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콩의 진가를 가장 먼저 알아본 이들은 다른 아닌 우리 선조들이다.
"콩, 너는 내 운명"
콩(대두)의 원산지를 만주와 한반도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한반도와 만주의 콩이 중국과 일본으로 전파되고 이것이 다시 유럽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갔다고 주장한다. 한반도는 콩과 함께 한 역사가 그 어느 나라보다 깊다는 것이다. 농사를 짓던 선조들에게 콩은 부족한 단백질을 공급하는 귀한 음식이었다.
우리 선조들이 콩을 먹는 방법은 참 다양했다. 밥이나 떡에 넣어 먹는 건 심심하고 물렸는지 콩을 물에 불려 맷돌에 갈아서 그 건더기를 거르고 콩물만 끓이다가 간수를 넣고 하얀 덩어리가 지면 판에 눌렀다가 식혀 먹었다. 두부다. 그 콩 건더기도 버리지 않고 김치를 넣고 끓였다. 비지찌개다. 한 발 더 나가 시루에 콩을 넣고 햇빛이 들어가지 않게 그늘진 곳에 두고는 물을 주어 뿌리를 내리게 했다. 곡물을 채소로 만들어 먹은 것이다. 콩나물은 발아 과정에서 비타민C도 형성돼 콩나물 두 줌 정도면 하루 필요한 비타민C를 모두 충족할 수 있다고 한다. 채소를 구하기 힘든 한겨울에도 콩나물을 길러 먹으면, 부족한 비타민을 섭취할 수 있었다. 또 그 콩나물 뿌리에는 아스파라긴산이 함유되어 있어 해장국으로도 그만이다.
밥상 위에 펼쳐지는 선조들의 지혜는 장에서 절정을 이룬다. 가을 수확한 콩을 삶아 으깨 덩어리를 만들고 볏짚에 묶어 겨우내 메주를 띄웠다. 잘 띄운 메주는 소금물에 넣고 발효시켜 된장으로 만들고 그 소금물은 달여 간장으로 사용했다.
장이 된 순간부터 콩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은 없다. 찌개며 국 심지어 나물무침에도 콩으로 만든 장으로 간을 맞추고 맛을 더했다. 그냥 콩으로 먹는 것이 단백질 공급에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선조들의 놀라운 지혜가 숨어 있다. 현대에 이르러 관련 전문가들이 분석을 해보니, 그냥 콩으로 먹을 때보다 된장으로 먹을 때 단백질 흡수율이 20% 이상 높았다. 된장의 미생물이 아미노산을 분해해 단백질 흡수율을 높인다는 것이다. 굳이 콩을 따로 먹지 않아도 다른 음식을 통해 필요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 선조들이 콩으로 장을 담아 먹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시대라 전해진다. 1700년도 더 전에 서진의 진수라는 이는 고구려인이 장 담그기를 매우 잘한다며 그의 책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록했다. 우리 선조들이 장과 장 담그기를 얼마나 중히 여겼는지는 영조 42년 농업 백과사전이라 할 만한 <증보산림경제>에 잘 드러난다. <증보산림경제>는 "장(醬)은 모든 맛의 으뜸이요, 인가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가 될 수 없다. 촌야의 사람이 고기를 쉽게 얻지 못해도 여러 가지 좋은 장이 있으면 반찬에 아무런 걱정이 없다. 가장은 모름지기 장 담그기에 뜻을 두고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장 담그는 날이 그 집안의 큰 행사 중 하나였음도 당연하다. 손 없는 날을 피해 장 담그는 날을 잡고 그날을 전후해 마실도 삼갔을 정도다. 오죽하면 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장을 망치면 그해 그 집 음식까지 망치게 될 터이니 나쁘고 안 된다는 일은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었을 것이다. 정성 드려 장 담그기에 성공하면 그 집안 한해 음식은 성공인 셈이다.
지역에 따라 장 담그는 시기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음력 정월은 장 담그기 좋은 날로 친다. 그도 그럴 것이 가을걷이를 끝내고 한숨 돌려 메주를 만들고 띄우다 보면 그즈음 메주가 알맞게 뜨기도 하고 또 벌레가 없고 발효도 잘되기 때문일 것이다.
선조들은 된장, 간장만 담근 것은 아니다. 지역마다 메주를 띄우는 방식도 다르고 장에 넣는 재료도 달랐다. 청국장, 고추장도 그중 하나다. 기록으로 전해져 오는 장류는 140여 종이나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장 담그는 집들만큼이나 장 종류도 많이 사라졌다.
빼앗긴 콩, 빼앗긴 밥상
콩의 종류도 다양했다. 선비잡이콩은 점잖은 선비도 붙잡을 정도로 콩 맛이 좋아 밥에 넣어 먹었고 쥐눈을 닮은 작고 까만 쥐눈이콩은 약콩으로 이용했다. 이 밖에도 아주까리콩, 오리알태, 한아가리콩, 수박태, 납떼기콩, 푸르데콩, 밤콩, 좀콩 등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콩을 키우고 밥상에 올렸다. 오랫동안 우리 땅에서 적응해 자란 이러한 콩들은 다른 나라의 콩보다도 맛이나 영양면에서 월등하다. 실제로 한국식품과학연구원의 분석결과 단백질이 풍부한 다이어트 식품이라고 알려진 렌즈콩의 단백질 함량은 22.4%였던데 반해 서리태, 약콩, 백태 등 국산콩은 33~34%에 달했다. 칼슘이 풍부하다는 수입콩 퀴노아의 칼슘 함량 또한 서리태의 20% 수준에 그쳤다.
21세기 그들의 후손인 우리는 이 땅에 살며 콩을 먹는다. 두부를 먹고 콩기름으로 전을 부치고 콩나물을 무쳐내며 콩으로 만든 장으로 요리를 한다. 하지만 그 많던 콩들은 사라졌고 대부분의 콩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고 있다. 우리나라 2014년 기준 콩 자급률은 10%를 겨우 넘는다. 콩의 원산지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울 정도다.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콩을 많이 재배하고 수출하는 국가 중 하나다. 미국이 콩 주요 재배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콩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1929년 미국 농무성은 동양의 식물 탐험 원정대를 파견해 동양의 콩 유전자원을 수집해갔다. 당시 원정대가 중국, 일본, 한국 등에서 수집한 콩 유전자원은 총 4471점. 이 중 우리나라에서 수집한 콩은 무려 3379점으로 76%나 차지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미국에서 생산하는 대두의 90%는 아시아에서 채집한 종자를 개량한 것이며, 이 중 6가지 품종은 한반도에서 채집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미국이 우리 콩의 가치를 알아보고 제 것으로 만드는 사이 우리는 '자동차를 팔아 쌀을 사 먹자'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콩 한 쪽 심을 땅마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게다가 유전자조작 콩까지 물밀 듯 들어오고 있다. 유전자조작 콩으로 된장이며 간장, 콩기름을 만들고 또 그것으로 요리를 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밥상에 콩심을 되찾자
조선시대 실학자 이익은 '백성을 살리는 데 콩의 힘이 가장 크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여전히 콩은 한반도와 함께 하고 있고 우리를 살찌우고 있다. 콩 심은 데 콩 난다. 이 땅에 우리 콩을 심고 밥상에 제대로 된 콩을 올리자. 우리의 콩심을 되찾자.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 가기 :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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