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조합원 및 애독자 여러분께,
오늘(9월 24일)은 프레시안 창간 1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4년 전 오늘, '관점 있는 뉴스'를 표방하며 독립 언론의 첫 발걸음을 뗀 프레시안은 2013년 6월 '생명 평화 평등 협동'을 새로운 기치로 내세우며 협동조합 언론으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대부분의 언론 매체가 정치권력에 아부하고 자본 권력에 기생하는 '기레기'로 전락한 이 땅의 척박한 언론 환경 속에서 '품위 있는 독립 언론'으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돈보다 인간' '자본의 이익보다 사람들의 연대'가 앞서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공공적 언론으로 복무하기 위한 지난한 여정이었습니다.
물론 아직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때론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4년간 '우리 사회의 현실을 넓고 깊게 직시하며,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는 초심(初心)만큼은 변치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황우석 사태, 삼성 백혈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문제점 등 정치권력과 자본 권력이 은폐하려는 우리 사회의 진실을 밝히는 데 프레시안이 한몫을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의 결과물입니다.
지난 6월 메르스 사태 때는 정부 방침을 거슬러 전국의 모든 언론 가운데 가장 먼저 메르스 발생 병원들을 공개했습니다. 정보 공개만이 메르스 확산을 막는 최선의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8월부터 연재된 '조선소 잔혹사' 기사에서는 사고를 당하고도 119 신고를 기피하는 조선소의 산업재해 은폐 실상을 고발했습니다. 이 기사를 통해 산재를 당한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나아가 제대로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우리 산업 현장의 어두운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허환주 기자의 이 연재 기사는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8월) 수상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이번 수상은 저 개인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1990년 9월 시작된 이달의 기자상은 제가 기획해서 만든 상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1989년 12월,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경향신문에서 해직된 뒤 1990년 5월부터 1992년 6월까지 기자협회보 편집국장으로 일했습니다. 편집국장으로 일하면서 만든 것이 이달의 기자상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1년 한 번 시상하는 한국기자상이 전부였습니다. 이달의 기자상 시행 25년 만에 저와 함께 일하는 기자가 이 상을 받게 됐다는 것이 제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또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경로 변경'을 준비하는 연구자, 활동가, 언론인의 모임인 '다른 백년'과의 첫 합작 사업이 바로 이 '조선소 잔혹사' 르포 기사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백년'은 동학혁명 이후 지난 120년간 우리가 걸어온 사회 경제적 발전이 지속 불가능한 것이라는 결론과 함께 이제까지와는 다른 발전 경로를 모색하려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을(乙)들, 즉 비정규직과 자영업자, 청년 실업자와 빈곤 노인들의 인간다운 삶의 길을 찾으려 합니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 이들의 삶의 현장에 대한 심층 취재를 기획했고, 그 첫 작품이 '조선소 잔혹사'였습니다. 프레시안과 '다른 백년'의 첫 합작 사업이 '이달의 기자상'을 받게 됐다는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사회적 공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은 2013년 언론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조합원이 1만 명을 넘으면 모든 상업 광고를 없애겠다'고 약속드린 바 있습니다. 현재 조합원은 당초 목표의 4분의 1 정도입니다. 2007년부터 후원해주신 프레시앙들을 합쳐도 아직 5000명이 되지 못합니다. 지난 6월 조합원 배가운동을 통해 400여 분이 참여해 주셨습니다만,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7000개의 인터넷 언론이 있다고 합니다. 프레시안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터넷 언론과는 분명 다른 언론이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어디에 와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공공적 독립 언론'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든든한 '공공적 독립 언론'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적 토대가 있어야 합니다.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실 때는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시민들이 물을 대주신다면 시민과 사회에 봉사하는 언론이 될 것입니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물을 받아 마신다면 정권과 자본에 의지하는 '기레기'가 될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시민으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공공적 독립 언론'이 되고자 합니다. 중동의 전쟁과 유럽 난민 위기, 일본의 재무장 등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생명과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어둠의 시대입니다. 수많은 을(乙)의 비명 속에 평등과 협동이 파괴되는 절망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오기 마련입니다. 프레시안과 함께 생명과 평화, 평등과 협동의 시대를 앞당기지 않으시렵니까? 조합원과 애독자 여러분의 협력과 동참을 기대합니다.
다가오는 추석 연휴 평안히 지내시고 새로운 시대를 향한 노력을 시작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이사장
박인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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