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진실, 정부가 감춘다면 시민이 직접 밝히겠다."
광장에서 일렁이는 촛불 앞에서 다짐한 약속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는 9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끝까지 진실 규명! 시행령 강행처리 규탄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의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음 날이다. 이날 문화제에는 세월호 유가족 21명을 포함해 시민 500여 명이 참가했다.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폐기하라는 게 참가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었다. 이는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만들어진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특조위)의 주장과도 겹친다. 정부가 마련한 시행령대로라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는 불가능하다는 것. 세월호 특조위에서 공무원이 중요한 역할을 맡게끔 돼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정부에게 있는데, 현직 공무원이 정부를 상대로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느냐는 것.
김혜진 4·16연대 운영위원이 "사회적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시민 스스로 독립적인 진실규명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그는 "세월호 특조위 조사의 한계가 분명하다"라며 "우리와 세월호 특조위는 정부가 강행처리한 시행령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세월호 희생자 고(故) 김수진 양의 아버지 김종기 씨도 무대에 섰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 지금의 시행령을 폐기해 달라"고 호소했다. 김 씨가 말한 기회란, 대통령의 결정을 뜻한다. 시행령은 대통령이 서명해야 공포된다. 따라서 대통령이 서명을 거부하면, 시행령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김 씨는 "아이들이 죽은 이유를 알고 싶다고,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시행령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면서) 삭발도 하고, 빗속에서 도보행진도 해봤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물 대포와 캡사이신이었다"라며 절규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왜 이렇게까지 모질고 질기게 진실 규명을 방해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혜진 위원의 말과도 통한다. 김 위원은 "정부는 세월호 특조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우리는 정부의 행동을 통해 정부가 진실을 감추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4·16 가족협의회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박주민 변호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감추려는 자가 범인이다."
이날 문화제에는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만 참가한 게 아니다. 입시 준비에 바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도 눈에 띄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모 군은 세월호에 탔던 단원고 학생들과 나이가 같다. 그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고3"이라는 노란 색 깃발을 직접 제작해서 들고 나왔다. 소속 단체는 없다. 매주 열리는 촛불문화제에 다 참석할 수는 없지만,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데 최대한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으로 혼자 왔다고 했다.
전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희생자 가족 및 실종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으로 시작한 이날 문화제는, 참가자와 유가족이 포옹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다음 주말 촛불문화제는 광주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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