어장이었다. 이곳에서 잡힌 붉은대게는 경상북도 전체 생산액의 50퍼센트가 넘었다. 어민들은 정부가 폐기물 투기장을 선정할 당시 붉은대게를 비롯한 해양생물 서식지에 대한 실태 조사는커녕 공청회 등을 통한 어민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지정했다며 분개했다. 어민들은 2003년 '해양투기를 금지해달라!'며 환경부와 해양수산부에 탄원서를 냈지만 정부는 아무 답도 주지 않았다. 방송을 통해 실상이 알려지고 여론이 악화되자 그제야 해양수산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리 모두가 바다를 빼앗겼다

2005년 11월 해양수산부는 해양투기량을 매년 100만 톤씩 줄여 2011년 해양투기량을 2004년 975만 톤의 50%까지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해양오염방지법시행규칙을 개정해 현행 해양투기 허용품목을 14종에서 9종으로 제한하고 중금속 및 발암물질 등에 대한 검사도 추가하는 등 투기허용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머리카락 등 이물질은 반드시 사전에 제거해 바다에 투기하도록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붉은대게에 이물질이 끼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표피적인 대책이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붉은대게를 기피했고 다른 지역 어민들에게까지 피해가 확산됐다. 이에 해양수산부는 2007년 동해병 배출해역의 붉은대게 어업을 금지시키고 어선 10척(폐업보상 4척, 제한보상 6척)에 대하여 약 30억 원의 보상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황금어장을 포기하고 그곳을 쓰레기장을 만드는 정책을 편 것이다.

▲ 어민들은 해양투기 전면 금지를 시작으로 정부가 바다를 살리는 정책을 펴길 기대하고 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정부는 2015년까지 해양투기를 계속하다 2016년 1월 1일 해양투기를 전면 금지했다. 당시 해양투기 문제를 세상에 알렸던 한 어민은 해양투기 중단을 환영한다면서도 그 당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꺼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다를 지키기 위해 세상에 알렸지만, 해양투기가 중단되기는커녕 황금어장을 뺏기고 '돼지털 홍게'라는 오명을 쓰고 판로가 막히는 피해를 봤던 것이다. 바다를 빼앗긴 것은 비단 어민들만은 아니었다. 국민들도 그 바다 황금어장이 준 선물을 받지 못하고 뺏겼던 것이다. 어민들은 이제 바다를 살릴 차례라고 말한다. "생산량이 20년 전에 비해 반토박이 났다. 남획이나 이상기온 등의 이유도 있겠지만 바다 쓰레기도 큰 문제다. 해양투기 중단을 시작으로 바다를 살리는 정책을 대대적으로 펴야 마땅하다." 붉은대게 잡이를 하는 한 어민이 절절한 목소리로 당부했다.

회복은 더디다

해양수산부는 '폐기물 배출해역 종합관리 방안'을 발표하고 해양투기로 오염된 해역을 복원하고 황금어장이었던 동해병해역 붉은대게 조업을 재개할 시기와 단계별 해제방안 등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28년 쓰레기를 버렸던 시간보다 회복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사실이다.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 가기 :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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