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막 나가고 있습니다. 말문을 막고 힘으로 찍어누르려고 합니다. 곳곳에서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감사원은 지난 2일부터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7개 시도 교육청에 대한 감사에 들어갔습니다. 같은 날 교육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교육청은 예비비 3000억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육감들이 제안한 범사회적 협의기구에 대해 정부에 억지를 부리는 일로 비칠 수 있다며 거부 입장을 밝혔고요. 황교안 총리도 어제 강경발언을 했습니다. "누리과정 예산은 유아교육법 등 법령에 근거해 반드시 편성해야 하는 시도 교육청의 법적 의무이며, 결코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면서 "정부는 법적 의무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교육청에는 목적예비비 배정 등 그에 상응하는 지원을 할 것이고, 정치적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갈등을 확대시키는 교육청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 '나홀로 폭주'입니다. '내 앞길 막지 마라. 그러다 다친다'는 투입니다.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뭘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선거입니다. 누리과정 예산 갈등을 격화시킴으로써 지지층의 결집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총선 승리를 일궈 국정 동력을 확충하겠다는 전략 같습니다.
상식적이다 못해 교과서적인 분석입니다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갤럽'이 1월 2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론은 결코 정부 편이 아닙니다. 누리과정 예산 미편성 책임 소재에 대해 응답자의 45%가 '중앙정부 책임이 크다'고 답했습니다. '시도 교육청 책임이 크다'는 응답률 27%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특히 미취학 또는 유치원생 자녀를 둔 부모의 77%, 초·중·고생 학부모의 53%가 '중앙정부 책임'을 들었습니다.
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층 일부조차 중앙정부 책임론에 고개 끄덕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리과정 예산 갈등을 일으켜 지지층을 결집한다는 전략은 망상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여론을 모르고 헛발질을 하고 있는 걸까요?
정반대 가능성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거를 의식한 행보이긴 하지만 그 동기가 정반대일 가능성인데요. 중앙정부에 대해 싸늘한 민심이 총선에서 정부 심판 표심으로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한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전략에 따르면 누리과정 예산 문제가 선거 이슈가 되는 걸 차단해야 합니다. 갈등의 장기화를 막고, 갈등 양상을 수면 아래로 잠복시켜야 합니다. 갈등 장기화를 차단하려면 교육감들이 요구한 사회적 협의기구 설치를 받으면 안 되고, 갈등 양상을 수면 아래로 잠복시키려면 응급처방으로 몇 개월 치의 예산 편성을 끌어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는 실제로 그렇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회적 협의기구 설치 제안은 일언지하에 잘랐고, 몇 개월 치라도 예산을 편성한 교육청엔 날을 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오로지 몇몇 교육청, 단 한 푼도 편성하지 않은 교육청만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몇 개월 치라도 우선 편성하라고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런 교육청의 대부분은 총선 결과를 좌우할 지역, 그리고 야당 강세 지역의 교육청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누리과정 윽박지르기가 수세적 성격을 가리기 위한 허장성세라 하여 마냥 그러리라는 전망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황 반전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는 경우 그렇게 됩니다.
박근혜 정부가 지금 펼치는 허장성세의 축은 일방적 원칙론입니다. 중앙정부는 지방재정교부금을 통해 누리과정 예산을 전부 지원했으니까 예산 편성 책임은 교육청에 있고, 교육청이 이를 방기하면 나중에 법을 바꿔서 강제하겠다는 겁니다.
이 주장이 총선 이후 실행될지 모릅니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정부의 일관된 원칙이 국민에 의해 추인됐다며 법 개정을 밀어붙일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임시방편적 허장성세를 일관된 원칙의 알리바이로 제시할지 모릅니다.
이렇게 보면 키포인트는 분명합니다. 누리과정과 총선의 결합 여부, 누리과정 민심과 총선 표심의 연결 여부입니다. 이것이 지금 전개되고 있는 누리과정 예산 갈등의 핵심축이며, 총선 이후 누리과정 예산 문제의 방향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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