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독자라면 2012년 초 프레시안이 야심 차게 진행한 '광없페' 캠페인을 기억할지 모른다. 당시 올라왔던 11편의 글 링크를 남겨둔다. 프레시안이 얼마 전 검색엔진을 개편해 창간 이래 처음으로 네이버 없이도 제대로 검색이 가능해졌다. 애용해달라.
매체와 광고의 관계에 대한 프레시안의 고민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독자 항의를 받고 마지못해 하는 고민은 더욱 아니다.
광없페는 2007년 시작됐다. 한미FTA의 문제점을 파헤친 기사 500건에 대한 답변으로 노무현 정부는 역으로 FTA 홍보 광고를 제안했다. 프레시안은 그 광고를 싣지 않았다. 대신 매체 후원운동을 시작했다. 후원 독자에겐 광고를 보여주지 않았다. “기자들을 굶길 순 있어도 울릴 순 없다”라는 호소가 그때 나왔다. 지금은 배가 고파서 울음이 나온다.
비단 FTA 광고 하나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오죽하면 '혐오성 광고 그만 깔고 차라리 대기업 광고를 수주해라'라는 역설적인 조언까지 나올까.
대기업 광고를 받으려면 꼬리를 흔들어줘야 한다.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기사까지 정성껏 쓴 양 포장해 제공해야 한다는 말이다. 프레시안의 현재 대기업 광고 수주가 제로인 것은 아니나, 대기업 광고를 프레시안의 활로로 삼아 여기 좀 더 보시라고 먼저 꼬리를 흔들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럴 꼬리가 남아 있다면 차라리 조합원과 후원회원에게 흔들겠다. 프레시안이 너무 순진한가? 인정한다.
2년 전 협동조합 전환을 선언하면서 내세웠던 것 중 하나가 다시 '광없페'였다. 조합원 1만 명이 되면 혐오성 광고를 모두에게서 걷겠다고 공약도 했다. 사실 저 구호가 영 불편했다. IT에 조금만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다양한 광고 회피 수단을 알고 있을 텐데. 비웃음이나 사지 않을까.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에게 배타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광없페'는 가장 핵심적이고 직관적인 배타적 서비스다. 그리 뇌까려도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서비스'의 개념을 넘어 아직 전달하지 않은 의미를 구체화해야 했다.
'광없페'는 프레시안의 서비스가 아닌 비전이다.
광고는 독자에게만 불편을 주는 게 아니다. 엄중하고 진지한 자신의 글에 이른바 'B급 광고'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으면 기자도 의욕을 상실한다. 그렇게 벌어들이는 광고비가 없으면 물주 없는 프레시안은 월급 줄 돈이 없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과 별개다.
프레시안협동조합 조합원과 후원회원들이 본인만 광고 없이 기사를 보기 위해 월 1만 원을 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광고 없는 페이지에 대한 프레시안의 비전, 즉 꼬리를 흔드는 일이라든지 페이지뷰를 올리기 위해 기사에 무리수를 두는 일 없이 한국 사회의 중요한 현상을 독립된 관점으로 기록하고자 하는 노력에 먼저 손 걷고 돕고 나선 이들이다.
아직 조합원 2500명도 안 되는데 어느 세월에 1만 명? 반대로 생각해보자. 2년 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 전환을 선언했을 때 모여든 이들이 없었다면 이번 메르스 확산 정국에서 덩치 큰 신문들을 제치고 주목을 받았던 프레시안의 보도가 나올 수 있었을까. 메르스 환자가 거쳐간 병원의 이름을 앞서 공개하고,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 당국에 전체 명단 공개를 촉구했던 프레시안의 논조는 재정 독립성 없이 지속되지 않는다.
당장 광고부터 내릴 수는 없을까? 임금 감축으로 생활고에 지친 직원조합원이 떠나가거나, 구조조정으로 사람을 잘라내며 쓰는 돈을 줄이게 될 것이다. 이른바 어떤 '진보언론'도 피해가지 못했던 길이다. 프레시안은 대신 지금의 비웃음과 비난을 감수하며 소수의 응원이 보내는 힘을 받아 천천히 전진하는 길을 택했다. 앞으로는 굶지도, 울지도 않겠다. 그 길이 편하다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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