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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

[살림이야기] '대안가정운동본부'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김명희 씨

어떤 이유로든 아이는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 모든 아이가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사랑으로 커야 한다는 것. 우리 모두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현실은 그다지 녹록지 않다. 이 간단하고도 어려운 명제를 20년 넘게 실천해 온 김명희 씨를 만났다.

'집에서 아이들 몇 명을 키운다면, 잘 키울 수 있을 텐데…'

김명희 씨는 1988년부터 5년 동안 아동양육시설에서 보육사로 일했다. 처음엔 1년만 해 보자 했는데, 금세 아이들과 함께하는 데 빠져들었다. 하지만 물리적 어려움이 너무 컸다. 한 달에 하루 쉬면서, 그마저도 원장 눈치를 봐야 했다. 쉬는 날을 "외박 나간다"고 불렀는데, 외박 나가는 엄마가 어디 있느냐는 논리였다. 열악한 노동 환경 때문에 일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보따리 싸서 나가는 사람도 꽤 있었다.

선생님 한 명이 열댓 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구조적 한계도 그를 힘들게 했다. "아이들을 공평하게 대하는 모든 판단 기준이 ‘양’이었어요. 아이마다 각각 필요한 것도, 원하는 것도 다른데 그런 건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똑같이 해 줘야 하는 거예요." 정서적 친밀감이 좀 더 필요한 아이를 보살피거나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공부를 좀 더 봐주면, "누구만 예뻐한다"고 말이 나왔다. 집에서 아이들 몇 명을 키운다면, 아이들 각자의 특징에 맞게 잘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울증을 갖고 보육사를 그만뒀다. "어디든 사람은 갇혀 있으면 병들게 되어 있어요. 특히 시설에서 매일매일 지지고 볶으면서 외부와 단절돼 있으면 더욱 그렇죠." 하지만 다른 일을 하면서도 마음은 계속 아이들에게 남아 있었다. "내 살려고 애들 팽개치고 도망 나왔다는 죄책감이 있었어요. 그 부채감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죠."

▲ 대구에서 만난 김명희 씨는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눈과 쾌활한 목소리가 기분 좋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밝은 에너지로 지금까지 대안가정운동을 해 왔을 것이다. ⓒ살림이야기(이선미)


'해뜨는집'에서 여섯 아이와 함께


그런 김명희 씨에게 친구들은 "선생님이 아이들 직접 키워 보세요. 우리가 도와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그가 있던 시설에 자원봉사를 오던 경북대학교 사회복지시설 연구회 학생들로, 현재 우리복지시민연합이라는 시민단체로 탈바꿈하여 여전히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 '동지'들이다. 친구들이 1년 동안 모은 돈으로 사글셋집을 하나 얻어 1994년 대안가정 '해뜨는집'이 시작됐다.

'해뜨는집'을 시작하면서 친구들은 김명희 씨의 미래를 걱정했다고 한다. "선생님, 결혼 안 하실 거예요? 선생님 인생은 어떻게 돼요? 언제까지 이게 지속될 수 있을까요?" 누구라도 할 법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그냥 이렇게 살 거 같아. 너희들은 내가 뭐 먹고살지 고민할 필요 없어. 너희가 할 수 있을 만큼만 고민해. 나머지는 내 몫이니까." 뭐든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친구들은 그를 '한다걸'이라고 불렀는데, 별명처럼 거침없이 나아갔다.

'해뜨는집'에서 아이들 6명을 키웠고, 오래 산 아이는 8년 동안 같이 살았다. 결혼도 했다. 남편 역시 김명희 씨가 일하던 시설에서 자원봉사하던 대학생 출신으로, 우리복지시민연합 은재식 사무처장이다. 그러면서 '해뜨는집'은 자연스럽게 그의 집이 됐다.

가정위탁사업과 함께 아동그룹홈 운영

'해뜨는집'을 운영하면서 대안가정의 활동 영역을 좀 더 넓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 준비 끝에 2002년 대안가정운동본부를 설립했다. 여기서는 아동을 위한 입양가정·위탁가정·그룹홈을 모두 '대안가정'이라고 부른다. "'위탁'이라는 말이 너무 거슬리는 거예요. 그래서 좋은 말을 찾다가 대안학교의 '대안'은 어떨까 싶어 쓰기 시작했죠."

정부에서 가정위탁지원센터를 만들기 전부터 가정위탁사업을 주로 했다. 가정위탁은 일반 가정에서 일정 기간 동안 친부모의 역할을 대신해 아이를 보호·양육하여 친가정 복귀를 돕는 것이다. "부부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가정이 기본 조건이었어요. 기존 아이와는 나이 차가 좀 있는 게 좋아요. 그러면 아이들이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지 않거든요."

하지만 가정위탁사업은 지속하기 어려웠다. 위탁된 아이들은 친부모의 형편이 단기간에 좋아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위탁기간은 점점 늘어나고, 대안가정에 부담이 됐다. 대안부모가 아이와 유대관계를 끊지 못해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았다. 법적으로 친권은 부모에게 있고 양육은 대안가정에서 하는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가 생겼다. 결국 2004년 아동그룹홈을 시작하면서 가정위탁사업은 잠정 중단한 상태다.

현재 대안가정운동본부에서는 남자아이들의 그룹홈인 '해맑은아이들의집'과 여자아이들의 그룹홈인 '해맑은친구들의집'을 운영하고 있다. 아동그룹홈은 사회복지사 2명이 7명 내외의 아이들을 돌보며 함께 생활하는 공동생활가정으로, 위탁기간이 끝났지만 친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거나 장기 보호가 필요한 아이 등이 지낸다.

현재 아동그룹홈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머물 수 있는데, 김명희 씨는 아이들이 직업을 구할 때까지 지낼 수 있도록 자립관을 지을 계획이라고 한다. 아직 집도 없고 땅도 없이 막연한 구상 단계지만, 해뜨는집도 그랬듯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을 줄 믿는다.

▲ 지난해 뮤지컬 '해맑은아이들의 Sound of Music' 공연 모습. 김명희 씨가 마리아 역을 맡아 아이들과 '도레미송'을 불렀다. ⓒ대안가정운동본부

내가 낳아야만 내 자식인가요


어떻게 지금까지 이 일을 계속해 왔는지 놀랍기만 했다. 무엇이 그를 이끌었느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딸 이야기를 꺼냈다. 올해 대학생이 된 딸은 생후 4개월 때 '해뜨는집'으로 와, 그가 입양했다. "우리 딸이 정말 너무 예쁜 아이였어요. 어려울 때야 당연히 있었지만, 나는 우리 딸을 만난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어요. 뭐든 다 할 수 있는 힘이 났죠."

결혼 후 출산하지 않고 두 아이를 입양한 그는 가족을 구성하는 방법은 결혼·출산·입양이라며, 내가 낳아야만 내 자식이라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아들은 오히려 애들은 다 입양되는 거라고 생각했대요. 그래서 학교에 들어가서 다른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충격받았죠. 어떻게 가족이 되는지는 중요한 게 아닌데도요." 중요한 건 어떤 가족이 되느냐일 것이다.

대안가정운동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 주기를 바라지만, 너무 부담을 갖진 않았으면 좋겠단다.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좋고, 꼭 우리 단체가 아니어도 돼요. 내가 들여다볼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돼요." 자신에게 힘겹지 않아야 뭐든 지속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한 말일 것이다. 그래도 대안가정운동본부를 돕고 싶다면,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니 건강한 먹거리를 보내 주는 것도 좋겠다.

김명희 씨는 "10년 후 대안가정 아이들의 외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귀농까지는 못하더라도 귀촌해서 애들이 언제든 놀러 올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그 어떤 것과도 비할 수 없는 아이들의 귀중함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니라고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자식 남의 자식 구분이 무색하게,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살 수 있어야만 하는 거였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이 더욱더 잘됐으면 했고, 그를 힘껏 응원하게 됐다. 그는 좋은 엄마였던 것처럼, 좋은 외할머니가 될 것 같다.

대안가정운동본부


주소: 대구 남구 명덕로8길 102
전화번호: 053-628-2592
누리집: www.daeanhome.org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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