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개정안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공학' 앞에 결국 표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 국회에 재부의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6일 새누리당은 당론으로 표결을 거부했다. 집권 여당이 당론으로 본회의 표결을 보이콧 하는 희한한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했지만,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표결이 진행되기 전 일부 의원을 제외하고 대부분 재석 명패를 수령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새누리당 의원들 대다수는 투표장에 없었던 셈이다.
정의화 의장이 투표를 선언한 후 약 55분 간 투표가 진행됐지만 정 의장은 "53조 4항에 따라, 재적 의원 과반수인 150인 이상 의원이 투표를 해야 한다. (그러나) 투표소 명패수를 보면 128인에 그쳐, 재적 의원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판단컨대 더이상 기다려도 재적 의원 과반수를 충족하기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과반수 출석에 미달해서 이 안건에 대한 투표는 성립되지 않았음을 선포한다"고 했다.
한때 새누리당은 명패 받는 것을 거부한데 이어, 감표위원을 맡는 것까지도 거부했다. 정의화 의장이 야당 감표위원만 있는 상태에서 표결을 진행하려 했지만, 이종걸 원내대표 등 야당이 "감표 의원 없이 표결할 수 없다. (새누리당이 거부한다면) 감표위원을 의장이 지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 권은희, 황인자 의원이 감표위원으로 지명됐다.
결국 정두언 의원 등 "투표에 참여하겠다"고 공언한 일부 소신파 외에 새누리당 의원 다수가 '사라진' 자리에서 국회법 개정안 표결이 이뤄졌다. 그러나 결론은 투표 불성립. 투표 시작부터 완료까지 시간은 걸렸지만, 상황은 간단히 끝났다. 정의화 의장이 "표결 참여가 저조하다. 표결에 참여해달라"고 수차례 독려했지만 새누리당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정두언 의원은 표결에 참석했고, 야당에서는 정청래 의원 등이 "표결을 하려 했으나 투표 종료 선언 때문에 투표권을 박탈 당했다"고 항의했다.
새누리당 포함 국회의원 211명 찬성으로 지난 5월 29일 처리됐던 국회법 개정안이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앞에서 재의결에 실패한 것이다. 참고로 국회법 개정안 찬성표를 던졌던 새누리당 의원은 95명이었다.
새누리당이 정정당당하게 찬성, 혹은 반대표를 던지지 않고 투표권을 포기, 헌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정치적 부결'을 이행한 것이어서 '청와대 거수기'라는 비판도 예상된다.
새누리당이 이처럼 입법부의 권한을 포기하고 찬성표, 혹은 반대표를 소신에 따라 던질수 없게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 때문이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 문제를,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와 연계시켰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배경을 밝히며, 새누리당 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고 역설했었다.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책임졌던 유 원내대표가 자신의 거취를 밝혀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유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안 처리와 공무원연금 처리를 연계했다고 비판했던 박 대통령 본인이, 정작 국회법 개정안 거부를 유 원내대표의 거취와 연계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식 '정치공학'이다.
딜레마에 빠진 새누리당은 결국 국회법 개정안 표결을 거부키로 지난달 25일 의원총회에서 결론을 내렸다. 결국 이 법안의 운명은 19대 국회가 끝남과 동시에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장이 또 다시 표결에 부칠 수 있지만, 청와대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일이어서, 그럴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단 야당의 입장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정 의장은 투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의장으로서 참으로 마음이 참담하다", "오늘 이런 (투표 불참) 상황은 초유의 일이다"는 말로 자괴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새누리, '朴 복심' 이정현 의원만 국회법 반대 토론
야당은 이날 찬성 토론을 통해 국회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의원은 "국회법을 통과시킨지 겨우 38일째 되는 날이다. 단군 신화를 보면 동굴에서 쑥, 마늘을 먹고 20일 만에 사람이 됐다고 하는데, 새누리당은 쑥과 마늘도 안 먹었는데 왜 사람이 이렇게 달라졌느냐"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대체 국회법이 뭐가 문제냐. 시행령이 모법의 위임 권한을 넘어서게 될 경우, 시정을 요청하고, 처리하고 (행정부가 국회에) 보고하는 게 문제인가.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는데,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이정도의 법안도 처리 못하고 삼권 분립이 가능하겠느냐"고 했다.
같은 당 진선미 의원은 "국회가 대통령의 부속 기관이 아니라 국민의 직속 기관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가 될지라도, 국민 앞에서는 '소신'의 정치다. 소신의 정치를 해 달라"고 말했다. 진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은 전혀 문제가 없다. 오히려 국회법 개정안이 부결될 경우, 시행령이 법률을 넘어서는 입법의 비정상화가 만연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김제남 의원은 "대통령의 겁박에 국회가 백기투항하는 오욕의 날로 기억되면 안된다. 국회의원으로서, 헌법 기관으로서 소명을 포기 하지 말라"고 새누리당에 요구했다.
새누리당 측의 반대 토론 신청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정현 의원 외에 없었다. 이 의원은 "(시행령이 문제가 됐을 때는) 개별 입법을 통해 (통제) 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 간접적으로 해당 부처에 대한 예산 심의에서도 그렇게 (시행령을 통제) 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이 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과거부터 19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이런 논의가 있었다. 그때마다 위헌 요소가 있고, 위헌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모든 선배 의원들이 이 부분을 끝내 반영을 안했던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때도 그랬고, 지금 19대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이 참석한 회의에서 위헌 요소가 있어서 반영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같은 법안 하나에 대해 야당은 강제성이 있다, 여당은 강제성이 없다. 국회의장은 강제성이 약간 있다고 했다. 이런 법을 국민들에게 넘겨줬을 때 국민들은 이 법의 어느 쪽을 따라야 하나. 이것은 우리가 국민들에게 잘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정의화 국회의장은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말씀을 해줬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정 의장이 "강제성이 약간 있다"고 얘기했다는 이 의원의 발언에 대해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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