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부처 산하 기관장들, 알아서 자진사퇴
실제 각 정부부처 산하의 공공기관 기관장들의 '사표 제출 러시'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금융기관 중에서는 산업은행 김창록 총재가 첫 사례가 됐다. 김 총재는 지난 12일 금융위원회에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이는 기정 사실화된 산업은행 민영화 조치와 맞물린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최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산업은행 총재를 지목하면서 "부끄럽지 않느냐"고 일갈한 대목이 김 총재의 사퇴를 앞당겼다는 해석도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13일 오전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산업은행 민영화는 4년 내로 예정돼 있는데 1년 앞당겨 3년 내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우리금융지주, 기업은행,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주택금융공사,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등 금융공기업 수장들도 다음 주 중 모두 사표를 제출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국토해양부 산하의 대한주택공사와 토지공사,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전력과 수출보험공사, 보건복지부 산하 보건산업진흥원 등 공공기관 기관장들도 사표를 제출하거나 사의를 표명했다.
이들의 사표수리 여부는 청와대가 판단하게 된다. 일종의 '재신임' 절차를 통해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코드인사' 논란의 당사자들이나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낙하산 인사' 등을 솎아 내겠다는 얘기다. '재신임'의 대상이 되는 인사는 305개 공기업의 기관장은 물론, 이사와 감사를 포함해 1000여 명에 이른다.
청와대의 다른 고위 관계자는 "그 동안의 경영성과와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전문성 등을 관계부처와 청와대가 심사해 사표 수리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낙하산 인사는 없다"더니…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생겨난 '자리'들을 또 다른 '낙하산 부대'가 꿰찰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각 기관장들은 총선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지난 인수위 시절부터 누누히 "낙하산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 왔던 청와대의 최근 분위기도 반전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 11일 기자들과 만나 "공기업이 총선에서 떨어진 낙선자들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곳이 돼서는 안 된다"면서도 "(공천) 낙천자와 낙선자는 입장이 다르다"고 가능성을 열어 뒀다.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은 일종의 배려 차원에서 정부 산하단체나 공기업에 진출할 길을 열어 줄 수 있지만, 공천을 받은 뒤 낙선한 인사들의 경우에는 이를 허용치 않겠다는 방침을 시사한 것.
공천에서 탈락한 권철현 의원이 총선이 끝나자마자 주일대사에 내정된 대목 역시 같은 맥락이다. 권 의원은 지난 대선 기간 이회창 총재의 출마를 비판하며 단식농성까지 벌였던 친이계 인사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 역시 "공천을 받지 못해 유권자들로부터 선택받을 기회를 아예 갖지 못한 낙천자들과 달리 총선 낙선자들은 국민으로부터 심판을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며 "청와대가 낙천자와 낙선자를 분리해 기용하는 방침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이같은 '분리대응 방침'에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중진-원로 인사들이 이번 총선에서 대거 공천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천에서 탈락한 이 대통령의 측근인사로는 김덕룡, 박희태, 맹형규, 박계동 의원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반면 공천을 받고도 총선에서 낙선한 측근들은 이방호-이재오-박형준 의원 등이다. 한반도 대운하 '전도'에 앞장섰던 박승환 의원,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했던 정종복 의원, 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송태영 전 특보 역시 각 지역구에 출마했다 고배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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