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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북한을 '악마'로 만들었나"

[주간 프레시안 뷰]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봐야"

미국 중앙정보국(CIA)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1951년 이란을 시작으로 과테말라, 쿠바, 칠레 등 미국의 마음에 들지 않는 외국 정부에 대한 전복 공작 및 암살 음모입니다. 그러나 CIA 서울 지국장(1973~75년)을 역임한 도널드 그레그(89)의 행적은 이러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그는 1973년 박정희 정권의 김대중 살해 음모를 무산시켰고,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관이던 1980년에는 전두환 정권의 김대중 사형 집행을 막아냈습니다. 또한 주한 미국 대사 시절(1989~93년)에는 1992년 팀스피리트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시켜 남북대화 진전 등 한반도 평화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팀스피리트 훈련은 1992년 대선을 의식한 한국 내 보수 세력과 미국 네오콘의 합작으로 1993년 재개됐는데, 만일 훈련 중단이 지속됐더라면 이미 오래 전에 한반도 평화가 정착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레그는 공직을 떠난 1993년부터 2009년까지 16년간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을 역임했고, 2014년까지 평양을 여섯 차례 방문해 미국과 북한, 남한과 북한의 상호 교류와 화해에 기여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2월 평양 방문 때에는 6.25 참전 용사인 피트 매클로스키 전 하원의원을 대동해 6.25 당시 인제 부근에서 그와 전투를 벌였던 지영춘 북한군 중장을 찾아내 50여년만의 '개인적 화해'를 성사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만남을 보도한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외교"라는 그레그의 말을 전했습니다. 당시 민간 싱크탱크인 태평양세기연구소(PCI) 회장 자격으로 방북한 그는 평양이 해외투자 유치를 원하고 있음을 확인했으며,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나 남한, 미국 등과 정상적인 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떠오른 2009년 여름, 조 바이든 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젊은 김정은을 '수학여행' 삼아 미국으로 초청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대화와 교류를 통해 서로를 보다 잘 이해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물론 이 제안은 묵살됐죠.

한마디로 그레그는 폭력과 강압으로 다른 나라에 자국의 의지를 강요해온 미국의 전통적 외교방식보다는 화해와 협력에 의한 평화로운 국가 관계를 지향하는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어쩌면 미국 관리로는 예외적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 대사. ⓒ연합뉴스

그레그는 지난해 펴낸 자서전 <역사의 파편들>(지난 5월 한국어판 발간)에서 미국 외교정책의 고질적 문제에 대해 일침을 가했습니다. "우리가 싫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 지도자나 집단을 무조건 '악마화' 하려 드는 경향이 우리를 끊임없이 곤경에 몰아넣는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어 "체제를 제거하여 변화를 강제하려는 전통적인 미국의 접근방식은 이란, 과테말라, 쿠바에서 그랬던 것처럼 더 큰 혼란과 지속적 분쟁만을 초래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그 실례로 베트남, 이라크, 북한을 꼽습니다.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은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토마스 제퍼슨과 미국 헌법을 너무도 존경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호치민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미국이 자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의 독립을 허용한 것처럼 베트남의 독립도 인정해달라는 편지를 6차례나 보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베트남을 공산 중국의 꼭두각시로 오판했고, 또 베트남의 식민종주국 프랑스를 미국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프랑스의 식민 지배 지속을 지원했습니다. 프랑스가 베트민(프랑스 식민지배 시절 결성된 베트남의 공산주의 독립운동단체)에게 결정적으로 패한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까지는 간접적으로, 그 이후에는 직접 개입해 무려 30년간 베트남과 전쟁을 벌입니다. 그 결과는 미국의 패배였습니다. 미국의 젊은이 5만8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천억 달러의 전쟁 비용을 탕진함으로써 미국 경제는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세계 지도국가로서 미국의 위신이 여지없이 추락했습니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중동의 군사강국으로 만들어준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 당시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1990년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은 1차 걸프전을 통해 그를 격퇴했습니다. 하지만 권좌에서 밀어내지는 못했죠.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은 후세인 제거를 위한 2차 걸프전에(2003년) 나섰습니다. 후세인은 테러의 배후세력도 아니었고 핵무기를 가진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미국은 예방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전쟁을 도발했고 후세인을 제거했습니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숙적이었던 이란이 후세인 몰락에 따른 어부지리로 중동지역의 강국으로 부상했고 중동 전역은 전쟁의 불바다가 됐습니다. 지난해 여름 미국은 3차 걸프전에 나섰습니다. 미국의 최대 골칫거리가 된 것이죠.

그레그는 북한에 대해 "미국 정보기관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살아 있는 실패 사례"라고 지적합니다. 북한의 실체와 의도에 대한 오판으로 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2002년 10월 켈리 특사의 방북에 이은 제네바 합의 파기입니다. 이로써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8년 간 동결됐던 북한의 핵개발은 재개됐고, 3차례의 핵실험 등 북한의 핵무기 능력은 비약적으로 증강했습니다. 또한 2005년 9.19공동성명으로 남북한 등 관련 6개국이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지만, 바로 다음 날 미 재무부가 대북 금융제재에 나서면서 사실상 좌절됐습니다. 지난 5일 아세안 지역포럼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한반도 핵 문제는 이란 핵 문제보다 더 일찍 진전을 이뤘어야 했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를 지적한 것입니다. 이란 핵타결보다 10년 전에 합의를 이룬 북핵 해결이 이후 진전되지 못한 것은 바로 미국의 고의적 사보타지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레그는 "한반도의 분단은 끝낼 수 있고 또 반드시 끝내야 하는 비극이다. 그것은 서로 계속하고 있는 '악마화'가 대화로 바뀌고 화해가 이뤄질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악마화'의 다른 이름은 '북한붕괴론'입니다. 미국과 한국의 보수 세력은 냉전이 끝난 바로 그 시점부터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망령에 씌워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을 '악마화' 하다 보니 곧 망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망상을 하는 것입니다. 곧 망할 나라와는 진정성 있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북핵 해결이 지지부진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90년 미 정보기관은 "북한도 (독재자 차우세스쿠가 국민들에게 살해당한) 루마니아처럼 1~2년 내 붕괴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1월 22일,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만난 유튜브 운영자들에게 "시간이 지나면 북한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며 "인터넷이 북한에 침투할 것이고 그러면 잔혹한 정권이 유지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북한붕괴론이 나온 지 25년 후에도 북한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합니다.

남한에서도 북한붕괴론이 주기적으로 제기됐습니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자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은 '고장 난 비행기'라며 "북한은 붕괴에 직면해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해 10월 미국이 북한과 제네바 합의에 이른 속내는 '북한이 3년 내 붕괴할 것'이라는 한국 정보기관의 예측 때문이란 것이 정설입니다. 곧 망할 나라이기 때문에 10년이 걸릴 경수로 제공에 합의해줬다는 것이죠. 1995~1998년의 이른바 '고난의 행군'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살아남았습니다.

두 번째 북한붕괴론이 제기된 것은 2008년 여름 이른바 '김정일 와병설' 때입니다. 그해 8월 14일 이후 김정일이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특히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인 9월 9일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북한붕괴론이 퍼진 것입니다. 9월 하순, 당시 서재진 통일연구원 원장은 "김정일 건강이상설이 발표되면서 통일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고, 이기택 민주평통 수석부의장도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통일에 이제라도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이명박 정부 안팎에서는 '이 기회에 통일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11월 중순 워싱턴 기자간담회에서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통일하는 것이 최후의 궁극 목표"라면서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 붕괴를 철석같이 믿었던 것 같습니다. 2010년 11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비밀 외교 전문에 따르면 2009년 7월,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북한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한미 양국은 (북한 붕괴를) 기다리며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010년 2월에는 천영우 외교부 2차관이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에게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 붕괴하고 있고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면 2,3년 내 정치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모두 헛된 기대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붕괴에 대한 보수 세력의 기대와 희망은 꺾이질 않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2013년 12월 12일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처형이 세 번째 북한붕괴론의 빌미가 됐습니다.

12월 21일 국가정보원 송년 모임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은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며 축배를 들었습니다. 2014년 벽두,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을 터뜨렸고 곧 이어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10일 박 대통령은 통준위 민간위원 집중토론회에서 "통일은 내년에라도 될 수 있으니 여러분이 준비하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8월 18일 <한겨레> 보도). 정부는 만일의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 말을 믿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붕괴론이 10여년만에 기승을 부리면서 남북관계는 엄청나게 후퇴했습니다. 2010년의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에서 최근 비무장지대 내 지뢰 폭발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도발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사드 배치를 받아들여야 할 상황입니다. 사드 1개 포대의 비용은 약 1~2조 원, 남한 전역을 방어하려면 4~8조 원이 든다고 합니다. 올해 우리나라 국방비(37조원)의 약 20%나 되는 천문학적 숫자입니다. 문제는 사드를 배치한다 해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유지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당장 중국이 반발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남한이 대북 지원을 시작한 1995년 이후 2014년까지 대북 지원 총액은 3조2571억 원입니다. 이 가운데 85%가 넘는 2조8500억 원 정도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집행됐습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대북 지원은 계속 줄어 2009년 이후에는 연간 100~200억 원 규모에 불과합니다. 대북 교류와 지원을 대폭 축소한 결과 엄청난 국방비를 써야 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 지원을 '퍼주기'라고 비난하는 보수 세력들에 대해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간 대북 지원은 정부 18억 달러와 민간 6.2억 달러, 총 24.2억 달러로 연 평균 2.4억 달러였다. 이는 서독이 통일 직전까지 동독에 지원했던 연 평균 32억 달러의 13분의 1에 불과하다. 또한 국민 1인당 부담은 연간 5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약소한 대북 지원을 통해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한편 북한에 대한 외교적 주도권을 확보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보수 세력이 북한붕괴론을 맹신하고 '북한 악마화'에 열을 올리는 데는 다른 저의가 있다는 혐의가 짙습니다. 바로 국내정치에서의 효용성입니다. 그동안 보수 세력은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5.24조치를 발표하고, 2012년 대선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을 대선 쟁점으로 제기하는 등 북한 문제를 국내 문제 돌파의 유용한 카드로 이용해 왔습니다. 1992년 가을, 일시 중단됐던 팀스피리트 군사훈련이 전격 재개된 데는 그해 12월 대선에서 북풍 카드를 활용하려는 김영삼 후보 진영의 역할이 컸습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종북 좌파의 집권을 막기 위해' 싸우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북한 악마화'는 보수 세력의 집권 연장에 매우 소중한 카드인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 악마화'는 남북 대결 심화, 나아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주도권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북한 붕괴를 촉진하기 위한 대북압박정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 떠오르는 중국과 이를 포위하려는 미국 및 일본의 군사 대결 속에 한국은 움직일 공간을 잃게 됩니다. 한국의 외교적 주도권이 사라지는 것이죠. 대결로 치닫고 있는 동아시아 정세에서 한국이 외교적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은 대북 화해 협력을 통해 북한에 대한 외교적 레버리지(지렛대)를 갖는 것입니다.

지난 55년 간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음모와 공작을 펼쳐온 미국이 마침내 쿠바와 국교를 정상화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쿠바 관계정상화가 미국의 국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습니다. 반면 남북관계의 진전은 한국의 국익에 어마어마한 의미를 갖습니다.

북한 전문가인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의 다음과 같은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동북아에서 한국의 위상을 결정한다. 북한에 대한 발언권이 지금처럼 없다면 미국도 중국도 한국을 협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 (…) 한반도가 해양과 대륙을 잇는 교량이 되면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만, 대립의 공간이 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 남북관계 개선을 한국이 주도할 때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여지도 사라진다."

한국은 이미 남북관계를 주도할 수 있는 힘과 자원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이 남북관계에 주도권을 가지고 나설 때 한반도 정세에 대한 주도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 첫 걸음은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북한붕괴론이나 '북한 악마화' 같은 헛된 기대를 접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서 북한을 대하는 것입니다. 1999년 미북 관계정상화를 주도한 페리 전 국방장관의 지적대로 "우리가 원하는 북한의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봐야" 합니다.

오는 25일이면 박근혜 정부는 정권의 반환점을 돕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박근혜 정부는 무엇을 이루어 놓았는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전임 정부가 만들어놓은 5.24조치에 막혀 있고,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남북 및 한일 관계의 악화로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으며,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일대일로에 자리를 내주었다는(양기호 성공회대학교 교수) 게 냉정한 평가입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이 각기 국가 이익과 목표를 위해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지금, 한국의 나아갈 방향은 어디인지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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