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포털 검색어 순위에 오른다. 이번 주 '역대급' 방송은 무엇일까. 이번에는 어떤 미제 사건이 방영될까.
SBS가 개국 초기인 1992년 3월 31일 첫 방송을 시작한 <그것이 알고 싶다>는 올해로 23년째 장수 프로그램이다. 숱한 화제를 낳고, 때로는 사회적 공감대를 일으켜 사건 해결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이 프로그램은 올해 9월 5일로 1000회 방영 기록을 세웠다. 극심한 시청률 경쟁 틈바구니에서 탐사 보도 프로그램이 이토록 장수한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그 사이 이 프로그램의 새로운 내용을 기다리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팬덤 문화까지 만들어졌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프로그램 1000회를 기념해 <그것이 알고 싶다 : 세상을 보는 진실의 눈>(엘릭시르 펴냄)을 펴냈다. 미스터리 전문 출판사 엘릭시르와 제작진이 이 방송 프로그램 중 특히 기억할 만한 사건을 주제별로 묶어, 해당 방송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도 이후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등을 기록했다. 책에 수록된 프로그램 목록은 책 편집부가 제안한 목록과 방송 PD들이 추천한 목록으로 채워졌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가 책의 말머리를 열었고, 초대 제작진인 홍순철 SBS 상무이사가 이 프로그램의 의의를 되짚었다.
책은 크게 <그것이 알고 싶다>가 다룬 사건 중 종교 부문, 군·분단 문제, 아동 학대 문제, 미스터리 사건,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 등의 주제로 나뉘었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해당 사건 해결을 위해 <그것이 알고 싶다>와 협력했던 우리 사회의 정의로운 이들이 프로그램의 방영 의의를 짚었다(<그것이 알고 싶다>의 터줏대감이라 칭할 만한 표창원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이 책에도 글로써 참여했다).
책 후반부에는 1000회까지의 모든 프로그램 목록과 제작진이 소개되었다. 문성근, 정진영, 김상중 등 대표급 진행자와 엘릭시르 편집부와의 인터뷰도 재미를 준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기존 시사 프로그램과 약간 다른 형식을 취했다. 유명 영화배우가 방송을 진행했고, 그는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며 몸짓으로 사건의 중대함을 짚어나갔다. 때로 방송은 미제 사건에 대한 시청자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가상 세트를 만들었고, 재연 프로그램의 방송 작법을 과감히 쓰기도 했다. 시사 고발 꼭지가 아닐 경우, 대체로 사건은 범죄 추리 형식을 갖춰 시청자의 두뇌 게임을 유도했다.
이와 같은 장치들은 시청자가 방송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수동적 입장에서 벗어나, 진행자와 함께 방송이 제시하는 의제에 깊숙이 뛰어들도록 유도했다. 강력한 팬덤의 생성은 '탐사 보도 프로그램은 진중해야 한다'는 상식의 파괴를 통해 가능했다.
방송이 다루는 형식도 KBS의 <추적 60분>, MBC의 <PD수첩>과 약간 결을 달리했다. 주요 핵심은 범죄 사건에 맞춰져 있었다. 범죄의 결을 통해 시청자는 김훈 중위의 군 의문사 사건, 재벌 사모님의 여대생 청부 살인 사건, 세 모자 사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어떤 매체보다 생생한 눈으로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대 한국사를 지배한 힘의 논리, 정부의 부패, '갑을 구도'의 병폐를 깨닫게 되었다. 아들을 잃은 예비역 장성의 비명으로 시청자는 군의 부조리함을 어떤 기사보다 생생히 체험하게 되었고, 형제 복지원 사건에서 야만적 군사 독재 정부의 실태에 눈 떴다. 미시적 시각을 통해 시청자가 현대 한국이라는 거시적 환경을 바라볼 실마리를 얻은 셈이다.
'자극적'이라는 비판이 존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방송의 더 큰 힘은 끈질김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김훈 중위의 의문사 사건을 포함해 군 의문사 사건만 7차례에 걸쳐 다뤘다. 세간의 관심이 사라진 후에도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을 여러 차례 보도했고, 다섯 차례에 걸쳐 이태원 살인 사건을 다뤄 사건 해결에도 큰 공헌을 했다. 때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시청자의 방송 해석에 깊숙이 관여하는 진행자의 태도는 이 방송의 끈질김을 아는 이들에게 고도의 공감 작용을 일으켰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보여주는 한국의 오늘은 어둡다. 숱한 미제 사건이 발생하고, 상상하기도 힘든 수준의 극악함이 일상처럼 일어난다. 책에 나온 이들의 바람대로 <그것이 알고 싶다>가 다룰 의제가 없는 시대는 여태 1000회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온 이 방송 PD들의 공통된 바람일 것이다. 그 시대가 설사 오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긴 여정의 기록물로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