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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주꾸미, 진짜 맛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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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주꾸미, 진짜 맛은 어디에…

[함께 사는 길] 가로림만에 봄바람 불면

날을 잘못 잡았다. 바다를 아는 이였으면 간밤 초승달을 봤을 때 이미 알아봤을 터. 바다는 항상 어디든 그곳에 있을 것으로 생각한 오만한 '도시 것'에게 현지인은 밀물이 낮은 조금 때는 잡히는 것도 별로 없고 어민들도 출항을 포기하고 쉰다며 핀잔 섞인 탄식을 전한다. 이왕 왔으니, 연포항이나 가보라는 말에 가로림만을 따라 서해 바다로 나간다.

감태 가고 주꾸미 오고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가로림만엔 감태 말리기가 한창이다. 감태는 미역과의 식물로 바닷속에 잠겨 있다가 썰물 때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보통 12월에서 3월까지 채취하는데, 사창리 김 할아버지와 주민들은 막바지 감태 말리기 작업에 여념이 없다. 마을 젊은이들이 바닷물이 빠져나간 틈에 펄 밭에 들어가 감태를 채취해오면 어르신들은 감태를 깨끗이 씻어 발에 올려 말린다. 말린 감태는 약한 불에 살짝 구워 김처럼 밥에 싸먹는데 감태 특유의 향이 입안 가득 풍긴다. 주민들이야 예전부터 겨울철 반찬으로 먹었지만, 요사이 미네랄 등 영양분이 풍부하단 이야기가 방송에 나오고 난 후 찾는 이들이 많아졌고 용돈 벌이도 된다고 활짝 웃는다. 감태는 갯벌이 깨끗해야 나오는 식물이라며 자랑도 잊지 않는다.

▲ 봄바람 타고 출항하는 어선. ⓒ함께사는길(이성수)

감태 작업장을 뒤로하고 구불구불 해안길을 따라 더 달려 태안군 연포항에 멈췄다. 막 바다에서 돌아온 배들로 항구는 제법 시끌벅적하다. 아침 일찍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온 어민들은 다행히 빈손이 아니다. 도다리며 간재미, 주꾸미 등 서해에서 봄을 건져 왔다.

가로림만과 태안반도 바다의 봄을 알리는 것은 단연 주꾸미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주꾸미의 반 이상을 충남에서 건져 올린다. 주꾸미는 바다 밑 펄 바닥에서 주로 생활하며 작은 게나 조개, 새우 등을 먹고산다. 가로림만과 태안반도는 봄이 되어 수온이 오르면 새우들이 번식하기 시작하는데, 주꾸미는 이를 먹기 위해 연안 가까이 올라온다. 또 서해안에는 피뿔고둥이 산다. 3월부터 산란을 시작하는 주꾸미는 우묵한 곳이나 고둥에 산란을 하는데 입이 큰 피뿔고둥은 주꾸미가 알을 낳거나 숨기에 최적의 장소다. 어민들은 이러한 습성을 이용해 빈 소라방으로 주꾸미를 잡기도 한다. 빈 고둥껍데기를 바다에 가라앉히고 주꾸미가 들어오길 기다렸다가 끌어올리는 것이다.

▲ 바닷물 빠져나간 가로림만. 감태가 갯벌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 겨울이 가기 전 감태 작업에 한창이다. ⓒ함께사는길(이성수)

ⓒ함께사는길(이성수)

사실 주꾸미는 봄철에만 잡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봄철 주꾸미를 최고로 치는 이유는 산란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어류는 산란기를 앞두고 살이 제일 오르고 맛도 영양가도 최고로 친다. 특히 주꾸미 머리에는 쌀알 모양의 알을 품고 있는데, 이를 쪄서 먹으면 별미다.

간혹 주꾸미와 낙지를 헷갈려 크기가 작은 주꾸미를 낙지 새끼로 혼동하기도 한다. 어민들에게 타박 받지 않으려면 일단 다리를 찬찬히 살펴보라. 주꾸미는 다리 8개가 모두 짧지만, 낙지는 다리 2개가 6개보다 길다. 낙지에 비해 몸집도 작고 다리도 짧아서 그런지 예전에 주꾸미는 낙지에 밀려 천덕꾸러기 신세였다고 한다. 낙지는 임금과 양반들 밥상에 올라가는 귀한 몸이었고 주꾸미는 서민들 차지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주꾸미가 맛이나 영양가 면에서 낙지에 밀리는 것은 아니다. 타우린 함량은 낙지보다 두 배나 많다. 이러한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주꾸미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덩달아 몸값도 높아졌다. 참 세상 두고 볼 일이다.

갯벌이 살아야 바다가 산다

하지만 주꾸미에게 이런 몸값은 그리 달갑지 않다. 바다에서는 벌써 주꾸미 수확량이 예년만 못하다고 아우성이다. 해걸이(한해는 결실이 많고, 다음해는 적은 것)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래도 그 수가 너무 적다고 어민들은 토로한다. 실제로 바다에서 주꾸미는 해마다 증감 차이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그 수가 크게 줄었다. 우리 연안에서 잡힌 주꾸미는 2007년 6828톤(t)에서 2012년에는 2340톤으로 5년 사이 3분의 1로 줄었다. 어떤 이는 싹쓸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주꾸미 몸값이 높아지자 어민들이 저인망으로 바다 바닥을 훑어버리는 불법어로가 성행하고 있고, 그물코를 줄여 1~2센티미터(cm) 크기의 치어들마저 포획해 버린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주꾸미 낚시 때문이라고 한다. 외지인들이 배를 빌려 사시사철 때를 가리지 않고 주꾸미 낚시를 하는데 어린 주꾸미까지 잡아간다는 것이다. 작은 양동이에 손가락만 한 주꾸미를 100마리나 잡았다고 자랑하는 이도 봤다며 혀를 찬다. 일부 어민들이 나서 주꾸미 보호를 위해 꽃게처럼 금어기를 정하자는 움직임도 있지만 당장의 이익과 재미 앞에 주꾸미 금어기 지정은 언제가 될지 의문이다.


서식지 변화도 무시하지 못한다. 고창·영광군 앞바다는 한때 주꾸미 주요 생산지 중 하나였지만 한빛원전 5, 6호기가 들어선 후 주꾸미가 사라졌다고 현지 어민들은 토로한다. 갯벌면적 감소도 문제다. 새만금 갯벌이 방조제에 막히면서 인근 바다에서 주꾸미 어획량이 줄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매년 어린 주꾸미를 군산과 부안 앞바다에 방류하고 있지만,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다. 갯벌은 주꾸미 등 바다생물의 먹이공급원이자 산란장이다. 갯벌을 매립하거나 방조제 등으로 막는 일은 바다 생물들에겐 곧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 상단은 주꾸미, 하단은 왼쪽부터 간자미·바지락·도다리 순. ⓒ함께사는길(이성수)

갯벌을 지키는 일이 곧 바다를 살리고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어민들은 기름유출사고와 조력발전소 건설 위기로부터 가로림만을 지켜냈다. 가로림만을 둔 태안과 서산 바다는 아직 주꾸미들에겐 살만한 곳이다.

밥상에도 봄이 온다

연포항 위판장에서는 잡아온 주꾸미를 전국으로 보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제 곧 도시민들의 밥상에도 주꾸미가 오를 것이다. "농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음식만 이야기하는 것은 음식 포르노다." 국제슬로우푸드협회 카를로 회장의 말이다. 이 봄 주꾸미 맛만 즐기지 말고 그 주꾸미를 키운 바다에 대해, 갯벌에 대해 생각해보자. 주꾸미의 진짜 맛이 거기에 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주꾸미 볶음

양념장 만들기
고추장 2큰술, 고춧가루 2큰술, 조청 1큰술, 설탕 2큰술, 생강청 1큰술, 청주 2큰술, 후추 1/2작은 술, 마늘 1/2 작은술, 참기름 조금, 매실청 1큰술, 표고가루 1큰술

레시피
① 주꾸미 머리를 뒤집어 내장을 제거하며 손질한다.
② 밀가루를 넣어 박박 문질러 발판에 남아 있는 펄을 제거한 후 물로 깨끗이 씻는다.
③ 청주 2스푼과 파를 넣고 끓인 물에 주꾸미를 넣고 살짝 데친다. 이때 주꾸미를 한꺼번에 넣지 말고 3~4마리씩 나눠서 데치고 다리가 오므라질 때 재빨리 꺼낸다.
④ 주꾸미는 알맞은 크기로 자르고 눈과 먹물통은 제거한다.
⑤ 물기를 제거한 주꾸미에 준비해둔 양념장을 넣고 버무린다. 20분 정도 재워두면 간이 밴다.
⑥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넣고 대파와 양파를 넣고 볶다가 주꾸미를 넣고 볶는다. 취향에 따라 냉이와 달래, 방풍나물, 취나물 등 봄나물을 넣으면 더 향긋하다. 냉이와 취나물은 살짝 데친 후에 볶는다.
⑦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약간 넣고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맞춘다.

▲ 요리시연과 레시피는 자연과 생명을 생각하는 친환경 음식점 '에코밥상'이 도움 주셨습니다. ⓒ이성수

*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가기 :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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