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에 갈등이 심하다 못해 거의 멱살잡이 수준이다. 2013년 서울시와 정부 간에 무상 보육 예산 갈등으로 전초전을 치룬 후, 올해부터는 중앙 정부가 아예 누리 과정 예산 부담을 지방 교육청으로 떠넘기면서 지방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 지방 의회 간에 정치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지난 8월 사회보장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 유사·중복 사회 보장 사업 정비 추진 방안을 발표한 이후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정부를 상대로 권한 쟁의 심판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이어 지방 의회가 '지방자치단체 유사·중복 사회보장 사업 정비 전면 철회 촉구 결의안'까지 채택하며 반발하고 있다. 또한 최근 중앙 정부가 성남시의 청년 배당제와 공공 산후조리원 설치에 대해 불수용 통보하자, 이재명 성남시장은 대통령을 상대로 권한 쟁의 심판을 청구하고, 서울시도 청년 수당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도대체 왜 정부 간에 복지 갈등이 거세지고 있을까? 이는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워 탄생한 박근혜 정부가 지방자치단체를 방패막이 삼아 복지를 축소하려고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유사·중복 사업 정비는 복지 축소 질주의 경고등
지난 8월 사회보장위원회가 사업 정비 추진 방안을 발표한 이후, 지난 11월 11일 박근혜 대통령은 수많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제11차 사회보장위원회에 이례적으로 참석하여 지방자치단체 유사·중복 사업 정비 추진을 압박했다. 또 12월 1일 국무회의에서 중앙 정부와 협의하지 않은 복지 사업에 대해 교부세를 감액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등 지방자치단체 복지 사업을 통제하기 위한 다각적인 공세를 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정부 방침에 반발하면서도 대구, 대전, 인천, 제주를 제외한 13개 시도에서 정비 계획안을 제출하였고, 정부는 2016년 예산안이 반영된 정비 결과를 1월까지 제출하도록 요구한 상태이다. 당초 정부가 제시한 정비 대상 사업은 1496개 사업, 9997억 원 규모였으나 현재 13개 시․도가 제출한 정비 안에 포함된 사업은 594개 사업, 674억 원(2016년 예산 기준) 규모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사업이 유사·중복이라는 이름으로 폐기되는 건 이번 조치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성남시에서 청년 배당, 공공 산후조리원 설치를 추진하고자 하였으나, 정부에서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협의 및 조정)에 근거하여 불수용을 통보하면서 성남시의 복지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서울시의 경우 청년 수당을 발표하자마자 협의․조정을 거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미리 불수용 의지를 내세우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지방교부세법 시행령'까지 개정해 버렸다. 이제 지방자치단체는 자체 예산으로 하는 자율 복지 사업마저 중앙 정부 허락 없이 할 수 없게 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 축소 전략과 정치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의 실상은 복지 공약 파기와 지방자치단체에 복지 예산 떠넘기기, 유사·중복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복지마저 통제하여 복지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1단계 : 복지 공약 파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기억할 것이다.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 기초 연금 지급, 지방자치단체 재정 부담 고려한 국가 책임 보육 시행, 고교 무상 교육, 4대 중증 질환 진료비 100% 국가 보장 등 획기적인 복지 공약을 믿고 국민이 투표하였다. 하지만 20만 원의 기초 연금을 받는 노인은 10명 중 4명도 안 되고, 정부가 예산 편성조차 하지 않아 보육 서비스 중단 위기가 반복되고, 내년(2016년)에는 아예 보육 지원을 줄이겠다고 한다. 맞춤형 개별 급여를 통해 사회 안전망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2016년 예산에 반영된 수급자 수는 늘어나지 않고, 부양 의무자 사각지대에 있는 410만 명은 여전히 방치될 것이다. 약속했던 고교 무상 교육은 거의 물 건너간 듯하다.
그 외에도 대통령 공약을 이행한다면서 해당 분야 다른 사업 예산을 줄줄이 삭감하고 있다. 장애인 연금 지급을 위해 장애인 자녀 학비 지원, 장애인 보조 기구 지원, 중앙 장애인 자립 생활 지원, 여성 장애인 지원, 장애인 의료비 지원 등 장애인 관련 예산이 많이 삭감되었다. 눈에 보이는 공약 사업 시행을 위해 힘없는 복지 사업들은 정리되거나 축소되었다.
2단계 : 복지 예산 떠넘기기
정부는 복지 공약 축소·파기로도 늘어나는 복지 예산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자신이 추진하는 국고 보조 사업에 대한 예산 부담을 지방자치단체로 전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누리 과정 예산이다. 중앙 정부는 2016년 누리 과정 예산을 전혀 편성하지 않고, 지방교육청이 빚을 내서라도 부담하도록 하고, 보육 서비스 지원 시간을 줄이고 이용자 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 복지를 축소하고 있다.
중앙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예산을 떠넘기는 문제는 누리 과정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복지 사업 전반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2013년 3~4세 누리 과정 도입, 2014년 기초 연금 등 국고 보조 사업이 확대되면 지방자치단체 예산도 종속적으로 늘어나는데, 사업 확대에 따른 예산 증가뿐만 아니라 중앙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국고 부담분조차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겨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예산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실제 예산을 들여다보면, 서울시 자치구들 중 복지 예산이 60%가 넘는 지역이 4곳이나 되고, 지난 9년 동안 중앙 정부 복지 예산이 연평균 8.8%씩 증가하는 데 비해 지방자치단체는 연평균 14.4%씩 증가해 중앙정부에 비해 두 배가량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복지 예산을 둘러싼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은 이런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3단계 : 복지 책임 전가하기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예산 갈등이 고조됨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사업 중단을 선언하거나 국고 보조율 인상을 요구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자, 정부는 오히려 지방자치단체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유사·중복 사회 보장 사업 정비와 서울시와 성남시의 청년 정책에 대한 정부의 압박, 지방교부세법 개정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증세 없이 복지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부채를 늘리거나 복지를 축소하는 방법밖에 없다. 내년 국가 채무가 645조 원이 넘고, 채무 비율이 40%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부채를 늘리기엔 역부족이고, 복지를 위해 부채를 늘릴 의지도 없다. 복지 효율화를 명분으로 더 이상 복지를 축소하기에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 한편, 지방자치단체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국고 보조 사업에 대한 추가 지원을 요구하면서 자체 복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니 이를 정부가 반길 리 없다.
이런 국면에서 정부는 누리 과정 예산 책임을 지방교육청에 떠넘겨 재정 부담과 보육 서비스 중단에 대한 책임을 지방자치단체에 전가했다. 유사․중복 사업 정비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자치단체 자체 사업 예산을 줄여서 국가 사업에 지출하도록 하고, 지방자치단체 자체 사업 축소에 따른 비난도 지방자치단체의 몫으로 돌렸다. 복지 재정 부담과 정치적 책임을 지방자치단체에 전가하여 지방자치단체-지방 의회-지방교육청-지역 주민 간 갈등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 복지 축소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복지 정책이 정쟁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해야
최근 지방자치단체 유사·중복 사업 정비와 청년 정책을 둘러싼 논란으로 가장 득을 보는 건 서울시와 성남시이다. 서울시 청년 수당은 고작 3000명을 대상으로 90억 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하는 사업인데 정치권과 정부에서 연일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등 엄청난 사업인 양 공격을 하니, 국민의 관심도 높아져 홍보도 이렇게 좋은 홍보가 없다. 이와 같이 박근혜 정부의 지방자치단체 복지 사업에 대한 조치는 정치적 표적을 공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지방자치단체 유사․중복 사업 정비와 서울시, 성남시 청년 정책에 대한 정부의 통제는 사회보장기본법에 근거하고 있다. 사회보장기본법에 협의·조정 절차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사회보장제도의 신설・변경 시 기존 제도와의 관계, 사회보장 전달체계와 재정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고 상호 협력할 의무를 부여하기 위한 규정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지방자치단체 복지 사업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지방교부세법에 교부세 감액 규정까지 동원됐다. 협의·조정제도가 지역 복지 정책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고, 정치적 표적을 위해 개정된 교부세 감액 규정 또한 폐지해야 한다.
사실 논란이 되는 사업들이 수요자에게 중복적으로 지급되어 낭비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적정 수준의 급여를 받지 못하거나 제도에서 배제된 사각지대를 메우는 사업이라는 것은 정부도 이미 주지하고 있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보충적 성격의 복지 사업을 정비하기 전에 수급자 범위를 확대하고, 급여 수준을 향상시켜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하고,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조치를 선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복지 재정을 둘러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과 지방자치단체 복지 사업이 유사·중복적 성격을 갖는 것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복지 책임과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헌법과 지방자치법에 따라 중앙 정부의 사무와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구분하여 고유의 사무에 대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만, 실제 사업을 하는 데 그 역할과 책임이 모호한 상황이다.
정부는 우선적으로 합리적인 역할 분담 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업을 명확히 구분하여 재정 부담 책임을 재조정해야 한다. 예컨대, 국민의 기본적 생존권을 보장하는 소득 보장 사업과 동일한 수준의 보편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는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지역적 특성과 수요자 욕구에 맞는 개별적 서비스는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담당하도록 한다면 비효율적인 유사·중복 사업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유사·중복 복지 다툼의 복지 정치 주목해야
복지 예산 규모가 100조 원이 넘는 상황에서 1조 원도 안 되는 지방자치단체 복지 사업 정비를 추진하려는 정부와 이를 막으려는 세력 간의 다툼의 흐름을 주목하자.
2010년 지방 선거에서 무상 급식 논란은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을 보편적 형태로 발전시킬 것인가의 논쟁이었고, 그런 과정을 거쳐 본격적인 보편적 복지 정책이 논의될 수 있었다. 2015년 지금 복지 예산 갈등과 지방자치단체 유사·중복 사업 정비, 지방자치단체 복지 사업에 대한 정부의 통제는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을 축소의 방향으로 끌어가려는 세력과 그를 막으려는 세력 간에 다툼이란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어디에 힘을 실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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