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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 있어야 합니다"

[함께 사는 길] 벌교여자고등학교 정홍윤 선생님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 자리한 벌교여자고등학교는 전교생이 채 1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학교다. 하지만 이 학교는 특별한 뭔가가 있다. 아침 등교 후 자습 대신 학생들은 선생님과 함께 학교를 산책하고 덜 깬 잠을 깬다. 학교 한쪽에 텃밭을 조성, 농사를 지어 직접 기른 채소로 점심을 먹기도 한다. 점심시간은 최대한 늘리고 보충 수업도 야간 자율 학습도 희망자 중심으로 진행한다.

대신 우리 지역에 어떤 생물들이 사는지 조사하고 배운다. 고3이라고 예외는 없다. 대학 입시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먼저라는 학교 안에서 학생과 선생님은 행복한 꿈을 꾼다. 혹자는 공부는 언제 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도 더 잘해요. 그리고 이 아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그 누구보다 더 잘 살걸요?"라며 정홍윤 선생님은 활짝 웃는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로 바꾸자

고흥보성환경연합 회원인 정홍윤 선생님은 벌교여자고등학교 문학 선생님이다. 교단에 선 지 벌써 20년. 정 선생님은 3년 전 일을 내고야 말았다. 전남교육청에 벌교여자고등학교의 무지개학교 지정 신청을 한 것이다. 교단을 떠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서 정책실장을 하고 학교로 돌아온 직후였다. 사실 그에게 학교는 행복한 공간이 아니었다.

"교사가 되고 초기에 많이 힘들었어요. 한번은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교육을 했더니 위에서 불러서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억압적인 문화와 위에서 내려오는 교육들이 제 가치관과 맞지 않았어요. 교사를 그만둘까 고민을 참 많이 했죠."

교단을 떠나 전교조에서 교육 운동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자율성과 다양성을 내세운 혁신 학교가 등장했고 교단으로 돌아가 학교를 바꿔야겠다 생각을 한 것이다. 정 선생님의 무지개학교 지정 신청 제안에 대해 다른 선생님들도 흔쾌히 찬성했다.

▲ 정홍윤 선생님. ⓒ함께사는길(이성수)

2013년 무지개시범학교로 지정된 후 정 선생님은 바쁘게 보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다. "수능 문제 푸는 것이야 몇 시간이면 가르치지만 살아있는 교육은 이 시기가 아니면 평생 못 배우잖아요"라는 정 선생님은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가르쳐주고 싶어 학교 안에 텃밭을 만들고 함께 농사를 지으며 텃밭 교육을 시작했다.

"시골에 무슨 텃밭이냐고 할 수 있는데 농사에 대해 잘 몰라요. 농사를 짓는 부모님들이 계시지만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일을 안 시켜요."

아이들이 텃밭에서 직접 기른 작물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한 '채식데이'에 급식으로 사용된다.

적어도 자신들이 사는 지역의 환경과 자연 생태는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환경 동아리를 만들고 지역 환경 단체인 고흥보성환경연합과 함께 갯벌과 강을 찾아가 생물종 조사, 수질 및 수온 조사, 철새 탐조 등 생태 교육을 진행했다. 사람의 학문인 인문학을 가르치기 위해 지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와 외부에서 활동하는 명사를 번갈아 초청해 아이들에게 인문학 강연도 열었다.

2014년 무지개학교로 정식 지정되면서 그는 더 탄력을 받았다. 고흥보성환경연합과 생태·환경 교육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면서 더 체계적인 생태 환경 교육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에는 전남교육청의 후원을 받아 탈핵 교육도 진행했다. 2013년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의 원자력 공모전에 시도교육청 후원 논란이 벌어졌을 당시 이미 공모전에 학생들이 지원을 했고 교육감상을 주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철회가 쉽지 않자 지역 환경 단체와 교육 단체는 이미 진행된 공모전은 진행을 하되, 대신 아이들에게 탈핵 교육을 실시해줄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보듯 다음 세대 아이들은 생선을 먹지 못할 수도 있어요. 생선맛이 나는 양갱만 먹는 <설국열차>와 같은 상황이 될 수 있어요. 우리 어른들의 원죄죠. 아이들의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을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학교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탈핵 교육을 해야 합니다."

정 선생님은 올해는 지난해 탈핵 교육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토대로 탈핵 자료집도 손을 보고 더 체계적으로 교육을 진행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공동체 삶을 준비하는 교육

그가 학교를 바꾸고 싶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딸이 둘인데 둘 다 대안 학교를 다녀요. 학교를 혁신 학교로 바꾸게 된 계기도 딸들 때문이에요. 내 딸들은 대안 학교에서 행복하게 보내는데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입시에 찌들려 있는 걸 내 스스로 용납 못하겠더라고요. 더군다나 교육 운동한다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되잖아요. 진짜 내 아이가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혁신 학교로 지정되고 달라진 학교에 두 딸도 다니고 싶었지만 한 학년이 한 학급으로 구성된 작은 학교다 보니 아빠가 딸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 탓에 실현되지는 못했다. 대신에 그는 딸들에게 학교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가 구상한 교육안을 보여주며 의견을 구한다. 딸들이 좋다고 하면 그 교육안은 통과다.

그는 입시 위주의 교육보다는 학생들이 공동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교육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인문학적 가치를 밑바탕으로 해서 생태와 환경 교육을 진행하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공동체적 삶을 준비하는 것이 목표다.

"대학 진학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아이들이 어떤 생각과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이 사회는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어요. 이러한 교육들로 아이들이 대안적인 삶을 준비한다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해 공동체나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저런 교육들로 아이들이 금방 바뀌지는 않았다. 정규 교과로 편성된 수업들도 아니고 처음 하는 교육들이라 아이들은 시큰둥했다.

"모든 교육이 그렇듯 기다림이 있어야 해요. 단 한 순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거든요.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줬을 때 아이들은 변화하고 또 그걸 통해 또 다른 미래를 꿈꿀 수 있죠."

그의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고 한 해가 지나면서 아이들은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집에서 씨앗을 가져와 심는 아이들도 있고 처음엔 풀만 나온다고 불평하던 채식데이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받아들였어요. 우리 학교 아이들은 수학여행과 소풍 대신 움직이는 교실, 통합 기행을 떠나요. 학생들 스스로 코스와 숙소를 정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참 잘해요. 한 달에 한 번 전교생들이 다 모여 회의를 하는데 이번에는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노란 리본 만들기와 거리 행진, 영화 <다이빙벨> 관람 등을 하기로 결정했대요. 어른들이 자기들 가치관에 갇혀 못 기다려주는 것뿐이지 기다려주면 기대 이상으로 잘해요."

학교가 변하고 아이들이 변하자 학부모들의 참여도 늘어났다. 한 달에 한 번 인문학 강의가 열리는 날에는 학부모들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학교를 찾는다. 동아리축제가 열리면 학생과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이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함께 1박 2일을 보내기도 한다.

"예전에 학교 운동회는 동네잔치였어요. 학교는 지역 문화의 중심이었어요. 적어도 그 문화를 다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된다면 작은 학교라도 마을에 존재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함께사는길

인문학 학교를 꿈꾸며

정 선생님에게도 고민이 있을까.

"시골이다 보니 결손가정이 많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이 많아요. 될 수 있으면 경제적으로 부담을 많이 안 지우려고 하는데도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요."

최근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무상 급식 철회는 그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명칭부터가 틀렸어요. 무상 급식이 아니라 의무 급식이죠.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를 마치 시혜를 베풀 듯 얘기하면 안 되죠. 역대 역사적 사건을 놓고 봤을 때 먹을 걸 갖고 장난치는 정권은 제대로 유지되지 못했어요. 동학혁명도 조병갑이 먹을 것으로 장난쳐서 일어난 것 아닙니까. 아이들 먹을 것을 갖고 장난치는 건 용납할 수 없죠."

운동장 한쪽에 텃밭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올해는 학부모들이 자기들 텃밭도 만들어 달라고 해 학생 텃밭, 교직원 텃밭 옆으로 학부모 텃밭을 하나 더 조성했다. 선생님과 부모님과 함께하는 텃밭 교육에서 아이들은 또 무엇을 배우게 될까.

지금 그에게 학교라는 공간은 참으로 행복하다. "최근 들어 교사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소중한 가치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해요. 저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20~25년 근무를 했는데 요즘에는 육체적으로 힘이 들지만 이런 교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고 해요"라며 웃는다.

그는 꿈 하나가 생겼다. 이 지역에 인문학 학교를 만들고 싶다.

"방과 후 학교 형식으로 함께 책을 읽고 인문학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아내에 이어 두 딸까지 그 꿈에 가세해 인문학 학교는 가족의 꿈이 되었다. 가족들은 벌써 집을 짓고 1층은 서재로 만들어 놨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북카페는 되지 않겠느냐며 정 선생님이 웃는다.

어느 것이 되든 상관은 없을 것이다. 어떤 공간이든 아이들이 더 나은 사회를 준비하고 꿈꿀 수 있도록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는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선생님일 것이다.

월간 <함께사는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 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 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 잡지입니다. (☞바로가기 : <함께사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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