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부터 10일까지 지난 이틀간은 K씨(27)에게 지옥 같은 날이었다. 메르스 증상이 의심되는 동생을 데리고 하루 종일 경기도 수원 일대를 뺑뺑이 돌았기 때문이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사는 K씨가 같은 곳에 사는 여자 친구로부터 급하게 전화를 받은 것은 9일 새벽. 여자 친구의 남동생(23)이 이날 새벽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나는 증상이 있어서 걱정이라는 것. K씨나 여자 친구나 곧바로 "숨이 가쁘고 열이 나는" 메르스 증상을 떠올렸다.
물론 남동생은 방역 당국이 공개한 삼성서울병원이나 평택성모병원과 같은 병원에 간 적이 없었다. 또 메르스 확인 환자나 의심 환자를 접촉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K씨는 불안했다. "지역 사회 감염의 가능성은 남아 있잖아요?" 그래서 불안한 마음에 오전 7시에 메르스 핫라인에 전화를 했다. 대답은 이랬다.
"일단 해열제를 먹어 보세요."
급하게 해열제를 구해서 먹었지만 남동생의 열은 여전히 내리지 않았다. K씨는 다시 영통구 보건소에 전화를 했다. 보건소에서는 '(사람이 밀려 있어서) 당장 진료가 어렵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그리고 관내의 한 병원을 소개해줬다. 이 병원에 가서 증상을 얘기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리라는 것.
여기서부터 잘못되었다. 매뉴얼대로라면, 메르스 증상이 나타난다는 시민의 전화를 받으면 의심 환자의 경우에는 자택 격리를 권하고 보건소 의료진이 방문 진료를 해야 한다. 만약 의심 환자가 아니라면, '왜 메르스 감염 가능성이 낮은지'를 설명해줘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보건소는 메르스 증상을 의심하는 시민에게 직접 병원을 찾아가보라고 권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더 가관이다.
메르스 증상이라고 해도 다짜고짜 응급실로
K씨는 아픈 남동생을 데리고 인근의 종합 병원인 A대학 병원을 방문했다. 이 병원은 응급실 앞쪽에 메르스 의심 환자 진료를 위한 진료소를 만들어 놓았다. K씨는 이때부터 당황했다.
"동생이 메르스 증상과 흡사하다고 해도 무작정 응급실로 끌고 들어가더라고요. 그리고 응급실에서 X-레이 검사와 피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K씨는 납득이 안 되었다. 자신이 아는 상식으로는 만약에 동생이 메르스 환자라면 열이 나는 증상과 동시에 바이러스를 퍼트릴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굳이 응급실 밖에 진료소를 만들어 놓고서도, 가족의 하소연에도 응급실로 데리고 들어가서 바이러스를 전파할 조건을 만들어 준 것.
"비싼 격리 병동 입원하면, 메르스 검사 해줄게!"
한참 후에 결과가 나왔다.
"동생이 이틀 사이에 급속도로 폐렴이 진행되었다며 입원 절차를 밟고 있다더군요. 메르스 검사는 여전히 얘기가 없습니다."
병원에서 알아서 해주겠지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K씨는 재차 병원에 메르스 감염 가능성은 없는 거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갑작스럽게 의사가 와서 응급실 퇴원을 통보했다. 입원 수속을 밟고 있다고 통지를 받은 지 한 시간쯤 뒤였다. 의사의 설명은 이랬다.
"메르스 위험이 있으면 바로 격리했겠지 이렇게 뒀겠어요? 퇴원하세요."
"그럼, 메르스 아닌 걸로 알고 약 먹으면서 일상생활을 하면 되는 건가요?"
"…."
"대답을 해주세요."
"내가 언제 메르스가 아니라고 했습니까?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질병관리본부랑 연락해서 메르스 진단이 가능한지 알아보겠습니다."
또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남동생은 계속해서 여러 사람이 오가는 응급실에서 열이 난 채 누워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의사가 와서 하는 말.
"퇴원을 하든지 격리 병동에 입원을 하세요? 물론 격리 병동은 자기 부담이고요."
"메르스 위험은 없다면서요? 그냥 급성 폐렴이면 일반 병동에 입원하면 안 되나요?"
"병원 방침상 (남동생 같은) 이런 환자의 일반 병동 입원은 안 됩니다."
"왜요?"
"방침이 그래요. 격리 병동 입원할 거예요? 아니면 퇴원할 거예요?"
그리고 K씨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격리 병동 입원하면 메르스 검사도 해줄게요."
결국 K씨는 10만 원이 훌쩍 넘는 격리실 입원비가 부담되어 수액이랑 항생제를 맞고서, 약 처방 후 퇴원했다.
"성남 시민 아니라서" vs. "고위험군 아니라서"
K씨의 메르스 뺑뺑이는 10일도 계속됐다.
"수소문을 해보니 성남시 분당구의 보건소는 고위험군이 아니어도 메르스 진단을 해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픈 동생을 데리고 성남시 분당구의 보건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고 K씨와 남동생은 거부됐다. 성남 시민이 아니라고 검사를 못해주겠다는 것. 그리고 다시 관할 보건소인 수원시 영통구 보건소로 가라고 권했다.
어쩔 수 없이 K씨는 다시 영통구 보건소로 갔다.
"A대학 병원과 통화를 하더니 고위험군이 아니라서 메르스 진단을 못해준다고 하더라고요.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비싼) 격리 병실에 입원하면 메르스 진단을 해주겠다는 의사의 말이 맴돌았죠."
다행히 10일 오후 5시 현재 동생의 열은 내렸다. 현재로서는 메르스보다는 급성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
K씨의 마지막 하소연이 귓가를 계속 맴돈다.
"동생의 열이 내려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동생에 메르스에 감염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메르스에 진짜 감염되고서도 저희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정말로 불안합니다. 또 화가 납니다. 제가 분통이 터지는 게 이상한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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