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11일 재벌 총수 일가를 겨냥해 "미등기 임원도 보수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됐던 대기업 미등기 임원에 대한 보수 공개 법안을 재추진하겠다는 것으로, 박 대통령의 노동 시장 개편에 맞서 재벌 개혁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재벌 총수 중에 별다른 사유 없이 지배 주주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고 미등기 임원으로 고액의 보수를 수령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등기 임원뿐 아니라 미등기 임원도 보수를 공개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재벌 총수 일가를 겨냥해 "자본시장법상 공시 대상이 등기 임원에 한정되다 보니, 실제 오너를 모른다"면서 "회사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업무 지시를 하는 사람을 자본시장법상 공시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상위 보수 3명에 대해 의무적으로 공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원내대표는 "국내 30대 상장사의 임원의 평균 임금은 7억 5000만 원인데, 일반 직원의 평균 임금은 7000만 원으로 임금 격차가 10배가 넘는다"면서 기업 임원의 보수를 제한하는 외국 사례를 언급했다.
이 원내대표는 "미국에서는 구제 금융 지원 대상 기업 임원 보수에 대해서는 소득세 공제 한도를 50만 달러로 하향 조정했다"면서 "스위스에서는 초국적 제약회사인 노바티스의 다니엘 바젤라 전 회장이 퇴직 후에도 6년간 850억 원 정도를 받기로 한 것이 계기가 돼, (임원 고액 보수를 규제한) 일명 '살찐 고양이법'을 만들었다"고 예시했다.
이 원내대표는 "유럽에서는 연봉 50만 유로가 넘는 은행 임원에게 보너스 상한선을 두고 있고, 프랑스는 공기업 사장의 보수가 기업인의 최저 보수의 20배를 초과할 수 없도록 했다"며 "독일은 11개 금융기관들이 자체적으로 보수 상한을 설정했고, 중국은 공기업에 한해 임금 상한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원내대표는 "자본시장법에서 등기 여부와 관련 없이 CEO(최고 경영자), CFO(최고재무책임자) 등 연봉 상위 5개 직책에 대한 보수를 공개해야 한다"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기업 재벌 중심 성장이 아니라 민생 중심 성장이며, 이를 위해 여야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朴 대통령이 제동 걸었던 법안, 재추진한다
현재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규정한 대기업 임원 보수 공개 대상은 연봉 5억 원 이상 재벌 총수와 대기업 최고경영자 등 등기 임원이다.
18대 대선 전인 2012년, 여야는 대기업 임원의 보수 공개를 추진했다.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 등이 추진했던 경제 민주화의 일환이었다. 법안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후인 2013년에 처리됐다. 그러나 미등기 임원은 공개 대상에서 빠졌다. 전경련 등 재계가 미등기 임원에 대한 보수 공개를 격렬하게 반대했고, 이를 받아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4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에서 논의 중인 경제 민주화 법안에) 대선 공약이 아닌 것도 포함돼 있는데 무리한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국회 논의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법 시행을 앞두고 현대제철 정몽구 회장, 오리온 담철곤 회장·이화경 부회장 등이 등기임원에서 미등기임원으로 신분을 바꿔 공개 의무를 피해가는 '꼼수'를 부렸다.
박 대통령이 제동을 걸었던 '경제민주화' 법안을 야당이 재추진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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